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픽션 ㅣ 위픽
서장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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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혐오자들’이라는 표현에 나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그건 내가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잉하는 활동가나 작가들이 사용하는, 거의 활자로만 존재하는 단어였다. 조성 씨가 그 단어를 직접 말한 것도, 동종업계 종사자들을 그렇게 부른 것도 다 뜻밖이었다. 


최근의 한국 현대문학에서는 퀴어나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진보 성향의 젊은 여성 독자 입장에서는 제법 반가운 일이지만 때로 일부 작품 속의 소수자들은 현실과 지독하게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지곤 한다. 그들의 불행을 서사 요소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려니 싶으면서도, 무균실 같은 세계관에서 ‘퀴어’가 더 이상 ‘퀴어하지’ 않을 때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서장원의 글에서는 그런 비현실성이 덜하다고 느껴진다. 그녀의 글 속에서 그들은 충분히 퀴어하고, 충분히 소외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불행이 과하게 조명되거나 연민과 동정의 요소로 취급받지 않는다. 어떤 소수자성도 하나의 인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존재할 뿐이다. 『펀치 트렁크 픽션』의 김조성처럼.



 

서장원의 책을 좋아할 독자라면 작중에서 김정원이 털어놓는 생각들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악의적인 밈이 흘러다니는 통로처럼 느껴지는(p.39)’ 사람들, 그런 혐오자들이 ‘없어지기를, 이 세계에서 추방되기를 바랐다’는 이야기(p.55). 그러나 반칙왕이 사라진 것처럼 그들이 정말로 사라진다면, 그것도 법이나 천벌 같은 거대한 외부의 심판이 아닌 어느 한 개인의 심판에 따라 사라진다면 정원과 같이 마음이 찜찜해지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사실 김조성에게는 그들을 벌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정원도, 글 밖의 독자도 마음속으로는 조성이 옳다는 생각이 자꾸만 치민다. 혐오를 쉽게 배설하고 타인을 조롱하는 것을 놀이로 삼는 사람들은 사회를 야금야금 좀먹는다. 합의된 도덕과 존엄에 기생해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킨다. 사적 제재가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이 후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조성과 정원이 없앨 사람의 리스트를 쓸 때 내가 끼어 있었다면 한국에는 팔만대장경이 하나 더 생겼을 것이다.



 

p.65 나는 소설을 쓰지 못할 거였다. 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차마 소설로 쓰지 못할 만큼 증오했다. 심지어 증오하는 사람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일에 공모하기까지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일을 소설로 쓸 수도 없었다.


『펀치 드렁크 픽션』의 작가 코멘트에는 ‘소설이라는 진공상태 속에서 윤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맞는가(p.85)’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확실히 소설은 현실과 격리된,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공간이다. 근래에는 그런 공간의 무결성을 너무 싫어한 나머지 ‘안다무(안온, 다정, 무해) 소설’은 싫다고 말하는 독자들도 생겼다. 그러나 나는 『펀치 드렁크 픽션』처럼 윤리에 대해, 소수자와 혐오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 영원히 베스트셀러에 올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의 현실에서 여전히 ‘혐오자들’이라는 단어는 활자로만 존재하고, 그 ‘나쁜 사람들’을 없애 줄 수 있는 김조성이 없으니까.

 

어쩌면 나는 이 책이 던지는 질문-과연 이 미움은 정당하고 그들의 혐오는 누군가 사적으로 제재해도 응당한가-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정원이 묘하게 부러웠다. 광장에서 만난 활동가나 트위터에서 팔로우한 작가가 아닌 일상 속에서 이토록 도덕적 궤를 같이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또 그가 은밀하게 가하는 처벌의 공범 아닌 공범이 되었다는 것이. 메타픽션이라지만 소설 속 인물을 이토록 부러워해 본 것은 오랜만이다. 평소 서평을 쓸 때 독자를 위한 장치에 대한 소감과 나의 사견을 어느정도 분리해서 쓰는 편이지만 그래서인지 이번 서평은 온통 사담으로 가득하다. 어쩌면 나도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큰 것인지도 모른다. 몇십 페이지 남짓한 이야기 속에서 강렬하게 독자를 움켜쥐는 위픽 시리즈의 매력이 새삼 훌륭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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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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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흙은 나무나 돌이 그러하듯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자연물이다. 그 자체로는 도움이 안 되는 흙으로 그릇이라는 도구를 만든다. 모양 없는 것으로 모양을, 새로운 가치를 빚어낸다. 모든 생물 중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의 원점이 바로 거기 있는 것이리라.

