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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나의 인생 - 김원일 산문집
김원일 지음 / 열림원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내가 좋아하는 <겨울 골짜기>,<마당 깊은 집>,<불의 제전>의 작가 김원일. 그의 그림에 대한 산문집이다. 미술 문외한이 내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선뜻 구매한 이유는 요즘 그림에 관심을 가져 볼까 하던 참인데다 그의 소설은 많이 읽었지만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그의 산문집이기 때문이고, 게다가 그림에 대한 글인 까닭이다.
소설가는 그림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마도 그림과 화가에 대해 이미지와 이야기를 엮어서 자신의 삶에 투영해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대로 적중했다. 수준에 맞는 딱 내취향이다.
그가 쓴 소설 <노을>을 읽으며 ‘상당히 회화적이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어린 시절 그림과 화가에 대한 열망과 동경이 있었던 모양이다. 특히 <발견자 피카소>라는 그림 해설서까지 낸 걸로 보아 피카소를 가장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운좋게 <발견자 피카소>도 같이 구매했다.)
책 서문격인 ‘글쓴이의 말’을 보면 “내성적인 소년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순정이 이 나이가 되도록 미련으로 남았던가, 언젠가 다시 그림을 시작해보겠다는 꿈을 간직한 채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쫒아 다닌 탓일까.”(6쪽) 그의 그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남로당 간부인 아버지, 월북자 가족 장남으로서의 가난하고, 신산한 삶이 그 길을 막았을 것이다. 글쓰기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되는, 뻗쳐오르던 예술적 열망을 펼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방편이었을 테니, 소설은 그에겐 어쩌면 숙명일 수밖에.
그림에 조예가 깊은 소설가의 글 답게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부터 시작해서 베이컨「누워있는 여자」에 이르기 까지 유명 서양화가, 뿐만 아니라 장승업의 「호취도」, 김관호의 「해질녁」등 우리나라 화가의 이름난 그림까지도 망라하면서 그림과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유장하게 풀어 놓는가 하면, 그림과 관련된 작가 개인의 삶 또는 아픈 가족사를 반추하면서 쓴 글들에는 김원일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고, 묵직한 울림이 있다. 예를 들어 고갱의 그림「흰 말」앞에서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을 떠올리며, 고갱의 삶에서 토마스 만의 ‘시민성’과 ‘예술성’의 갈등과 긴장을 느낀다던지, 로트레크의 「아델 백작부인의 초상」에서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모습속에서 ‘슬픔을 이기는 인내’를 느끼며 엄격하고, 강인했던 홀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족사를 언급하는 것이다.
한편, 그림에 취해선지 과거 회상에 취해선지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감성적 글쓰기가 글의 논리적 전개와 모순된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퇴폐적인, 황홀한 관능미, 클림트의 「키스」”에 대한 글을 보자.
[여자의 옴츠린 어깨와 얼굴을 두 손으로 다소곳하게 감싼 그림속의 남자 옆모습은 에티오피아의 용병인 듯 완강한 넒은 어깨에 근육질의 구리색 피부요 곱슬머리다.그런 강건한 체격이 여자들이 잠자리에서 원하는 전형적인 남성성이다. 눈을 살풋 감고 남자에게 입술을 찍히려 교태를 부리듯 넓은 망토 안에 몸을 반쯤 순긴 여자야 말로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요염한 자태다. 매달리듯 팔을 남자 어깨 뒤로 돌리고 무릎을 꿇은 여자의 맨발이 풀밭 끝 벼랑에 떨어질 듯 닿아 있다.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거나 남자가 포옹을 풀어버리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숨막히는 사랑의 절정, 풀밭의 절정에서 관능만의 몸과 몸이 맺어 지는 한 순간이다.」(34쪽) 그래, 그렇다 치고.
마지막 서술은 이러한 감상평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느껴져 왠지 불편하고, 어색하다. [「키스」에서도 보여주듯, 클림트는 겹겹의 옷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던 여성의 관능을 대담하게 밖으로 끌어내어 남성의 지배 아래 놓였던 여성의 상대적 평등과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므로 클림트는 그의 사후,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과 함께 성의 담론을 본격적으로 매스컴에 올리는데 크게 공헌했다.페미니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임을 그는 이미 예견하고 있었을까.](37쪽)
클림트의 「키스」가 페미니즘의 길을 연 위대한 작품이란 말인지, 아니면 역설의 미학을 표현 한 건지, 아리송하다. 어쩌면 이러한 방식의 서술이 그의 소설이 갖고 있는 한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비겁? ‘시민성’과 ‘예술성’사이에서의 고뇌의 흔적? 균형감각? 그럼에도 그는 당대 누구 못지 않은 개방성과 진보성, 인간애와 진정성을 갖춘 뛰어난 소설가임에는 틀림없다.) 돈이 없어 화가의 길을 가지 못하고, 먹고 살기위해 신문을 돌리면서 간신히 학교졸업을 했던 그.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7,80년대 엄중한 군사독재 정권에서 소설을 쓰면서도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을 해야 했던 트라우마가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는 우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 못지않은 피해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원망과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를 생각해서였을까? 이 책에는 아버지로 인해 가난과 고통을 겪은 가족사가 자주 등장한다. 유형지에서 돌연 귀가한 혁명가를 그린 일리야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편에서는 유격투쟁을 벌이고, 월북한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아버지가,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 가족을 그린 케테 콜비츠의 스케치화 「시립구호소」편에서는 아버지의 월북이후 삯바느질로 연명하며 고단한 삶을 산, 그래도 세상에 대해서는 자존심을 지키던 어머니가, 온유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린 조르주 루오의 작품 「성스러운 얼굴」 편에서는 “형님, 나 더 좋은 시를 쓰고 싶은데...”마지막 말을 남기고 25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한 시인 막내아우가 등장한다. 눈물겹도록 애달픈 가족사다. 후반부에 월북화가 길진섭외 3인의 「전쟁이 끝난 강선 땅에서」라는 작품 설명에서 작가의 단상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통일이 된다면 자기 이념의 선택으로 월북한 예술가들의 그 땅에서의 삶과 내면적 고뇌를 듣고 싶다. 분단 반세기를 넘겼으니 이제 얼추 세상을 떠났을 테고, 청소한 나이에 월북하여 아직 생존해 있을 살아남은 인사를 생각해서라고 통일이 더 늦추어져서는 안된다.](201쪽)
이 책이 거의 20년 전에 출판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소한 나이’에 월북한 사람들도 생존해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제 ‘한반도의 봄’이 더욱더 무르익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결코 안된다는 절실한 심정으로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한반도의 통일을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