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 사랑과 돌봄에 관한 퀴어한 참조
캔디(윤다림) 지음 / 들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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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p.10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고 난 후, 수많은 퀴어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긴 시간 동안 많은 퀴어 친구를 떠나보내며 저에게 애도는 친구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퀴어할 수 없는 그들의 장례를 아쉬워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퀴어들에게는 오히려 더 빨리, 더 젊은 나이에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죽음 앞에서 가족으로서, 배우자로서 당연히 갖는 위치를 갖지 못하는 퀴어 커플들의 목소리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사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산지니 출판사의 퀴어한 장례와 애도를 떠올렸다. 장례 방식에서 고인의 정체성이나 가치관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견, 동성 파트너도 장례 과정에서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나 생동법, 차금법에 대한 책과 칼럼을 꾸준히 읽어 왔기 때문에 이 책도 그런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애도의 목소리에 더 가까웠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그리움의 정원에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책에는 고인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떠나보내기까지의 과정과 심정이 생생히 담겨 있었다.

 

요양병원과 호스피스를 오가고 유언장 쓰기를 시도하거나 장례식장, 장지를 고민하는 과정들, 그리고 고인의 원가족인 어머니의 배려로 임종을 함께했다는 이야기를 읽는 매 순간 슬펐고, 대단했고, 또 동시에 괴로웠다. 고인은 커밍아웃을 거의 하지 않은 퀴어였기 때문에 이 많은 과정에서 저자 캔디는 자신이 고인의 친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원가족의 동의로 임종도 지키고 상복도 입을 수 있었으나 상주는 될 수 없었고, 활동가였던 저자의 지인들이 장례식장에 찾아왔을 때 그들이 누구인지 이리저리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간병은 환자와 보호자 모두의 이야기지만 애도는 온전히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그 애도의 과정에서 자신이 고인과 얼마나 깊은 관계였는지 말할 수 없다는 건 어떤 심정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인을 추억하며 스스로의 방법으로 충분히 애도한 뒤, 다시 새로운 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자가 존경스러워진다.



 

p.177 함께 산다는 것은, 집 안에 든든한 나무를 한 그루 들이는 일이었나 보다. 물을 주고 햇빛도 쬐게 해주고 보살피는 공이 솔찬히 들지만, 그 나무가 자기 뿌리로 우리 집을 갈수록 든든하게 감싸안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퀴어들이 법의 테두리 바깥에 서 있다. 이들은 파트너의 간병과 장례 과정에서 법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따라서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은 물론이고 장례 절차에서조차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없애 보고자 활동가들이 항상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수 있을까, 지금은 레퍼런스이지만 어느 미래에는 단순한 회고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동성혼이 당연해지고 동성 배우자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비슷한 사례들을 어렵게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그저 슬픔과 애도의 목소리로만 이 책을 다시 대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다소 낙관적인 결론임에도 어쩐지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씩씩한 글이다.

 

오랫동안 내 북스타그램을 보아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체로 이런 서평의 말미에는 차금법과 동성혼 법제화를 촉구하며 <투쟁.>을 붙인다. 그러나 저자의 다정한 목소리와 또 다른 인연, 이 글을 함께 읽은 많은 퀴어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번 서평은 더 평온하게 마무리하고 싶다. 사적인 애도를 세상에 내보여 준 저자에게 감사드리며, 오늘도 모든 소수자가 죽지 않고 살아남기를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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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소녀 사이드미러 3
소향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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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영리는 사람이 숨을 쉬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돈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몰랐다. (중략) 그런 사람들은 아프거나 해고당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되는 순간 안전장치 없는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수학능력시험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물론 수능 점수의 위력이 다소 덜한 전형들도 있고 모든 학생들이 학업 성적을 토대로 진로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하루, 그 시험 하나에 인생이 걸려 있다는 인식은 매우 강하다. 소설 모방소녀는 그런 수능시험 당일 세상이 바뀌어버린 소녀 영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신 점수 1.0, 국내 최고 명문대에 합격해 아버지를 행복하게 해줄 미래를 꿈꾸던 영리는 교통사고로 인해 수능에 응시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중태에 빠진 아버지의 엄청난 병원비와 맞닥트리고 만다. 이런 영리에게 아버지가 기사로 근무하던 회사의 CEO ‘송 회장은 위험한 거래를 제시한다. 자신의 딸 초롬을 대신해 1년간 학교를 다니고 수능에 응시할 것. 길에 커피 한 잔을 버리고 가는 것도 납득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던 영리는 아버지를 위해 결국 그 부당한 거래에 뛰어들게 된다.

