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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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사진가 에번스가 1930년대 뉴욕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하는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밸과 케이티 부부. 미술관에서 사진을 둘러보다 반가우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팅커 그레이였다. 1938년 뉴욕에서 청춘의 한 페이지를 뜨겁고도 강렬하게 그리고 달콤했지만 불확실했던 미래로 불안했던 마음 한편을 시큰하고 아리게 흔들어버린 이 남자를 그렇게 30년 만에 다시 마주한 케이티. 딱히 실망스럽거나 혼란스럽기보단 옛 친구를 떠올리며 작은 위안과 위로를 더한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품위 있고 예의 바른 은행가 팅커 그레이, 타고난 금발에 놀랄 만한 미인이던 하숙집 룸메이트 이브 로스, 금수저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던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한순간에 포기하고 하고 싶은 일을 과감하게 실행한 월러스,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준 디키 밴더와일,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포스로 그녀에게 눈도장 제대로 찍은 팅거의 대모 앤 그랜딘까지 우연으로 시작했던 만남이 세월이 흐른 뒤 자신에게 운명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 흐르듯이 과거로 돌아가 겨울, 봄, 여름, 가을 사계절을 화려하고 우아하고 열정과 자유분방하게 보낸 그때의 추억들을 회상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p.71 행운은 대담한 사람들의 편이다. 1937년 신년 전야제에 이브와 케이트는 나이트클럽에서 형 헨리를 만나러 온 팅커를 처음 만나게 되고,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다 셋은 서로에게 소원을 빌어주며 함께 새해를 맞이한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 뒷날 케이트는 모르고 팅커의 순금 라이터를 가지고 와서 또다시 셋이 만나 영화를 보고 술도 같이 마시며 친해진다. 그리고 또다시 금요일 밤에 모인 셋은 클럽 21에 들렸고, 거기서 대모 앤 그랜딘을 마주친다. 하지만 팅커는 그 자리가 내심 불편했고 장미빛 환상에 취한 이브는 그 바로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센스있게 눈치챈 케이티의 권유로 셋은 곧장 빠져나와 자리를 이동하던 중에 우유배탈 트럭이 차를 들이받는 생각지 못한 사고가 터진다. 이 불행이 과연 어떤 반전을 가져올까? 이때부터 내 맘은 초조해서 더 조급해졌다.

 

앞 유리창을 뚫고 나가 얼굴이 흉측하게 짓이겨지고 다리를 절뚝거리게 된 이브 로스. 미리 예상은 했지만 같은 여자로서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자괴감에 빠져들 것 같다. 꿈도 열정도 희망도 없는 하루하루 지옥 같은 삶, 눈을 뜨고 눈을 감는 매 순간 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려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그날의 사고. 꽃처럼 한창 예쁠 20대 청춘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 너무 안타까웠다. 그 어떤 위로도 대신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당장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 죄책감에 괴로운 팅커가 한줄기 빛이 되어 그녀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기로 한다. 그의 진심 어린 따뜻한 보살핌과 배려로 이브는 차츰 상태가 호전됐고 심적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이브보단 케이트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둘이 잘 되길 내심 희망했지만 남자는 사랑 앞에서도 의리 빼면 시체 아닌가.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본인의 행동에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하며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둘의 관계가 점점 더 발전하게 됐으니 이 남자 넘 멋지고 매력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하나를 잃는 대신 그에 대한 마땅한 보상으로 시들고 죽어가는 이에게 자진해서 또 다른 생명력을 있는 힘껏 불어 넣어줬고, 그녀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상류사회에서 아주 호사스럽고 한가로이 사치를 즐길 수 있는 여유까지 아낌없이 한꺼번에 선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또 예상치 못한 반전에 반전이 꼬리를 물며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하게 속도 조절하며 속속 등장했으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법률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던 케이트는 승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내팽개치고 사표를 낸 후, 출판사에 취직하고 얼마 뒤 메이슨 테이트 사무실에 스카우트된다. 케이트 역시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뉴욕의 일반 시민에서 한순간에 사교계를 입성하고 금수저들과 여러 인맥을 쌓으며 마냥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노력을 거듭해 능력을 한껏 발휘하면서 젊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똑똑했고, 솔직했고, 현명했고, 매력이 넘쳐서 더 멋졌던 케이티. 직장에선 주어진 일을 차분하고 신중하면서도 책임감 있게 묵묵히 처리하며 상사에게 신임을 얻고, 소소한 일상 속 작은 일탈은 즐겨도 쉽게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적절히 절재하면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함께 또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서히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택해 안주할지,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과감하게 도전을 이어갈지 그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면서.

 

책 속 등장인물들 중 누가 옳고 그릇된 선택을 했는지는 선뜻 답을 내릴 수 없겠다. 한번 사는 인생 본인이 후회 없이 만족하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뉴욕을 사랑하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케이티 같은 내 모습이 오버랩돼서 이브, 헨리, 월러스의 선택을 보며 더 자극이 됐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로맨스 소설이라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여러 사랑의 감정과 그 과정을 엿보며 부러웠다가 심쿵했고, 때론 아쉬웠다가 조금 씁쓸하기도 했지만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곧장 인정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결말이라 만족했더랬다. 물론 화려한 성공을 꿈꾸다 뒤늦게 양심선언한 팅커의 용기에 손뼉 치며 응원을 하다가도 한편으론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워 끝까지 신경이 쓰였기에 책을 덮고 나서도 계속 맘에 걸렸다. 억지로 이어 붙여주고 싶어도 자꾸만 어긋난 인연이라 더.

 

1938년 뉴욕 맨해튼을 배경으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뉴욕을 선망하고 싶을 만큼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일어난 그때로 나도 모르게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었다. 전쟁, 술, 책, 클럽, 재즈, 음식, 영화, 담배, 호텔, 그림, 해외여행, 크루즈, 파티, 미술관, 교회, 상류사회 등 여러 요소가 어울려 상상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스토리까지 흥미진진했으니 말이다. 고전소설의 묘미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특히 책 속에 명대사는 물론 명언으로 삼고 싶을 만큼 가슴에 와닿는 좋은 글귀들이 참 많았고, 책을 읽는 내내 팅커가 성실히 따르던 조지 워싱턴의 '품위의 규칙'이 뭘지 넘 궁금했는데 부록으로 110가지가 모두 실려 있어서 궁금증 해결하며 하나씩 참고하기 편했다.

 

출발선은 각자 달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멋지게 바꿔가는 진정한 청춘들의 아름답고 고귀하고 우아하면서도 순수했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진 달콤 쌉싸름한 <우아한 연인>. 양장 제본으로 러블리한 핑크색 책표지부터 취향저격이라 더 맘에 들었던 요 책. 몇 번 멈칫하긴 했지만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담백함을 더한 러브 스토리에 인생 교훈을 담은 묵직한 울림과 잔잔한 감동까지 선물해준 힐링 시간이었다. 한 작품의 완성에 4년의 집필과 1년의 독서 시간이 필요하다는 에이모 토울스 작가는 현재 1950년대 뉴욕에 대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뉴욕의 색다른 매력과 어떤 어마어마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지 4년 후가 내심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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