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줄리애나 배곳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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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47 나는 개구리가 섬세하기 때문에 좋았다. 그리고 그 섬세함이 두려웠다.

 

개인적으로 최근의 SF 경향을 참 좋아한다. 과거의 SF가 거대하고 창의적인 과학적 세계관을 건설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의 SF는 일단 어떤 근미래, 또는 우주, 또는 어느 비현실에 사람을 던져넣는다. 그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고, 대신 그곳에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나 상처, 우울이나 삶에 대한 이야기. 현실이라고 하면 너무나 무겁고도 아플 것만 같은 이야기를 비현실의 틀을 빌려 다정하게 풀어낸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포털><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아요>도 그런 면이 호감이었다.




 

p.20 포털이 내 방 안에 있다는 기분이 엄습했다. 상처처럼. 나를 볼 수 있는, 나를 아는 상처처럼.

 

 

두 개의 단편 중에는 <포털>이 더 흥미롭고 취향이었다. <포털>에서 구멍이 나버린 건 정말로 우주였을까? 누구나 마음 속에서 무언가 덜어져 나가면 그 자리에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은 허전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며, 다른 걸로 채워지기도 하고 영원히 비어 있기도 한다. 그곳을 파헤쳐 보면 슬픔이나 괴로움이 있을 때도 있고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무언가, 또는 욕망, 또는 수치심을 찾게 된다. 만약 상실이라는 무형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게 포털이 아닐까? 저자가 제시한 우주의 구멍이라는 상상의 개념을 통해 독자는 자신의 포털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자연스럽게 떠올려본다.

 

미래는 언제까지고 미래일 수는 없다. 어느 미래, 어느 우주를 그리는 SF도 시간이 흐르면 종래에는 현재가 된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에는 언젠가 현재로 다가올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놀랄 만큼 특이한 소재가 날카롭게 허를 찔러서, 분명 공상과학 픽션을 읽었는데도 인간과 사랑, 삶과 세상에 대한 고심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설명이나 전조도 없이 이미 발생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뚝 떨어트린다. 소설 속의 세계관과 캐릭터를 파악하려면 독자는 활자 하나하나를 곱씹고 두들겨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만 한다. 이게 줄리애나 배곳이 쓰는 SF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는 가만히 앉아서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대신 페이지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이야기의 줄기를 스스로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글 속에 완전히 빠져 있을 것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주에구멍을내는것은슬픔만이아니다 #줄리애나배곳 #인플루엔셜 #공삼_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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