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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 속의 외침 - 2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8월
평점 :
중국 선봉파의 대표적인 작가인 위화의 첫 장편소설이라 한다. <형제>라는 소설은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위화의 소설은 대체로 중국 문화대혁명시기(1966년~1976년)를 배경으로 한가족의 삶의 과정과 투쟁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주로 과거에 대해서 화자의 기억에 의한 서술과 묘사를 통해 인간(주인공)이 거치는 생존기간을 시기별로 구분하여 소설 창작을 하고 있다.
<가랑비 속의 외침(유·소년)>, <허삼관매혈기(청·장년)>, <인생(노년)>. 그러고보니 우연찮게도 내가 읽은 순서는 위와 반대다.
중국에서는 현대문학이라는 말 대신 당대문학이라는 말을 쓴다는 정도로 중국 문학사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어 선봉파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마저 자료도 많지 않다. “중국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이하자, 1980년대 서구의 모더니즘 및 포스트 모더니즘적 문학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문학 작품들이 등장했는데, 이를 지칭한다.”고 하며 절대적 화자에 대한 회의가 있어 화자가 직접 등장, 실패된 사건을 진술한다거나 허구 속에 진리 있다는 신념하에 허구와 현실의 경계선이 붕괴되고, 현실적인 메시지 없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홍고량 가족>의 ‘모옌’과 프랑스로 망명한 <버스정류장>의 ‘가오싱젠’도 선봉파로 분류되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모옌은 그럴 것 같긴하지만 가오싱젠은?? )
책 앞날개에서 웃고있는 위화. 그의 사진을 보면, 판다곰 같이 검은 눈자위가 인상적이고, 매우 소탈해 보인다. 시골 촌부같은 인상의 그가 이렇게 재미있고, 슬프면서 통찰력 돋보이는 소설을 쓰는 중국 대표작가라는 사실. 아무튼 중국 '당대문학'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볼 일이다.
이 소설은 마오쩌둥이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 실패후 정치적 위기에 몰리자 추진하게된 문화 대혁명 발발시점인 1965년 중국 베이징 근교 '남문'이라는 농촌(물론,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아버지 쑨광차이와 아들 3형제 쑨광핑, 쑨광린, 쑨광밍. 이들 4부자의 생활과 할아버지를 비롯한 윗대 조상들의 이야기, 주변인물과의 관계, 친구와의 우정 등을 화자인 쑨광린의 파편화된 기억을 따라 서술하고 있다. 이런 소설이 대부분 그렇듯, 다 읽고 나면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합쳐져 나중에는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완성된다.
주인공 쑨광린은 이 쑨씨의 삼형제 가운데 둘째 아들인데 존재감 없는 국외자로서의 관찰과 체험을 바탕으로 유,소년기의 사건,사고들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일단 그의 아버지 쑨광차이는 집 건너편 뚱땡이 과부와 정을 통하는 개망나니로 매우 폭력적인 인물, 어머니는 우리 조선시대 여인처럼 묵묵히 참고 견디는 인종의 미학을 실천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1장과 2장은 장성한 주인공 쑨광린이 유년기(6살까지)의 고향 ‘남문’에서의 삶을 추억하고, 3장에서는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등 윗대 조상의 삶(일제강점기, 국공내전 시기)이, 마지막 4장에서는 양자로 끌려간 도회지에서의 학교생활과 양부가 죽고, 양모가 떠나자 소년(11,12살 무렵)이 되어 다시 고향 '남문'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끝마쳐 진다.
이 소설은 중국인 특유의 과장과 해학, 그리고 엽기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지지리 궁상인 웃픈 현실을 능청스럽게 드러내는데 그 기억력과 묘사가 놀라울 따름이다.(어린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 묘사,서술되는 어른들의 폭력성과 아이의 순수함,추악한 이기심과 본능적 충동, 그리고 인간적 자존심의 대결 등은 극적효과를 증폭시킨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공간은 마치 주성치 영화 <쿵푸허슬>의 배경이 되는 해방촌의 분위기(강호의 무림고수가 숨어사는 해방촌에서 폭력조직 도끼파와 싸움이 벌어지는 농촌 버전)인데 그에 걸맞게 식칼과 도끼가 난무한다. 실제로 형 쑨광핑은 자기 아내이자 며느리를 건드리는 개잡놈 아버지 쑨광차이에게 도끼질을 하여 왼쪽 귀를 자른다. 유혈이 낭자한 피비린내, 분뇨냄새, 밤꽃향기가 섞인 원초적 분위기가 연출된다. 즉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본능, 폭력 등 억압된 욕망의 분출과 가까운 가족, 친구, 지인의 죽음이 주된 기억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한편 젊은날, 위화의 첫 장편이어서 인지 공포와 고독에 대해 작가의 감수성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문장이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특히 양모인 새어머니 리슈잉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그 여자는 습기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해 손으로 공기중의 습도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매일 새벽 마른 걸레를 들고 그녀의 방에 들어가 창유리를 닦고 있으면, 그녀는 푸른색꽃이 새겨진 모기장 밖으로 손을 내밀어 뭔가를 만지듯 공기를 만지며 방금 시작된 그날 하루의 습도를 알아보곤 했다. 처음에는 어찌나 놀랐는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몸은 다 모기장뒤에 숨어 있고 창백한 손 하나만 달랑 나와 손가락 다섯 개가 천천히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꼭 잘려나간 손이 공중을 떠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너 축축함이 어떻게 생기는지 아니?”
그녀가 말했다.
“바람이 불어서 그런 거란다”
난 지금도 그 시절에 보냈던 오후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햇빛이 맞은편 산등성이에 가로막힐 때면 리슈잉은 창문 앞에 서서 마치 버림받은 사람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산 저편 하늘의 붉은 빛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듯 내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햇빛은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데 산이 중간에서 가로채 갔어.”』(292~294쪽 발췌)
민중들이 겪어왔던, 어려웠던 한시대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서로 엮어 정교하게 그리고 있는 위화의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사람이 이세상에 나서 죽기까지, 먹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고, 고달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