 

책은 한편으로는 클리셰적이고,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이나 영화 명왕성, 소설 풀꽃도 꽃이다등 한국의 과열된 입시나 사교육 의존성을 꼬집는 작품은 이미 존재하지만 모방소녀는 그러한 입시 카르텔을 꼬집는 동시에 송 회장이나 김겸의 서슴없는 부도덕을 조명하며 부유한 자들의 갑질에도 함께 주목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인물들은 대체로, 선과 악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지지는 않는다. 송 회장은 악역인 동시에 가정폭력과 학벌주의의 피해자성을 가진다. 공 비서 역시 송 회장의 수족으로서 불법적인 일들에 어느정도 동조하지만 그가 초롬과 송 회장에게 가지는 인간적인 마음만큼은 이 소설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p.324 응할 영, 이치 리. 옯른 이치에 응답하며 자신을 지킨다는 의미야. 힘든 일이 있어도 정의를 따라 바른길로 가면 그 길이 너를 지켜줄 거야.

 

질투와 동경을 동시에 보이며 적이 되거나 조력자가 되는 학교 친구들, 입시 카르텔에 동조하거나 또는 벗어나는 교사들, 겉으로는 번듯한 듯 보이지만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가정, 특이한 일타 강사 캐릭터 현건우 등, 모방소녀를 구성하는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현실에 살아 숨쉬듯 입체적이고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다. 사실 학생인 영리가 사회 고위층의 어른들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결말은 다소 유치하다고 느껴지면서도 내심 통쾌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쨌거나 영리와 초롬은 살아남았고, 앞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것도 이 두 소녀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초롬이 굉장히 안쓰러웠다. 모든 걸 가진 초롬은 밖에서는 안하무인의 부잣집 딸이었지만 사실은 이 소설을 통틀어 누구보다 많이 상처받은, 가장 불안하고 나약한 존재였다고 생각된다.

 

속도감 있는 전개, 현실의 몇몇 인물이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미묘한 요소들이 맞물려 순식간에 시간을 훔쳐가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소설로도 재미있었지만 드라마로 제작된다면 더 돋보이는 근사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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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나고 찢긴, - 여성 바디호러 앤솔러지
조이스 캐롤 오츠 외 지음, 신윤경 엮음 / 문학수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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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0 물론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생명은 너무너무 중요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임기 여성 전체를 잠재적 살인자 취급하면 되겠어요?


문학을 포함한 많은 예술에서 오랫동안 여성의 신체는 둘 중 하나로만 여겨져왔다. 성스럽고 숭고한 모체이거나, 조각조각 나뉘어 품평당하는 정욕의 대상이거나. 바디 호러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 속에서 더더욱 생소한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하는 열다섯 개의 단편이 담긴 조각나고 찢긴은 강렬한 핫핑크색 표지로 독자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다소 적나라하고 약간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표지의 그림은 나사나 관절 따위를 통해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인형의 긴 머리나 속눈썹, 색이 짙은 입술, 유방의 모양 따위를 통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인형을 여성으로 패싱하게 된다. 조각나고 찢긴여자의 몸은 이래야지’, ‘여성이라면 자고로 이렇게 생겨야지’, ‘여학생이니까 당연히 아름다워야지등 가부장제의 관념과 속박 속에서 부위별로 조각나고 찢겨 품평받으며 오로지 욕구나 폭력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던 여성의 신체를 가부장적 시선에 저항하는 작가들의 글로서 다시 재조립하는 책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갖는 특징은 여성의 신체를 대부분 신체 그대로주목한다는 점이다. 불필요한 성적 묘사나 미형적인 묘사에 집착하지 않고 신체를 단지 기능하는 신체로만 바라본다. 특히나 책의 포문을 여는 단편 프랭크 존스에서 에이미가 프랭크를 만드는 재료는 무려 쥐젖이다. 개인적으로 일부 남성 독자들(이 책을 읽는 남성 독자가 있다는 가정 하에)은 젊은 여성에게도 쥐젖이 생긴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페이지를 넘기며 조금 웃을 수밖에 없었다.




