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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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다 못해 소름 끼치는 식인종 괴물이자 상상을 초월하는 연쇄살인범인 렉터 가의 마지막 후손 한니발 렉터! <양들의 침묵>을 먼저 읽고서 의문투성이였던 그에게 호기심과 궁금증이 배가 되어 냉큼 펼쳐보았다. 겁이 많아서 아직까지 영화나 미드로 나온 시리즈 전편을 감상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고 이참에 역주행하고파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과연 태어날 때부터 천상 사이코패스였는지, 아님 자라온 환경과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계기로 서서히 악마의 본성이 꿈틀댄 건지, 천재적 두뇌를 가진 세기의 살인마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널린 알린 그의 탄생과 실체를 낱낱이 까발려줄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시리즈가 재출간되지 않았더라면 결코 손을 대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을 그에게 빠져본다. 

 

한니발이 여덟 살이던 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리투아니아, 그의 가족들은 렉터 성에서 도망쳐 산속 깊은 산장 은신처로 몸을 숨긴다. 렉터 가족은 3년 반이란 긴 시간 동안 숲속에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전쟁의 포화 속에서 부모님과 하인들 모두 그의 눈앞에서 끔찍하게 목숨을 잃게 되고, 여동생 미샤와 한니발은 가까스로 죽음을 면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공포에 떨며 숨어있던 어린 남매 역시 독일군에 발각되고, 추위와 배고픔에 못이긴 그들은 "뭐라도 안 먹으면 우린 죽어"라며 연약하고 여린 미샤를 아무 죄의식 없이 죽인 후 곧장 먹어치운다. 설마 했는데 진짜여서 깜놀.

 

전쟁 때문에 집과 가족을 한순간에 모두 잃은 한니발은 그렇게 고아가 되고, 군인들에게 발견된 후 합동보육원이 된 렉터 성에서 다른 고아들과 함께 그곳에서 생활하며 지내게 된다. 너무 어린 나이에 혼자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그 모든 것을 생생히 목격한 죄, 동생을 지켜내지 못한 충격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가 된다. 그런 그가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모습을 목격하면 바로 쫓아가 냉정하게 응징을 가한 한니발.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정의의 사도로 타고난 본성은 누구보다 착하고 순수한 어린 꼬마로 순간 착각할뻔했지만 범상치 않은 행동과 남다른 사고에 이성을 붙들 수 있었다. 동정과 경멸의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은 딱 여기까지였다.

 

한니발이 열세살이 됐을 때 프랑스에서 삼촌 로버트 렉터 백작이 그를 데리러 오고, 숙모 레이디 무라사키와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게 된 한니발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고 서서히 안정을 되찾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에 갔다가 레이디 무라사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모욕한 정육점 남자 폴 모뭉과 몸싸움을 하게 되고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삼촌이 폴 모뭉을 혼내주러 찾아갔다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되고, 한니발이 더 지독하게 복수를 하면서 짜릿한 첫 살인의 맛을 보게 된다. 진짜 한번 마음먹었으면 망설임 없이 실행하는 추진력 하나는 정말 기똥찬 한니발 되시겠다.

 

어릴 때부터 수학과 미술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며 책 내용을 통째로 외우는 남다른 능력을 소유한 한니발은 열여덟 살에 최연소로 의대에 합격한다. 이렇게 좋은 머리와 그동안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났으니 긴장하시라. 그의 꿈속에서 끔찍하게 울부짖는 미샤와 그날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늘 괴롭히는 이름 모를 얼굴과 목소리의 주인공들을 찾아 매일 밤 복수의 칼날을 갈았던 한니발은 차례차례 거침없이 인간 사냥을 시작한다. 아주 차분하고도 신중하게, 그러면서도 대범하고 노련하게 본인만의 방식으로 거침없이 처단한다. 그를 쫓는 경찰과 법망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가는 똑똑하고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연쇄살인범. 그는 복수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기상천외한 악마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만, 한니발의 첫 살인과 관련해 연결고리가 있는 레이디 무라사키와 포필 경감의 활약도 기대를 했건만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자리만 지키다 훅 치고 빠진 느낌이 들었다. 보호를 하려는 건지 즐기는 건지, 쫓는 건지 피해주는 건지 아리송하게 간만 보며 밀당하던 두 인물은 결국 관심 밖으로 쓱 밀려나고 말았으니.

 

아쉬운 점은 몰입도는 좋았지만 과거와 현재가 얽히고설키다 순간순간 동떨어진 전개로 긴장감이 조금 사그라들기도 했고, 너무 전쟁에 초점을 맞춰 한니발이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시키려는 듯 나름 포장해 스토리를 이끌어낸 느낌이 들었다. 한니발의 고통스러웠던 상황과 내면 속 동기와 심리에 어느 정도는 연민을 느끼게 했지만 살인 행위 자체가 결코 정당방위가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용서할 수 없다고 되뇌이면서도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이와 가족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살인자의 길을 선택한 그를 침묵으로 내심 응원하는 마음도 들었다. 한니발은 어째서? 만약에 나라면? 의문을 계속 품은 채.

 

초반부터 미리 힌트를 다 줬기에 한니발의 기억 속 그날 그 자리에 있던 그루타스 일당들은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이구나 예상 가능했고, 어떤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지가 관건이었는데 왠지 묵직한 더 큰 한 방을 기대했던 나에겐 특별히 잔인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아직 그는 어렸고, 살인 행위를 게임처럼 여기며 진화한 과정이 아니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까진 복수를 가장한 맛보기였고, 독보적인 사이코패스로써 피비린내 나는 엽기적인 본 게임은 이제부터가 시작일 테니 말이다. 그래서 <양들의 침묵>이 훨씬 재밌었나? 영화나 미드 시리즈를 다 찾아보게 되면 그땐 또 어떤 깜놀할 캐릭터로 변신한 한니발이 기다리고 있을지 엄청 기대가 된다. 기왕 눈도장 찍은 김에 악몽에 시달리더라도 조급증 생겨 빨리 만나볼 참이다. 상상하기도 싫어 감도 오지 않는 반전 드라마를 두 눈 부릅뜨고서! 책은 한니발 라이징, 양들의 침묵, 한니발 사건의 시간순으로 3부작을 읽으면 훨씬 가독성도 좋고 실망감 없이 술술 읽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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