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3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복구자비필고 (伏久者飛必高)"라는 말은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菜根譚)'에나오는데  오랫동안 엎드려 (움츠리고) 있는 자(새)는 반드시 높게 난다는 뜻이다. 고시생들이 책상 앞에 붙여 놓는 경구로도 많이 쓰이는데 문득 이 말이 생각난 이유가 있다. 요즘 고전을 읽으면서 긴호흡의 독서를 묵묵히 하면서 '독서의 힘과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는 본래의 의도와 달리, 갈수록 심드렁해지면서 독서속도가 추~욱, 쳐진다는 점 때문이다. 이러다 높이날기는 커녕 너무 오래 엎드려 있다보니 침흘리며 잠들어버린다는 것. 고시낭인이 이래서 생기는 구나. 아아, 그렇다. 긴호흡이 필요하긴 하지만 계속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주식투자에도 적용되는 모양인데, 제는 움츠리면서 힘을 비축했는지,아니면 날 기력이 없어서 주저앉아 있는 것인지 구별하는 현명한 눈이 필요하다.

아무튼, 소설로 돌아가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게 된 레빈과 키티도 처음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독신시절에는 남의 결혼생활을그 자질구레한 걱정과 입씨름질투 등을 보면 그는 마음속으로 그저 얕잡듯이 미소지을 뿐이었다그는 장차 자신의 결혼생활에는 그와 같은 일들은 결코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외적인 형식가지도 남들의 생활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러나 놀랍게도 그와는 반대로 자기와 아내의 생활은 남다르게 짜여지기는커녕 오히려 모든 면에서 그가 이전에 그렇게 경멸하였던 아주 하찮고 자질구레한 일들로 짜여져 있었다”(2권 제5부 474)라는 남편 레빈 입장의 서술에서 보듯 결혼생활은 질척질척한 현실인 것이다.

알콩달콩한 신혼초최초의 입씨름은 레빈이 30분 정도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 키티는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레빈이 혼자 아픈 형에게 갈려고 할 때 그럼 어째서 당신은 결혼 같은 것을 했어요자유로운 몸으로 지내시지.... 이제와서 후회할 바에야?... 라며 훌쩍거리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하더라도 현실의 결혼생활에서 부부싸움이 이 정도라면 귀여운 애교에 불과하다.

소설을 읽다보니,첫문장에서 그랬듯이 이야기 서술구조나 인물, 사상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은 대구나 대조를 이용해서 이야기를 교묘하게 직조해 나가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귀족과 민중(농노,농부) , 인물 상호간의 성격이나 성향, 복수와 용서행복과 불행무신앙과 신앙 등과 같이 대구 또는 대조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수 있다예를 들어 안나의 오빠인 오블론스키라는 인물을 봐도 그는 안나와 달리 매우 현실적이면서 능청스럽다. 그러면서 바람기는 다분한 인간이지만 파경에 이르지는 않을 정도로 얍삽하다.(그의 비하면 아내 돌리는 안나의 본능에 충실한 사랑을 부러워하다가도 자식생각을 하며 가정으로 돌아간다)

동생안나가 산욕열로 사경을 헤맬때도 그의 바람기는 계속된다.“공작부인 벳시를 현관까지 배웅하고 다시한번 그녀의 손에,장갑위로 맥이 뛰고 있는 손목 언저리에 입을 맞추고 그녀가 성을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라할 만큼 쑥스러운 농담을 퍼붓고 나서 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누이방으로 들어갔다그는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스테판 아르카디이치는 금방이라도 기뻐 날뛸 만큼 즐거운 기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이내 자연스럽게 그녀의 기분에 맞춰 감상적이고 동정어린 분위기로 표변했다.”(4부 372

이들 남매는 오빠가 바람피워 어려움에 처할 때 동생안나가 도와주고안나가 부정을 저질러 곤경에 처할 때는 오빠 오블론스키가 도와 준다.피는 못속인다 했던가바람둥이 집안이다에밀졸라식으로 말하면,이런 바람기는 유전인 것이다반면 안나남편 카레닌은 그에게 호감을 갖고 덤비는 리디야 이바노브나 백작부인에게 어떤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쑥맥이다그에게는 모든 여자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는 두렵고 징그러운 존재였다”( 5527)