 

p.286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여성의 정신병도 도덕적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새 시대가 된 것이다. (중략) 내가 내 아름다움에 해를 끼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다움은 남편의 소유이기에 내 마음대로 파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난 배워야 했다.


흑인이었던 탓에 발레리나가 되지 못했던 할머니의 저주에라도 걸린 듯 몸이 부서져가며 춤을 추게 되는 손녀를 그려낸 댄스, 권총이 자아를 가지고 몸에 기생하게 된 은닉 휴대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편들은 바디 호러라는 장르에 걸맞게 비일상적이고 다소 기괴하다. 때로는 불쾌하거나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도 얼마든지 이러한 호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꼬집는다는 부분에서, 다소 고전틱하고 클리셰를 따르는 작품마저도 기발하다는 기분이 든다. 많은 여성들을 놀라게 했던 영화 서브스턴스에 이어서 다시금 가부장제가 얼마나 여성의 신체를 마치 본인들이 소유한 것처럼 대해왔는지 깊게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각 단편의 볼륨이 크지 않고 전체적으로 속도감이 있어 수시로 읽기 좋았다. 서문에 각 단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나 평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단편들을 모두 읽고 서문을 다시 한 번 읽거나, 단편부터 읽은 후 서문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신체를 품평하던 시대에서 모든 여성의 신체는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대가 오기까지 수 세기가 흘렀다. 이제는 아름답지 않은신체 그대로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조각나고 찢긴신체들의 회복을 바란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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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 - 테마파크 식물 총감독의 정원 이야기
이준규 지음 / 시공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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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텃밭은 아름답지 못하다’, ‘아름다운 정원은 환경친화적이지 못하다같은 편견을 깨는 혁신적 정원이 테마파크 안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회자된다면 서서히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지 않을까?

 

꽃과 풀을 보려면 길거리를 거니는 대신 어딘가를 찾아가야하는 대도시에 살면서, 드물게 정원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테마파크.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등 대형 놀이공원에서는 벚꽃축제나 튤립축제처럼 계절에 맞춰 꽃을 테마로 하는 페스티벌이 열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놀이공원 안에 그렇게나 많은 꽃이 자연적으로 색을 맞춰 필 리가 없으니 누군가가 그 화단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게 당연한데도,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를 읽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 본 적이 없는 기분이다. 아파트처럼 마당이 없는 집이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되고 정원과는 거리가 멀어진 삶을 살면서 어쩌면 우리는 정원이라는 것을 품을 들여 가꾸고 피부로 느끼며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딘가에서 타인에 의해 뚝 떨어진 보기 좋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않나, 싶은 마음을 안고 책을 폈다.

 

세상 모든 초록은 즐겁다는 정말로 제목처럼 즐겁게 정원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책이었다. 전체적으로 상냥하고 쉽게 쓰여 있어서 조경학이나 식물학에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독자들도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다. 책의 도입부에서 저자는 조경과 정원의 차이점을 묻는 교수의 질문에 조경은 소설이고 정원은 ’”라고 대답한 경험을 풀어낸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독자는 공공의 것이면서 맥락과 촘촘한 서사가 있는 조경개인의 것이면서 자유롭고 현란한 정원에 대해 깊게 생각하며 테마파크의 튤립 정원, 동네의 대형 공원, 아파트 단지의 화단 등이 조경에 속할지 정원에 속할지 고민해보게 된다.



