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공식 자서전
프란치스코 교황.카를로 무쏘 지음, 이재협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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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12 여러분도 이 길을 걸어가십시오. 온유한 사랑과 용기로 이 싸움에 동참하십시오. 저는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일 뿐입니다.

 

희년을 맞이해 공개된 교황님의 자서전 희망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보통 책을 소개할 때는 첫 문장이나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을 발췌하는데 희망의 서평은 꼭 이 문장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한낱 지나가는 발걸음. 전체 가톨릭교회의 최고 수장이자 바티칸의 국가원수인 분이 어떻게 본인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을까?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문장이었다.

 

으레 자서전이라고 하면 단순히 칭송받는 업적을 나열해 놓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희망에는 교황님이 살아오신 삶이 시대적 배경과 함께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너무나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년 시절의 이야기부터 사랑하는 가족의 이야기, 아르헨티나 군사 독재의 비참함, 예수회 수련 시기와 비로소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던 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콘클라베가 생각나기도 했고, 초등학교 동급생에게 러브레터를 썼던 일이나 이모부와 논쟁 중에 탄산수를 뿌려 버린 이야기를 읽을 때는 숨이 넘어가게 웃기도 했다.

 

너무나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21세기와는 동떨어진 얘기로만 느껴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소위 말하는 선진국에서는 온갖 잉여 생산물이 지구를 더럽히는데 또 어느 한쪽에서는 당장 마실 물이 없어서 병들고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희망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가십시오. 밖으로 나가십시오. 거리로 나가서 상처 입고 더러워진 교회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으로 병들어가는 교회보다 낫습니다.” (p.311)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제들과 평신도들에게 해주셨다는 이 말씀이 우리가 희망으로 나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만히 성전 안에 앉아서 나쁜 일이 내게 닥치지 않을까 걱정하고 나 하나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고통받는 이웃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 교회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희망에 닿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희망은 두꺼운 책이지만 어렵지 않다. 권위를 높이는 대신 소탈하고 다정한 교황님의 문체를 그대로 살려 번역해, 마치 아주 친절한 어른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기분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 같은 이유로 가톨릭 용어나 신앙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종교적인 얘기를 넘어서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교황님이 살아오신 발자취를 따라 읽으며 독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스로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희망의 가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병상에 계시던 교황님께서 5주만에 퇴원해 바티칸에 복귀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에 희망을 주시는 교황님의 쾌유를 기도드리며, 남은 희년을 어떻게 더 거룩하고 더 뜻깊게 보낼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희망 #프란치스코교황 #가톨릭출판사 #교황님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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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안드레아 칼라일 지음, 양소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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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나이가 든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여권을 바꾸고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평생을 살아오며 품어온 자아 그대로를 지닌 채 나이가 든다. 해가 뜨는 게 놀랍지 않듯 나이 듦은 더 이상 놀라워할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된다면 그건 마침내 드러나는 우리 안의 노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늙는 것을 두려워한다. 외모가 보편적인 미의 기준에서 멀어지는 것, 몸이 아프거나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 일을 그만두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산 가능 인구가 아니게 되는 것. 모든 미디어와 광고가 늙음은 두렵고 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주름이 져서 큰일이라거나 이제 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는 그런 사회적 편견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늙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왜 사회는 노년의 신체를 흉측한 것으로, 또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표현하며 조롱하는가? 저자는 여러 장에 걸쳐 그러한 편견을 꼬집으며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노년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나이듦에 대해 말하고 있다. 하우스보트에서의 생활, 미디어와 창작물이 표현하는 노인, 저자보다 먼저 나이든 여성으로 살았던 매티 이모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 읽으며 늙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졌다.

 

p.246 나는 다른 딸들에 관해 알고 싶었다. 그들은 잘 버티고 있을까? 간병인이 된다는 건 내 하루가 크게 바뀌는 일이었다.

 

사람은 당연하게도 누구나 늙는다. 그리고 나보다 앞서 나의 손윗형제가, 부모가, 내가 어릴 때 나를 이끌어줬던 어른들이 늙는다. 저자의 말대로 나이가 든다는 건 갑자기 사람이 부정적으로 바뀌거나 미디어 속의 괴팍하고 볼품없는 노파가 되는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나는 나고, 어머니는 어머니고, 이모는 이모다.