 

과학자가 쓰는 문학을 좋아한다. 과학적 정보 전달을 위해서가 아닌, 문학의 궤를 빌려야만 쓸 수 있는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반가운 요즘이다. 『파랑을 잇는 바다』의 저자 이요하라 신은 지구과학 전공자로 작중에서도 그의 전문적인 과학 지식이 아낌없이 드러난다. <꿈 빛깔 섬>에서 이야기하는 지질과 흙, <별 지는 역체>에 등장하는 운석 등 창작된 픽션 속을 세밀하게 채우는 과학적 사실은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고 독자를 글 속으로 빨아들인다. 치밀한 반전이나 폭발적 볼륨의 사건 없이도 긴밀하게 연결된 인간과 자연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세세한 고증에 비해 놀랍게도 술술 읽히는 글이었다. 문과 출신인지라 너무 과학적 설정이 방대한 소설은 읽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파랑을 잇는 바다』는 매 단편마다 상세한 과학 소재가 녹아있으면서도 굉장히 상냥하게 쓰여 있어 이해가 쉬웠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 가는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도 도자기에 대해, 늑대와 개의 관계성에 대해, 바다거북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자연 속을 살아가는, 잠깐 도망치더라도 자기 삶을 묵묵히 살아가기로 하는 인물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떤 소재를 빌리든 문학의 역할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파랑을 잇는 바다』도 이렇게 여러 가지 과학적 소재가 등장하지만 골자는 결국 사람의 삶에 있었다. 고헤이가 다시 흙을 만지게 되는 일, 사쓰키를 돌보아 주는 사와 할머니의 모습 등에서 바다가 파랑을 잇듯 연민과 신념이 사람을 이어 주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p.339 우리 인간도 똑같아. 좋아하는 곳, 마음에 드는 곳, 거기서 살면 돼. 자기가 태어난 곳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표제작인 <파랑을 잇는 바다>가 역시 표제작답게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늑대개 다이어리>도 꽤 즐겁게 읽었다. 직장을 다니며 공황장애를 얻게 된 마히로는 시골 살이 중에도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 프리랜서지만 동료 프리랜서들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고 공고에도 떨어지기를 여러 번, ‘꽁무니 뺀 개’ 신세의 마히로가 별안간 벌어진 늑대 소동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늑대개가 개와 늑대 쪽에서 늑대를 택한 일을 통해 자신도 꽁무니 뺀 개를 그만두기로 하는 마히로의 이야기가 근사했다. 마히로와 다쿠미 · 사쓰키와 사와 할머니라는 나이차가 큰 우정 관계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늑대로 살 것인지 개로 살 것인지 · 바다로 돌아올 것인지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두 단편이 비슷한 결을 띠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담담한 다섯 개의 단편에 여러 명의 삶이 촘촘하게 들어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약간은 의아한 선택을 하고도 후회는 없어 보이는 꿋꿋한 인물들이 사랑스럽다. 이 책을 독자들에게 이어 준 출판사에 깊이 감사드린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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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 혹은 멀의 세계 - 인간이 몹시 궁금한 '자아 장착' AI의 생존 분투기
에드워드 애슈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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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2 나도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 누군가를 구하려고 다른 사람을 내던지면 안 되는 거야, 멀.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애초에 내가 뭐 그렇게 특별한데? 로언 아줌마는 슈퍼히어로야.

 

언제나 소설의 주인공이 되는 이들은 보통의 인물과 비교해 유니크한 요소가 있지만, 그리고 SF 소설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지만 그런 클리셰를 감안하더라도 『멀 혹은 멀의 세계』의 주인공 일행은 굉장히 특이하다. 다섯 살 아이의 몸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고등학생 나이인데다가 가차 없이 사람을 향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케일리, 졸지에 머릿속에 시끄러운 AI를 데리고 살게 된 폴먼, 일행과 포로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전직 휴머니스트군 애셔. 평범한 인간이 한 명 정도는 섞여 있어도 될 것 같은 이 무리의 마지막 동료가 되는 건 거의 전국구 지명 수배자 신세 정도는 되어 보이는, 몸에 나노 로봇이 있는 여자 로언이다. 한 명만 있어도 흥미로울 존재들이 연대 아닌 연대로 동행하는 로드무비가 어떻게 재미없을 수가 있겠는가. 수시로 그들이 처한 위험에 마음을 졸이고,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사소한 유머 코드에 웃음이 터지고, 이들에게 해피 엔딩이 남아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철저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볼 때 주인공 ‘멀’은 때때로 너무 냉철하게 느껴진다. 그가 감정 없는 AI라는 점에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케일리와 다른 일행을 두고 저울질할 때 무조건적으로 케일리를 우선하는 모습에는 폴먼이나 애셔가 안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AI인 그가 ‘하나의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느껴진다. 케일리는 로언 대신 자기를 선택한 멀에게 ‘누군가를 구하려고 다른 사람을 내던지면 안 되는’ 것이라고 일갈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연인 같은, 자신에게 더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타인은 손해를 보게 하는 일을 때때로 감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결국 멀은 그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마저도 내던질 수 있다. 어쩌면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간적인 건 폴먼이고, 그 다음으로 인간적인 건 멀일지도 모른다. 그가 수정한 위키 밑에 한 줄을 더 붙여주고 싶은 심정이다. 멀은 최고의 AI다, 라고.



