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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개념어 사전
채석용 지음 / 소울메이트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퇴직을 앞둔 선배는 초조한 듯 말했다. “나가서 뭐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한 눈동자로 “겁난다.”고 말한다. 어이가 없다..물론 돈이 없어서 아이들 대학등록금 때문에 재취업이나 장사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겠다. 부동산 재테크를 잘해서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면서 개포동에도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뭐 그리 두렵나? 나같이 상계동에서 전세사는 사람은 어쩌라고? “그냥 하고 싶은거 하면서 노세요. 여행도 하고,..취미가 있을거 아녜요?” 없단다. "하다 못해 동주민센터에서 종이접기라도 하세요!" 이 선배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 군대, 회사 등 조직생활 속에서만 “양육”되었던 것이다. 악착같이 돈만 벌면서... 주체성없는 삶. 자기정체성을 모르고 여태까지 살아온 것이다. 참으로 불쌍하고, 한심하다. (물론, 그는 집없는 나를 두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그래서,사람이 살면서 중요한 것이 결국 “철학”이구나! 하는 생각.
선배에게 이 철학 개론서를 추천해 주고 싶다. 그는 물론 고맙다고 하면서 책의 정가를 먼저 보겠지만, 읽지는 않을 것이다. 은마 아파트 재건축 부담금이 얼마나 되고, 재건축후에는 값이 얼마나 더 오를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일일테니...(어쩌면 이것이 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철학적 입장은 당연히 미국의 '실용주의'[이 책 212-216쪽] 에 가깝다.)
이 책의 지은이 채석용은 학부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했는데 외국 유학을 가지않고, 한국학 중앙연구원에서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순수토종학자다. 대전대에서 선생노릇하면서 학생들과 대화하고,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같이 배운다는 자세도 바람직하다.
이 책은 원앤원북스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는데 ‘소울메이트’라는 인문·사회 브랜드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책이 독자를 위한 것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독자의 꿈을 사랑하고,
그꿈이 실현될 수 있는 도구를 세상에 내놓다.” 훌륭한 출판 철학이다.
게다가 “미신과 신비주의에 항거하다 무참히 살해된 19세기청년 슈발리에 드 라바르의 곁엔 불테르가 지은 『철학사전』이 놓여 있었다.” 본문을 읽기도 전에 왠지 믿음이 간다. ‘지은이의 말’에는 이 책을 읽는 독자에 대해 겁박?하는 말이 있다. “이 책은 설령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줄지언정 어떠한 개념어에 대해서도 결코 애매모호한 말로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가지는 말자는 신념에 따라 지어졌다. 간단명료! 이것이 이 책의 이념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독자들 책임이다.” 패기가 하늘을 찌른다.
“필자의 주관적 시각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명료하게 제시된 객관적 정보를 토대로 독자여러분들께서는 필자와의 한판의 지적대결을 벌여보시기 바란다.”
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의 솔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사실 철학개념에 대해서는 네이버에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이런 객관적 정보가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판단의 명료함이 서양철학 뿐만아니라 동양철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과 함께 드러난다는데 있다. 또 “철학”에 대한 아래와 같은 예화는 책의 재미를 더한다.
“지금 어느 남학생이 카페에서 한 여학생과 소개팅을 하고 있다 치자. 자연스럽게 코를 올리고 눈의 앞뒤를 튼 성형미인 여학생이다. 플라톤을 비롯한 모사론자들은 그녀의 성형한 얼굴을 가소롭게 볼 것이다. 참된 아름다움은 그렇게 모방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헛돈 쓴 여학생을 노려본 후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다.
헤겔을 비롯한 절대적 관념론자들은 그 여학생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하는 절대정신의 현현이라 칭송할 것이다. 자연은 불완전하다. 인간의 노동이야말로 불완전한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참된 행동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아름다운 당신의 성형얼굴에 찬사를 보냅니다.”
성리학자들은 그녀의 얼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그녀가 착한 일을 많이 했는지, 어느부모의 자식인지, 차마시는 태도는 어떤지, 눈빛은 어떤지에만 관심을 쏟을 것이다. 집요한 호구 조사와 스펙 조사로 소개팅 자리가 갑자기 면접 자리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
만물일체설을 주장하는 도가사상가들은 그녀가 누가 되었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신봉선이나 김태희나 만물은 똑같다. 우주 안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주관적 감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다 끌어안는다.
회의주의자들은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것을 누가 확신할 수 있느냐고 따지면서 아름다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신이 예뻐 보이기는 하지만 진짜 예쁜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뇌까리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자, 여러분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철학적 입장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왕 철학을 가진 인간이라면 자신이 가진 철학의 정체 정도는 아는게 좋지 않을까?”
저자의 각 개념어에 대한 설명과 평가뒤에는 관련 개념어가 나와 있어 찾아서 같이 읽으면 훨씬 효율적인 독서와 이해를 할수 있다. 예를 들어 비트겐슈타인과 관련되는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어는' 언어적 전회','논리적 원자론','논리실증주의','미메시스'가 관련 된다.
이런 책은 한번 쓰~윽 읽고 마는 책이 아니다. 그려면 남는 것도 없다. 부제(철학적 사고를 일깨우는 100개의 개념들!)에 씌여 있듯 철학 개념에 대해 의문이 들때 마다 곁에 두고 조금씩 읽어 나의 둔한 철학적 사고를 일깨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