 

청소년기를 맞이하며, 스무 살을 맞이하며, 대학을 졸업하거나 취직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장했음을 기뻐하고 감탄한다. 그런데 왜 나이가 들면서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퇴보했다고 느끼게 될까? 저자의 말처럼 나이 든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나이가 들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는 제목이 마음에 든다. 원서는 There Was an Old Woman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이쪽이 더 직관적이기는 하지만 웅진지식하우스의 번역본이 더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다. 늙기를 기다린다니, 얼마나 대단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서평단을 처음 신청할 때부터 어머니와 꼭 같이 읽고 싶었다. 이제는 흰머리가 잔뜩 생긴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는 건 꽤 즐거운 경험이었고 이 책은 늙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속상해하던 어머니께도 큰 힘이 되어주었다. 아직 노인혐오가 심하고 노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은 한국에 꼭 필요한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히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언제나늙기를기다려왔다 #안드레아칼라일 #웅진지식하우스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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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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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나는 개구리가 섬세하기 때문에 좋았다. 그리고 그 섬세함이 두려웠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SF 경향을 참 좋아한다. 과거의 SF가 거대하고 창의적인 과학적 세계관을 건설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의 SF는 일단 어떤 근미래, 또는 우주, 또는 어느 비현실에 사람을 던져넣는다. 그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고, 대신 그곳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상처, 우울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 현실이라고 하면 너무나 무겁고도 아플 것만 같은 이야기를 비현실의 틀을 빌려 다정하게 풀어낸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포털><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도 그런 면이 호감이었다.




 

p.20 포털이 내 방 안에 있다는 기분이 엄습했다. 상처처럼. 나를 볼 수 있는, 나를 아는 상처처럼.

 

 

두 개의 단편 중에는 <포털>이 더 흥미롭고 취향이었다. <포털>에서 구멍이 나버린 건 정말로 우주였을까? 누구나 마음 속에서 무언가 덜어져 나가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은 허전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며, 다른 걸로 채워지기도 하고 영원히 비어 있기도 한다. 그곳을 파헤쳐 보면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을 때도 있고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무언가, 또는 욕망, 또는 수치심을 찾게 된다. 만약 상실이라는 무형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게 포털이 아닐까? 저자가 제시한 우주의 구멍이라는 상상의 개념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포털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본다.

 

미래는 언제까지고 미래일 수는 없다. 어느 미래, 어느 우주를 그리는 SF도 시간이 흐르면 종래에는 현재가 된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에는 언젠가 현재로 다가올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놀랄 만큼 특이한 소재가 날카롭게 허를 찔러서, 분명 공상과학 픽션을 읽었는데도 인간과 사랑, 삶과 세상에 대한 고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설명이나 전조도 없이 이미 발생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뚝 떨어트린다. 소설 속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파악하려면 독자는 활자 하나하나를 곱씹고 두들겨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한다. 이게 줄리애나 배곳이 쓰는 SF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는 가만히 앉아서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대신 페이지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이야기의 줄기를 스스로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글 속에 완전히 빠져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주에구멍을내는것은슬픔만이아니다 #줄리애나배곳 #인플루엔셜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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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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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확실한 건 미지의 바다가 나를 끌어당기고 있으며 그렇다면 나는 속절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연과학이 그렇지만, 해양과학이라는 분야는 특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일상에서 접할 일이 거의 없어서가 아닐까? 나도 바다는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해양과학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키오스트의 심볼 마크가 고래 꼬리라는 것 뿐이다(이마저도 해양대를 나온 후배의 자기소개서를 봐줄 때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다 위의 과학자를 펼칠 때의 마음은 좋아하는 바다 이야기를 잔뜩 보게 되리라는 두근거림 반, 해양과학이라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반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다 위의 과학자에는 해양과학자인 저자가 배를 타며 겪은 일의 기록들부터 바다와 항해에 대한 상식, 우리가 생태계와 해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에 대한 지향점 등 아주 다양한 바다 이야기가 들어 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상냥한 설명들이 일상적인 어투로 쓰여 있어서 해양과학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마치 그의 항해에 동참한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과학자의 책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문학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단순히 과학적 사실을 나열한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바다를 아주 사랑하는 사람의 일기장을 몰래 엿본 기분이 들었다.

