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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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뷰4️⃣9️⃣9️⃣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젊음은 영원을 믿는다. 성숙은 유한을 안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간다.”

버지니아 울프 .. 최고의 문장가..
젊은 날의 우리는 마치 시간이 무한한 공간처럼 펼쳐져 있다고 느낀다. 해즐릿은 바로 그 감각을 '우리는 영원히 살 것만 같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청년의 무모함이 아니라, 젊음이 가진 깊은 존재감과 세계에 대한 확신의 정서를 해부해낸다. 그는 말한다.

“젊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마치 시간이 우리 편인 것처럼.”

해즐릿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을 단순한 허세나 자만이 아니라, 존재가 자기 자신에게 완전히 봉인되어 있는 상태, 아직 상실이나 죽음의 냄새를 배워버리지 않은 순정한 시간으로 설명한다. 그 시절의 세계는 날카롭고 선명하다. 모든 감각이 열려 있다. 인생의 가능성과 열망이 우리를 완전히 지배하던 시기.
그때 우리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일은 언제나 우리에게 남아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며 우리는 끝을 배운다. 사랑이 끝나고, 관계가 마모되고, 몸이 반응을 늦추고, 경조사에 참석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죽음과 유한성은 멀리 있는 이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관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그림자가 된다.
해즐릿은 그 시간을 비관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죽음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삶을 이해한다.”

젊음은 영원이라는 환상 속에서 시작되고, 성숙은 유한함을 깨닫는 순간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삶을 가볍게 만들기보다는 더 깊게 가라앉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청춘을 그리워하는 회고담이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읽다 보면 슬프지 않다. 오히려 담백하다. 해즐릿의 문장은 한 걸음 떨어진 시선으로 삶을 바라본다. 인생을 너무 붙들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소하지도 않는다.
그는 삶을 사랑하지만, 붙드는 방식은 우아하다.

책장을 덮고 나면 문득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영원을 믿었던 그 시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숨겨져 있을 뿐.

그 감각은 아직 우리 안에 있다.
영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모양을 바꿔 기억과 태도 속에 남아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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