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틈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가 권여선의 작품은 우연히 '토우의 집'이라는 장편소설과 '안녕 주정뱅이'라는 소설집에 나온 단편소설 '봄밤'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이야 문제작가구나.. 술도 엄청 좋아하고..나랑도 코드가 맞는데다 거의 동시대를 살았다는 친근감..우후~ (사실 나보다는 몇년 누나뻘이다. 그래도 80년대에 대학생활을 같이 했었다는 동질감과 소설에서 묘사되는 풍경이나 시대상황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같이 겪었다는점?)

 

그녀의 이 소설은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80년대 대학신입생 시절에서 부터 밀당하면서 애끓었던 연애.. 그리고 배신.. 친구와의 우정.. 어릴적 아버지와의 추억과 아버지의 초라한 현재의 모습( 나, 아직 안죽었어.. 이 년들아!),그리고 어머니,외할머니,이모들 등 여인군단과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소설은 굳이 분류하자면 아픈 성장소설 이랄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게 단순히 분류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삶속에서의 인간관계..사랑과 우정,신뢰의 문제는 모든 인간에게는 보편적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1때'광주'를 겪고나서,  80년대 후반 나도 대학을 다녔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30년전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전두환 군사정권하에서, 분단현실 아래서, 농민과 노동자의 한맻힌 절규를 들었다. 광주의 아들인 나는 "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소심하고, 비겁한 나... 그녀의 '젖은 방' 처럼 축축했던 나의 자취방..번개탄에 불피우던 때.. 새어나온 연탄가스로 어지러웠던 기억..이제는 한줄 한줄 읽는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반드시 그녀가 전하는 말을 끝까지 듣고 싶었다.

 

읽을 수록 이 작가는 참 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푸레나무'의 김태정 시인처럼 그때의 선배들은 정말 치열한 삶을 살았구나...지적이면서도 면도날 처럼 날카로운 그녀의 문장과 문체는 가끔씩 내 심장을 예리하게 스쳐 지나간다. 뜨끔하고 에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나는 피를 흘리지 않았다. 능청스런 작가가 숨겨놨던 웃음코드가 가끔씩 지혈제 역할을 하기도하고, 통쾌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침착하게 장갑을 끼려다 말고아직도 고개를 처박지 않고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나를 보자 들고 있던 가죽장갑으로 내 뺨과 이마를 찰싹찰싹 후려갈겼다. 나는 얼얼해진 얼굴을 싸안으며 고개를 처박고 울었다. 곤봉으로 맞았다면 이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을 것을...."(121,122쪽)

 

" 한영은 내 손찌검에 쓰러졌고 쓰러진 김에 길바닥에 꿇어앉아 목놓아 울었다. 나는 그를 연거푸 세 차례 때리면서 마음이 아프기는 커녕 뜻하지 않은 쾌감을 맛보았다.  폭력에 맛들인 내 육체는 꿇어앉은 그의 왜소한 무릎을 박살내어 앉은뱅이로 만들고, 그의 목에 새끼줄을 매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구걸하게 만들고 싶었다."(244쪽)

 

권여선 작가의 본명은 계집 희(姬)에 부러워할 선(羨,) 권희선이란다. 이 책 말미에 문학평론가 정여울과의 인터뷰가 있는데 솔직한 작가의 심정과 소설쓰기에 대한 태도가 담겨있다. "항상 술집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친구랑 '술집을 하자!'이런 포부로 뭉쳤던 적도 있다."(299쪽) 그러나, 술집동업을 하자고 약속했던 그 친구가 전날 술 먹고 헤어지고 그 다음날 저녁때 한강에 투신 자살을 했다. 내가 그녀에게 모진 소리를 한마디 했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던진 가혹한 말이기도 했는데.."(306쪽)

 

아마, 그 사건이 자연인 권희선이 소설가 권여선으로 변신, 이렇게 소설을 쓰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평생 지울수 없는 죄책감...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나이 먹는 건 좋은 것 같다. 삶이 점점 이배속, 삼배속으로 스피디하게 진도를 뽑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녀가 이제는 술을 조금만 마시고, 그녀 특유의 날카롭고 예리한 문장으로 이 알량한 밥벌이를 핑계로 매너리즘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는 나에게 '그때는 그렇게 비겁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앞으로는 주체적으로 너의 온전한 삶을 살기 바란다.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라고... 정 힘들면 나랑 같이 소주나 막걸리 마시자!'며 따뜻한 위로 건네는 소설을 계속 써주기를 바란다. 말하는 냄비가 들려주는 '아라비안 나이트'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11-1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이 빠르게 지나간다면 영화 한 편이 진행되는 것처럼 흘러 갈거예요. 리처드 매드슨의 단편소설에 영화 러닝타임과 같은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

sprenown 2017-11-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감사합니다.기회되면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