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 보는 서양미술 살림지식총서 176
권용준 지음 / 살림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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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더워지는 요즘은 두꺼운 책보다는 이런 식의 소책자 형태의 책들에 눈이 간다. 작고, 얇은 책이면서도 무식을 면할 만한 기초지식이 나름대로 알차게 담겨 있는데다 가격도 착하다.

 

일단 목차를 보면,

인간- 절대미의 탐구

()의 이름으로: 관념적 리얼리즘

죽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향락 혹은 그 반대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이것만 봐도 뭔가 화~악 땡기는 느낌? ㅎㅎ

일단 이 책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서양미술에 대한 주관적 느낌과 이해를 바탕으로 씌여졌다. 물론 전문가가 보기에는 미흡해 보일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서양미술을 보는 시야를 틔여 주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인류역사를 통시적으로 볼 때, 구석기는 시각성을 앞세우며 신석기와 이집트는 관념성을 추구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시각성을, 중세에는 관념성을 주로하고, 르네상스 및 철저한 이성의 예술인 고전주의는 다시 시각성을 위주로 한다. 그리고 인간의 감성을 인식의 수단으로 하는 낭만주의는 관념 중심이며 사실주의는 그 반대이다. 이후의 인상주의와 야수파,입체주의 등 현대 미술은 다분히 관념성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44)는 서술은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상당한 통찰력이 있는 듯 하다.

 

또 이 책의 미덕은 서양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에 대해 그 배경과 저자의 이해를 이야기식으로 엮어내서 재미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메멘토 모리: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편을 보면 바니타스에 대한 생각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꼽으면서 이 작품하단에 위치한 해골의 왜상(anamophosis)’에 대해 분석한 내용은 꽤나 흥미롭다.

 

[이 해골에 맑은 크리스털 잔을 갖다 대면 양옆이 수축되면서 두개골의 모습이 확연하게 잔에 맺힌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 두개골의 코 부분과 왼쪽 눈 부분에 유리잔을 갖다 대면 그 컵속에 두개골의 형상이 그 정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라면, 댕트빌의 성에서 만찬이 한참 진행되는 동안 알코올의 취기와 들뜬 분위기의 열기를 이기지 못한 사람이 석연찮았던 초상화 속의 이미지를 확인하기 위해 거실로 나와 그림의 주인공에게 잔을 들어 건배를 청하는 순간 컵 속에 느닷없는 죽음의 이미지가 새겨졌을 것이다. 좌중의 웃음과 알코올의 열기가 그 형상 앞에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59)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는 낭만주의 선구자인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대한 배경설명과 세심한 분석에 대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이라는 명목으로 황금에 눈이 멀어 대서양에 띄운 배가 뇌물을 주고 그 배의 선장이 된 부패하고 무능한 인물 때문에 좌초된 사건을 묘사한 이 그림.

 

굶주림과 갈증,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삶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뜨거운 열기의 바다를 떠다니다 느닷없이 배를 발견하고는 새로운 삶의 희망이라는 환희의 감정을 안게 된 순간을 그린 것이라는 일반적 평가와 더불어 [~ 중앙의 시체는 바다에 떠밀려가야 하는데 다리가 나무에 끼었다. 그래서 바다로 떠내려가지 못한 채 상체가 바닷물에 잠겨 퉁퉁 불어 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가 입고 있던 옷은 뒤로 뒤집혀 지고 얼굴은 바다에 잠겨 인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그 노인의 왼쪽으로는 어떤 사람이 앞으로 넘어져 고꾸라져 있고, 술통 옆에서 나뒹굴고 있는가 하면,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부르짖는 동료들의 외침 소리에 몸을 가누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몸을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뗏목 가운데에는 피 묻는 도끼가 보이는데, 바로 이 도끼가 굶주림과 갈증을 이기지 못해 동료를 살해했던 도끼이다.](84,85쪽 발췌)

 

이런 다양한 주제와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들이 20세기 현대에 와서 회화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형태보다 색을 중시하고, 눈으로 본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해 주관적으로 생각한 것을 화폭에 옮기면서 추상화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글쎄... 회화의 본질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취향과 호불호가 있겠지만 나 같은 그림 초보자는 이야기가 있는 시각적 리얼리즘, 사실주의 화풍에 끌리고 더 마음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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