또한 대구구조는 레빈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 주는 스비야쥐스키와 상심에 젖어있던 키티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바레니카를 통해서도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서 톨스토이는 인간의 성숙에는 고통과 함께 교육의 중요성과 이러한 정신적 스승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소설에서의 이러한 대구 또는 대조구조는 감정과 이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드러난다브론스키가 지방자치 선거회의에 참석할 때 그의 눈빛을 보며 안나는 그 눈빛은 그이의 마음이 식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6부 228)라고 생각하며 사랑과 매력만으로 그를 묶어둘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낮에는 일밤에는 모르핀(아편)으로 버티면서 그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신경쇠약상태에 이른다결국 후반 제7부 에서는 카레닌에게 "당신은 ... 당신은 이 일을 틀림없이 후회할 거예요".라며 협박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성이 주어져 있는 것이라면 벗어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성적으로 생각하지만 결국 충동적으로 기차자살을 기도하다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고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몸을 일으켜 뛰어나려다 "꽝! 질질~"...여기에서 끝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소설은 이후 제8부까지 이어져 안나 사후 처리상황에 대한 설명이나 레빈이 삶과 신앙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 장면까지로 질질 끄는 느낌이다.   

물론 안나는 무척 감정적인 인물로 사랑에 대한 불안속에서 사회의 기만과 허위에 대해 극도의 혐오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성향은 모든 인간이 누구나 갖고 있으며 상황과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그리고 인생이란 이런 감정과 이성의 엇갈림속에서 살아가는 모순(또는 아이러니)투성이다는 사실이 톨스토이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중 하나는 '복수와 용서'라고 생각한다과연 인간이 인간의 잘못에 대해 진정한 용서를 해줄수 있는가? 최근 '검사 성희롱사건'에서도 누가 누구를 용서하느냐는 얘기도 나오던데, 이야기의 맥락은 다르지만 갑자기 우리 영화 이창동감독의 '밀양'이 떠오른다.

"그러나 심판을 우리들이 할 수는 없겠죠, 백작부인."세르게이 이바노비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했다."(제8부448쪽) 그리고, 이 소설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인 카레닌은 아내의 장례식에 참석하고,브론스키과 아내 안나사이에 난 딸까지 넘겨받는다. 구질구질한 삶이고, 인생이라하더라도 그는 꿋꿋히 참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은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극적 구성상 굳이 없어도 될 듯한 결말부분은 레빈이 신앙에 대해 눈을 뜨는 얘기다."아내의 분만중에 그에게는 이상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무신앙자인 그가 기도를 시작했고 심지어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신을 믿었던 것이다. (제 8부446쪽) 과연 이것이 신앙이라는 것일까? 그는 자기의 행복을 좀처럼 믿지 못하면서 생각했다. 아아, 하느님, 당신께 감사합니다!"치밀어 오르는 오열을 꿀꺽 삼키면서, 그리고 두 눈에 넘쳐흐르는 눈물을 두손으로 닦으면서 그는 말했다."(제8부 490쪽)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문화적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이겠지만 도스또예브스키가 극찬했다거나 서구문인들이 최고로 꼽는 소설이라는 이 [안나카레니나]가 위대한 고전으로 계속 읽혀지는 이유는 우리네 삶이 그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네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당대의 사회문제와 인간 본성에의 탐구 그리고 행복의 본질에 대한 천착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읽고, 글쓰기가 만만치는 않구나! "밥벌이로서(써)의 글쓰기"는 커녕, 취미로서(써)의 책읽기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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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0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 로쟈님 톨스토이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면 이번에 톨스토이 대표작들에 도전해보려고 했어요.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네요. 저녁 6시 이후에 강연이 시작했으면 좋았을 거예요. ^^

sprenown 2018-02-04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로쟈님이 대구에 자주내려와 강연을 하는가 보네요..아쉽겠어요.반가워 하실텐데. 전 이제 톨스토이는 좀 쉬었다 읽을까 싶네요.^^.도스또 형님께도 안부인사드려야 할것 같아서요.ㅎㅎ편안한 휴일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