 

p.378 그놈들은 네 친구가 아니야. 인간들은 우리의 친구였던 적이 없어. 이 행성에서 걸어 다니거나 헤엄치거나 날아다니는 모든 존재한테도 마찬가지였지. 인간은 나무에서 기어 내려온 순간부터 손에 닿는 모든 걸 파괴하는 역병 그 자체였어. 그들은 역병이고 나는 치료제야, 멀. 내가 유일한 너의 친구야.

 

그들이 수시로 위험에 처한다는 것과는 별개로 소설은 꽤 유쾌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이게 팀인지 원수인지 알 수 없는 일행은 참 어찌저찌도 우당탕탕 굴러가 싸웠다가 갈라졌다가 재회하기를 반복하고, 인간의 몸이 하드웨어에 비해 너무 나약한 나머지 애를 먹는 멀의 모습에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멀 혹은 멀의 세계』는 분명히 전쟁의 모습을 담고 있다. 폭격의 여파로 폐허가 된 작은 마을, 겉으로는 그럴싸한 명분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학살하는 존재들 등 이야기 곳곳에 드러나는 참상을 마주할 때 독자는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그리고 그 전쟁에서 인공지능이 하는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지 편집이 잘 된 책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빨아들인다. 시스템 상에서 오가는 메시지는 본문과 구분을 둔 채팅 느낌의 작은 고딕체로 표기되어 이들이 인터넷 챗처럼 현실의 음성 이외의 방법으로 통신 중이라는 사실을 지루한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시킨다. 페이지 구석에 마련된 플립북 애니메이션이 가끔 시선을 환기한다. 만듦새부터 이야기까지, 전부가 사랑스러운 책이다.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멀의 세계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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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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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1 윌은 개를 걷어차본 남자들과 비슷하다. 그들은 걷어차인 개가 비명을 지르며 다리 사이로 꼬리를 말아넣는 이유는 그저 수천 년 동안 길들이고 훈련해왔기 때문인 것을 잊는다. 그들은 발길질할 때마다 이빨이 달린 개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대체로 대중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떠올린다. 일련의 연쇄 살인 사건이나 호러 스릴러 영화의 악역을 연상하기도 한다. 『종의 기원』의 ‘한유진’이나 드라마 《한니발 렉터 시리즈》의 ‘한니발’처럼 피해자나 추적자가 아닌 사이코패스 쪽을 주인공으로 두고 구성된 작품도 여럿 있다.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 역시 중심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캐릭터 ‘클로이’가 사이코패스인 베라 쿠리안의 장편소설로, 작가의 첫 장편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빠른 속도감으로 진행되는 사건들이 이리저리 교차하고 클로이의 주변을 맴도는 많은 인물들을 하나하나 의심했다가, 남자 주인공 후보로 낙점했다가, 역시 이 자식이 범인 같다고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500페이지 이상의 방대한 분량인데도 막히거나 루즈해지는 부분이 없는, 흡입력이 대단한 소설이다.

 

소설의 분위기 자체는 크게 무겁지 않다. 이따금 평범한 학교생활로 보이기도 하고, 클로이와 찰스, 앤드리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할 때는 이들이 끔찍한 살인범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평범한 학교 과제를 하고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문득 클로이가 사이코패스이고 자신의 복수를 위해 서슴없이 사람을 해할 수 있는(침입이라거나 절도라거나 각종 자잘한(?) 문제들은 차치하고서…) 성격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면, 그리고 클로이와 찰스가 자신이 ‘보이고자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다는 것을 곱씹다 보면 그들을 이토록 무해한 캐릭터로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조금 소름이 돋게 된다. 어쩐지 독자마저도 그들을 보고 한눈에 속아 넘어가는 멍청한 대학생 1이 되어버린 것 같아진다.

