누란의 미녀
백시종 지음 / 문예바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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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왕국이 위치했던 신장지역은 호수 주변의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활기차게 번영했던 곳으로, 가상의 나라가 아닌 흉노와 한 사이에 끼여있던 실크로드 역사 기술의 칼자루를 쥔 중국 당국의 의도적인 왜곡으로 제대로 평가될 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무렵 그곳에 살았던 사람이 한족이라고 한사코 우겼고, 그래야 신장성 일대가 중국 고유의 영토가 되는 셈인데 뜻밖의 누란왕국이 번영했던 BC1800년쯤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되어 중국의 입장이 머쓱해지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고 한다. 그 어떤 것보다 보존이 잘된 미라의 고고학적 이름이 '누란의 미녀'로 중국신장 위구르 자치구타클라마칸 사막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신장 지역의 여성 미라이며, 신장 우루무치 중앙박물관 2층 고시실에 다른 미라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단다. 이 책은 나라를 잃은 중국 신장성 위구르족의 비극과 현실이 우리의 일제강점기 시대와 매우 흡사하다고 느끼던 저자가 중국 여행에서 본 너무 아름다웠던 사막의 여인 미라 '누란의 미녀'를 작품의 소재로 삼아 일년을 걸쳐 총력을 기울여 집필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냉큼 읽어버렸던 요 책.

조진표가 자리를 옮긴 의료선교사 지역인 신장성 투루판에 신장성 지역 주민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행사를 갖고자 소금교회 선교부 소속 오카리나 연주팀이 연주를 하기 위해 선교지 특별방문팀으로 초청된다. 위구르족과 그들을 지배하는 중국 당국의 무력대응으로 우루무치 중심가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조진표는 우루무치에 장기체류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중국 현지 아리랑 여행사를 아주 싼값에 인수해 위구르 현지인 하타르구를 직원으로 채용해 파트너로 함께 일한다. 예전에 조진표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의 누나 쟈오서먼이 총을 맞고 우연히 자신의 가슴에 쓰러진 날,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그녀에게서 '누란의 미녀'가 환생했다고 착각이 들 만큼 홀린 듯 빠져들게 되고 정성껏 치료를 해줬던 인연이 있었다.

소금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정신적 지주 오한수 목사와 조진표 관심 속에서 성장한 왕성국은 매사 부정적이고 날카롭게 비판하는 성격이다. 그리고 조진표와 왕성국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실과 바늘'처럼 각별했고 돈독함을 과시했다. 방문팀 명단에 없던 소금교회 장료이며 에벤에셀그룹 총수인 서근석 회장 부부가 특별방문팀으로 동행하게 되고, 이 행사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 에벤에셀그룹 총무부에서 일하는 왕성국이 함께 방문한다. 그런데 출국전부터 에벤에셀그룹의 위기와 불안을 감지한 소문이 무성했는데 자금을 동결하고 모든 자금을 외환으로 바꾸는 비밀 작업을 단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왕성국이 알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뒤통수 맞은 왕성국은 비정규직 전원이 해고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노조들과 함께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급하게 귀국하게 된다.

한편 위구르족 후예인 쟈오서먼은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처럼 나라를 잃은 슬픔과 강압과 억압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울분과 억움함과 통분을 표출하기 위해 그들에게 목숨을 걸고 있는 힘껏 몸부림치는 비밀결사대 조직의 일원이었다. 게다가 조진표 역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족 출신의 장비족이 위구르 여인 투타스를 아내로 맞아 종교적 탄압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라 멋지게 느껴졌는데 연이어 드러나는 위구르족의 혈통들의 반전 결과에 허무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를 보며 신앙심이 누구보다 깊었던 조진표의 종교적 신념을 넘어선 쟈오서먼과의 사랑의 힘이 참 대단해 보였다. 인연과 운명을 뛰어넘은 이 둘은 아마도 하늘도 축복해주는 필연이었던 것 같다. 그 용기와 각오와 다짐들이 절대 무너지지 않길 간절히 마음 졸이며 이들을 응원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도망치거나 숨지 말고 당당하게 그들이 꿈꾸는 희망 속 안식처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대대손손 행복한 꽃길만 거니길 진심으로 기도해본다.

때론 신앙을 앞세워 정직과 신뢰를 외치면서도 돈 앞에서는 한순간에 양심을 팔고, 달콤한 거짓말로 서로를 속이고 배신하며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내팽개치는 뻔뻔하고 치졸한 인간들. 그리고 말 못할 그들만의 속 사정이 있던 귀구한 위구르족의 삶과 운명이 안타까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더랬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수두룩하게 있는데 정작 그렇게 만든 장본인들은 반성은커녕 인정도 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현실과 과거의 역사가 오버랩돼서 혀를 내둘렀다. 맞은 사람이 누구인지 뻔히 다 보이는데도 때린 사람만 가증스럽게 나 몰라라 배 째라는 형국이었으니. 암튼 일본의 소름 끼치고 끔찍했던 만행에 이어 만만치 않게 가혹하고 잔인한 면모를 뽐낸 중국도 참 대단한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앞에서는 둘 다 떳떳하진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씁쓸하고 먹먹하던지...

기독교의 적나라한 현실에서 오는 괴리, 대기업의 횡포로 삶의 의지와 희망이 좌절되는 노동자들, 위구르족이 한족의 탄압에 저항하고 맞서는 과정을 과감 없이 그려낸 민낯에서 엿볼 수 있는 공감되면서도 가슴 저린 애절한 애환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꼬집어 일침을 가하고 깨달음을 일깨어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책을 읽기 전에 궁금증을 유발했던 그녀 <누란의 미녀>가 어떤 모습으로 발견됐는지 검색해서 눈도장부터 찍고, 관련된 정보를 찾아 봤더랬다. 솔직히 역사와 종교를 다룬 책은 솔직히 부담스러워 자주 손이 안 가기에 멀리하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책표지부터 이 책이 눈에 띄었는데 삽화와 함께 다행스럽게도 술술 읽혀서 아주 재밌게 읽었고, 묵직한 울림을 담은 그 발자취를 따라 공부하는 기분으로 얻는 기쁨이 있었다. 무엇보다 응원했던 이들이 그나마 해피엔딩을 맞아 작은 위로와 안심이 되었기에 맘 편히 책을 덮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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