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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의 여인
이순원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순원의 소설 '은비령'은 아직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니 작가의 고향에 대한 애틋한 정과 사랑이 담뿍 느껴진다. 이번에는 '대관령'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 소설은 차라리 긴 단편이나 중편으로 구성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대관령이나 스키에 대한 얘기가 너무 장황하다.(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그렇게 썼다면 그건 너무 정치적이다.)
다만 소설 중간에 나오는, 조르바와 같은 자유로운 영혼과 맥가이버 같은 만능 기술자로 묘사되는 '길 아저씨' 캐릭터는 인상적이다. "열심히 일만하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인생을 즐기며 지나가는 시간이나 다 똑같이 귀한 '그때의 시간'이지...인생은 그때의 시간으로 즐겁고 의미있게 살아야 하는 거라고. 인생에서 다음이란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 접근할 수 없는 과거나 마찬가지의 시간인지. 지금 할 수 없는 것을 다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가?"(180,181쪽)
어머니가 혼혈일본인으로 대관령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간 '연희'(외할머니가 미국인이다)와 주인공 주호와의 알듯 말듯, 있는듯 없는듯, 봄눈처럼 녹아버린 사랑얘기.
한때 배달민족, 단일 민족으로서 피의 순수성(완전 난센스다!)을 강조하던 사회분위기에서 요즘은 소설에서도 이런 다문화가족에 대한 이해와 사랑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이문열의 '리투아니아 여인',박범신의 '나마스테'. 책으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영화로 본 김려령의 '완득이'등.
그럼에도 작년 동리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이 소설 '삿포로의 여인'의 작가 이순원은 여전히 피의 순수성에 대한 욕망이나 혼혈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작가의 화신인 주호가 대관령에서 연희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옹하는 장면에 대한 회상. "돌아보면 스물다섯살의 젊은 사내가 울다가 막 눈물을 그친 열여덟살의 여자아이를 두 팔로 끌어안고도 몸과 마음에 물기 하나 없이 덤덤했던 건 그날 연희를 데리고 대관령 휴게소로 가면서도 바로 내일이면 다시 그동안 벽장속에 넣어두었던 가방을 챙겨 서울로 가는일에 온 신경이 사로잡혀 있었던 때문이라는 건 끝내 몰랐을 것이다."(229쪽) 라는 진술은 비겁하고,구질구질한 변명에 불과하다.(최소한 무의식적 거부반응이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혼혈인이 왕성히 활동하고, 그래도 대접받는 분야는 여전히 연예계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했겠는가? 박일준, 윤수일, 인순이... 특히 난 인순이의 "비닐장판위의 딱정벌레"라는 노래를 들을 땐 한량없이 처량하고 구슬프다. 안되는 걸 알면서도 날고자 발버둥치는 거위의 안쓰러움은 또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사랑의 순수함이나 안타까움에 대한 얘기로는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를 능가하는 작품이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잔망스러운 윤초시네 손녀딸...그녀의 죽음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