 

p.247 첫 번째로 정원은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살아 있는 역사라 할 만큼 많은 역사의 켜를 가진 것이 정원이다. 다양한 시대와 다채로운 스타일, 여러 철학, 수많은 이야기가 정원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테마파크에서 계절의 한 순간만을 소비한다. 꽃이 가장 예쁘게 피어 있는 시기, 날씨가 좋은 휴일에 만개한 꽃이 가득한 정원을 사진으로 가지고 떠난다. 저자는 그런 꽃과 사람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정원의 울타리를 걷어낸다는 큰 결심을 한다. 화단의 훼손을 걱정하는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울타리를 없앤 결과 놀랍게도 오히려 화단의 훼손은 줄었고, 소비 대상이자 피사체에 불과했던 꽃은 사람들에게로 다가가 함께 어울리고 숨쉬는 자연이 되었다. 곧이어 고객이 없는 시간에만 가꿔지던 정원에 항상 정원사들이 함께하게 되면서 정원은 더더욱 자연스러워졌다. 사람들은 정원의 한 철 한 컷만을 보는 게 아니라 꽃이 피고 지는 모습, 날씨에 따라 잎을 떨구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순환과 생명에 대해 직접 느끼게 되었다.

 

조경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삶과 자연, 성장과 본질에 대한 저자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아름다운 정원 사진이 이따금 시선을 환기해주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나갔다. 이 책을 읽고 난 모든 독자들은 정원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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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헌터스
폴 윤 지음, 황은덕 옮김 / 산지니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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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어떤 기억이 남겨지는 데 어떤 선택이 있었을지 그는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기억이 잊히는지도.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그들 모두가 그럴 수 있다고 여겼던 순간들이 있었다.

 

모든 작가가 자신이 경험한 바를 토대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경험했다고 해서 반드시 더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조건 볼품없는 글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전쟁과 디아스포라 두 가지 주제만큼은 반드시 경험한 작가들이 더 잘 쓴다는 생각이 있다. 스노우 헌터스는 한국전쟁 북한군 포로 요한이 브라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한국계 미국인인 폴 윤의 장편소설이다. 전쟁고아를 위해 보육원을 설립했던 조부의 자료에서부터 시작된 스노우 헌터스는 디아스포라 문학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익숙하더라도 영미권에 국한되어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브라질로 이주한 북한 포로라는 신선한 전개를 통해 큰 울림을 던져냄으로써 독자의 마음속에 파동을 만든다.

 

역자 해설에서도 이미 언급되었지만 요한이 송환을 거부하고 브라질로 떠나는 장면에서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최인훈의 광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고 있으면 스노우 헌터스에서는 광장과 같은 고통이나 갈등보다는, 요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서정적 서술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 특유의 다정하고 수려한 문체가 마치 서정시처럼 그려내는 브라질에서의 삶은 많은 독자들이 요한이 전쟁의 트라우마와 이민자로서의 디아스포라를 견뎌내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게 만든다.

 

p.171 그가 놓쳐 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한 번 더 뒤져 보고 찾는다면 무언가를 되찾을 가능성이 있었는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는지.

 

그러나 분명히 전쟁의 슬픔은 존재한다. 요한과 펭이 눈 속에서 구조되는 장면은 물론이고 군화를 얻기 위해 전사를 기다려야 하는 펭의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브라질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동양인으로 살아가는 기요시와 요한의 존재 자체가 한국전쟁 생존자에 대한 증명이자 찬사가 된다. 요한은 브라질에서 많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있는데도 그의 독백에는 때로 외로움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독은 결코 비참하거나 서글프지 않다. 태양이 강렬한 브라질에서 그를 받아들여 준 이들의 환대는 전쟁 포로 요한이 한 명의 재단사로서 또 하나의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스노우 헌터스에서는 사실 거대하고 충격적인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요한에게 다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도, 그가 이민자로서 받아들여지지 못해 고뇌하고 슬퍼하고 쫓겨 도망치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요한은 그저 그곳에서 기요시와 페이쉬, 비아, 산티… … 사실상 그가 북한에 있었을 때는 발음할 일조차 적었을 이름들과 함께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상적인 삶을 통해 사회가 무너트린 개인을 다시 다른 사회가 재건하는 모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전쟁의 아픔과 전쟁, 내전, 빈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을 마냥 꺼려하고 불편해하는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 많은 사유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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