 

p.143 바다는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고,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수면 아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노력과 다른 과학자들의 노력이 심해를 비추는 빛이 되길 바란다.

 

누구나 어릴 때 한번쯤 항해를 꿈꾼다. 80일간의 세계일주, 로빈슨 크루소, 보물섬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말이다. 아주 큰 배에 타서 넓은 바다를 여행하거나 해적을 만나거나 무인도에 표류하거나 엄청나게 커다란 물고기를 잡거나… …. 누가 뭐래도 바다는 낭만의 영역이다. 이 책은 정말로 바다를 탐험해 본사람이 말하는 낭만으로 가득 차 있다.

 

대개 이성적 이미지로 대표되는 과학자의 책을 읽고 감성적인 낭만을 얘기하는 게 조금 아이러니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과학자가 무엇보다도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에서 과학을 전공할 만큼 공부에 집념이 있다면 흔들리는 배의 침대에서 굴러떨어지지 않아도 되는, 몸이 더 안락하고 편한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 소위 말하는 스카이 자연대를 갈 성적이면 지방 의치한약수를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경향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세상에서 해양학으로 학석박 학위가 모두 있는 저자의 이력을 보면 자연히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바다가 부른,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저자가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곱씹다 보면 바다를 좀 더 열심히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바다를, 이제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 수면 아래를 나태하게 등한시하거나 환경 문제로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저자와 같은 해양과학자들의 역할이 바다를 탐험함으로써 더 넓고 더 깊은 곳을 파헤치며 해양과학의 발전을 선도하는 것이라면 이 책을 읽는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찾아낸 바다를 깨끗하게 보존하고 사랑하여 바다가 바다 그 자체로 빛날 수 있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푸른 별 지구가 계속해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바다위의과학자 #남성현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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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리
심아진 지음 / 상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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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75 그러나 이름 불렀어야 할 순간은 금방 유야무야 흩어진다. 사랑을 제외한 생의 온갖 잔여물이 나른한 잠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심아진의 안녕, 우리에는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단편 하나하나마다 이야기와 인물들이 너무 흥미로워서 다 읽고 나서는 이걸 제발 장편소설들로 다시 내달라고 빌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성준과 은비는 어떻게 되었는지, 사모들과 유리 엄마는 앞으로도 그런 관계를 유지해갈지, JL이나 K나 그 수많은 여자들은 계속 그 남자를 사랑할지너무 많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만큼 흡입력이 좋고 스토리가 특색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차휘랑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젊은 나이에도 특이한 말투를 쓰고 미신을 지나치게 믿으며, 심지어 그게 제법 효험이 있기까지 한 청년. 아주 비현실적이지는 않아서 어디엔가 있을 법하면서도 너무나 독특해서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할 것 같은 캐릭터. 심아진의 소설에는 그런 미묘한 일상이 담겨 있다. 분명 마주치기 쉽지 않은 사건인데도 마치 별 것 아닌 것처럼 굉장히 담담하고 차분하게 쓰여진 글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도 넋을 놓고 그 특이한 인물들의 일상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p.192 넘쳐 난 사랑은 가끔 길을 잃기도 합니다, 당사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심아진의 글은 마치 슴슴한 반찬 같다. 맵고 짠 메인 요리처럼 엄청나게 극적이거나 강렬하고 볼륨이 큰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물이나 밥처럼 아주 맹맛이어서 밍밍하고 질리지도 않는다. 태연하면서 날카롭고 차분한 동시에 예리하다. 담백한 문장이 모이고 모이다 어느 순간 정확하게 그 상황과 감정을 관통하는, 마치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묘사가 느리고 차분한 문장들을 뚫고 들이닥치는 순간 그 슴슴함에 잉크가 한 점 탁 떨어진 것처럼 글이 꽉 채워진다.

 

안녕, 우리에는 개인이 살아있다. 아주 완전무결하거나 아주 구제불능이지 않은, 마치 옆집이나 아래층에서 실제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현실적인 개인들이 모여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어떤 사건을 맞이하며 변하기도 하고 변하지 않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또 다른 곳에서는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 사람의 이야기를 이토록 매끄럽게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안녕우리 #심아진 #상상 #상상출판사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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