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떠나는 하루 답사 2 -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선생님과 떠나는 하루 답사 2
이채린 외 지음 / 나무의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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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강원도'의 '강'은 강릉에서 따온 말입니다.

그럼 '원'은 바로 원주입니다. 예로부터 강원도의

중심지역이 강릉과 원주였거든요. 강원도는 태백산맥을

두고 강릉이 중심인 영동, 원주가 중심인 영서로 나뉘어요.


선화당은 관찰사가 업무를 보던 건물로, 지금의 도지사

집무실과 같은 거예여. '선화'는 '선양교화'의 줄임말이에요.

'선양'은 왕이 훌륭하고 백성을 사랑한다는 뜻이고,

'교화'는 백성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뜻이에요.


원주시 토지길 1, 박경리 문화공원이 있어요.  길이름은

박경리 작가의 소설<토지>에서 따왔어요. 박경리 작가가

1980년 서울에서 원주로 이사 와서 살던 옛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는 남다른 사연이

있어요.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일본군은 조명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고 언제든 공격하기 위해 많은 왜성을 

만들었는데, 특히 순천왜성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가

있던 곳으로 조선, 명나라, 일본 등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장소예요. 100여 년이 지난 뒤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가 살기 시작했는데 밤마다 일본군들의 악귀가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지요. 무서움에 떨던 마을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며 사당을 지어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어 악귀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아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었지요.


이순신 장군은 이곳 순천왜성에서 빠져나가려던

고니시 유키나라는 일본 장수의 군대를 끝까지 

무지르려다가 노량해전에서 안타깝게 전사했지요.


순천왜성은 정유재란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데

그것은 사상 최초로 조명연합 육군과 해군 42,000여 명이

육지와 바다에서 전쟁을 펼친 현장이기 때문이에요.


선암사는 신라 진흥왕 때 아도화상이 고청량산 해천사라고

처음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와, 신라 헌강왕 때 도선국사가

선암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선암사의 심장, 대웅전 처마의 연꽃 봉오리 장식과

기둥머리의 용머리 장식은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의 화려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요.


드디어 순천 선암사의 보물 뒷간이에요. 화장실 건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요.


수원은 정조의 역작이라고도 불리는 수원화성이 있는

곳이에요. 장조는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로, 돌아가신

뒤에 추촌된 이름이에요. 사도세자는 1735년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영조와

오랜 갈등으로 인해 만 27세의 젊은 나이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은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내려갈 때 별도의 궁궐을 마련하여

임시로 머무는 곳을 말해요. 화성행궁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수원으로 옮겨 오면서 정조가 머문 

곳이에요.


방화수류정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혀요. 이 곳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용연과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화성능행도>는 조선 최대의 국왕 행차로 꼽히는 

7박 8일 동안의 화성행차를 그린 8폭의 그림이에요.

이 그림은 수원 행궁 근처 건물벽이나 장식물, 바닥

그림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어요.


덕수궁의 대한문으로 들어가면 앞에 작은 돌다리가

나와요. 그 돌다리의 이름은 금천교입니다. 이처럼

궁궐마다 돌다리를 만드는 이유는 바로 아래 흐르는

인공 하천 때문인데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하나의 경계선 역할을 한거 같아요. 일반인이

궁궐을 침입하는 일은 당연히 중죄입니다. 단순히

궁문을 들어온정도라면 어느 정도 봐주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금천교를 넘어서는 건 그 어떤 사정도 봐주지

않았어요.


증명전은 바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랍니다.

안에 들어가며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실물

크기의 마네킹을 볼 수 있어요.


어촌 마을 군산은 단숨에 교통의 요지이자 큰 도시로

성장하게 되지요. 일본은 자기 나라 국민들을

이주시키고 군산 땅에 일본일들의 진출을 장려하는 

정책도 펼쳤데요.


신흥동 일본식 가옥에서 멀지 않는 거리에 상당한

수의 근대 유산이 남아있으니 그 당시 신시가지를 

느껴보고 싶다면 주변의 건축물도 꼭 들러보세요.


조계란, 주로 과거 인천항과 같은 개항장에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을 말해요. 즉, 청나라 조계지에서는 

청나라 법이, 일본 조계지에서는 일본 법이 적용되었던

거예요.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이미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였대요. 지금은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그 당시에는 주로 

외국인들이 모이는 장소였어요. 


삼성혈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 제주

사람들의 전설적인 발상지예요.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을 지닌 건시문 지나 들어가면 지금으로부터 

약 4,300여 년전 제주민 세 명이 탄생한 세 개의

구멍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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