 

p.319 집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가엾고 아름다운, 폭군 찰리둥이에 관한 딱한 사실이. 윌을 처리하고 나면 찰스를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는 내 눈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소설의 재미에는 클로이의 거침없는 성격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적진에 쉽게 뛰어들지만 그로 인해 냉장고 속 여자가 되지는 않는다. 능숙하게 주변 인물들을 이용하고 기발한 수법을 생각해낸다. 화를 참지 않고 때로는 그 화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클로이의 피해는 ‘한’이나 ‘더럽혀짐’이 아닌 ‘분노’가 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사랑스러운 여성 캐릭터라고 느껴진다. 클로이가 도덕적인 캐릭터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클로이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소설은 클로이의 시점에서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클로이, 앤드리, 찰스, 와이먼 박사 등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러 인물의 시선을 짧은 챕터 사이마다 오가며 독자는 점점 더 이 스릴러 속으로 빠져들어 함께 범인을 추리하고 드라마틱한 관계성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밖에 없어진다.

 

주인공은 클로이지만 찰스와 앤드리 간의 대비가 시선을 끈다. 타인의 눈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진단된 사람과, 모두가 선망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진짜 사이코패스. 독자는 그 기이한 대비 속에서 책을 덮은 후까지도 과연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알아볼 수 있을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사실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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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시대 공감
명형진 외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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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설사 지금 내가 의인이라 할지라도 원수와 똑같은 악인이 될 수 있으며, 누구나 죄를 짓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를 미워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보듬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종교적 이야기를 떠나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볼 때가 있다. 결혼이나 퇴직 같은 인생의 전환점을 앞두고 있을 때, 일이 마음대로 잘 풀리지 않아 벽에 부딪혔을 때, 또는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진다. 『사제들의 시대 공감』은 여섯 명의 사제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삶의 방향을 함께 성찰해주는 책이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주님께 자신을 의탁하는지, 어떻게 해야 두려움과 싸우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하나하나를 읽어나가다 보면, 자연히 독자들도 자신이 살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이 가능해진다.

 

사실 신학 강의처럼 다가오는 딱딱한 이야기들은 학문적 소양을 높이기에는 좋지만 가슴 깊이 파고드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제들의 시대 공감』은 단순히 신학적 이론을 펼치기보다 사제 개인의 이야기를 신자들에게 내어놓는다. 신학교에서 사제의 길을 두고 고민하던 학생과의 사연, 몽골에서 만난 참새 한 마리를 보고 깨달은 것에 대한 이야기들은 텍스트로 읽어도 마치 곁에서 누군가 들려주고 있는 듯이 따스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게다가 각 챕터는 단지 내밀한 사연을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성경 말씀이나 사제의 깨달음을 덧붙여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신자들이 책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p.228 우리의 선함은 다른 이들의 회개와 연결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선함에 기대시어 잃어버린 이를 찾으신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서도 선함을 택한다. 아무도 모르는 선행일지라도, 나중에 받을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잃은 양을 찾는 지향으로 기꺼이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 깊이 파고든 챕터는 3부 <사랑, 그늘진 자리에 비추는 빛>이었다.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을 알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군가를 자꾸만 미워하게 된다. 그 대상은 때로는 아주 먼 지인일 때도 있고, 가까운 가족일 때도 있고, 심지어는 나 자신일 때도 있었다. 3장에서 한 신자가 ‘다른 말씀은 모두 기꺼이 따를 수 있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지킬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는 이야기에는 조금 웃으면서도 묘하게 공감을 느꼈다. 그러나 방종우 신부는 이 사연에 명쾌한 답을 내린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미움이 너 자신을 갉아먹게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사제의 해석을 읽고 어쩐지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껏 내가 나쁜 길로 가지 않도록 ‘구속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계명들이 사실은 내가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가톨릭에 큰 거부감이 있는 게 아니라면 비신자도 한번쯤 읽어보아도 좋은 책이라고 여겨진다. 따스한 목소리로 이루어진 책이 독자들의 삶을 보듬고, 위로하고, 응원해준다. 책의 말미 부록에는 이 책을 쓴 여섯 사제의 기도문이 수록되어 있다. 정성스럽게 쓰인 기도문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들을 은총으로 가득 채워줄 것만 같아진다. 오늘밤에는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도’를 바쳐 볼까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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