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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1692년에 있었던 '세일럼의 마녀 재판'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흑인여성작가인 마리즈 콩데의 상상력이 더해져 흑인 주술가 티투바의 일대기를 복원한 이야기이다. 책 커버에서도 알 수 있듯 대안노벨문학상인 뉴아카데미문학상, 여성문학대상, 일드프랑스 젊은 독자대상 등 수많은 상을 통해 책의 작품성은 인정받았다 볼 수 있다.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았음에도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가난한 미혼모로서의 비극적인 작가 개인의 경험이 작가로서는 실제 작품 속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며 개인적인 공감이 가면서도 또 안타까움이 느껴지기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영국 선원의 강간으로 티투바를 낳고 백인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목매달려 죽임을 당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사랑해 결혼하지만 결국 백인때문에 자살을 하게 된 양아버지 탓에 티투바는 주술사인 만야야에게 맡겨져 식물이나 약제조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배우며, 그녀도 점차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교감능력을 가지며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전반부에 그런 모습을 보며 그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응원을 해주게 되는 건 이 책을 읽는 나만 공감하는 건 아닐거라 막연한 확신을 가졌다.
폭력과 억압을 여성에게, 심지어 자신의 아내에게도 휘두르는 가부장적인 세계관을 지닌 인물로 자신의 추종자들과 주술을 사용한다는 음모를 통해 티투바와 그의 지인들을 구속해 죽음으로 내몰게 하는 새뮤얼 패리스는 목사로서 최고의 지성인이자 문명인을 자처하지만 실상은 성불평등과 경제적불평등을 이끌어간 당시 백인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사실 1690년대의 아무런 힘도 없었던 흑인노예 티투바에게는 그는 정말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을거라는 생각에 답답함과 울분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농장주의 아내였던 수제나 앤디콧, 패리스의 아내 엘리자베스, 그리고 감옥에서 만난 헤스터에게서 우정을 느끼고, 그리고 그녀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 3인조도 언제나 그녀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점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잉태된 그 순간부터 끝도 없이 찾아오는 위기와 시련 속에서 결국 자유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티투바에게 나는 끝까지 해피엔딩의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결론이 지어줘야 한다고 믿고 싶었나보다. 사실 대규모 반란, 매달 일어나는 방화사건과 독극물로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어쩌면 그녀는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준 게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 티투바는 사실 한 없이 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그녀가 겪은 온갖 시련들을 통해 누구보다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로 만들어 준듯 하다. 그러면서도 존 인디언, 크리스토퍼, 다제베두, 이피게니 등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욕망에 대한 주장도 당당히 펼쳐나갔다. 또한 상황에 맞게 적절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았으며,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와 공감을 갖게 해준 인물이 아니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의도치 않게 페미니스트가 되어 흥분하고 통탄하고 있는 내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기록해본다.
"노예에게 모성은 행복이 아니다, 모성이란 굴종과 비천의 세계에 무구한 어린 것을 내던지는 셈이며, 그 어린 것의 운명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더라."(p. 86)
- 암흑뿐인 이 세상에서 임신을 했으나 아이를 안 낳기로 결심한 부분을 보면서 엄마로서 안타까움과 노예의 삶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움이 공감이 되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내가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떤다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우리 인간의 모호성이 존재한다. 우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육체를 가졌기에 보통 사람들을 엄습하는 온갖 고뇌의 먹이가 된다. 그들처럼 우리도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들처럼 우리도 지상에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끔찍한 대기실에 겁을 먹게 된다. 대기실 문이 양옆으로 열리면 우리 앞에 도 다른 현실의 삶, 이번에는 영원한 삶이 펼쳐진다는 것을 알아도 소용없다."(p. 142)
"삶이 죽음을 향해 가듯 강물은 바다를 향해 가며, 그 무엇도 그 흐름을 멈춰 세울 수 없다. 왜 그럴까?"(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