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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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미스테리한 사건의 비밀을 통해 범죄자와 사건해결자간의 인간의 섬세한 내면을 파고들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해주어 많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추리소설 매니아들은 물론 일본에서 독자들 다수들에게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작가로, 실제로 그의 작품에 추리소설작가로 노리즈키 린타로, 그 자신과 그의 아버지 노리즈키 사다오 경시가 등장해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특이한 설정으로 구성된 일명 '노리즈키 린타로'시리즈물 중 하나로 <밀폐교실>, <눈밀실>에 이어 이 책 <요리코를 위해>가 세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책 커버에서도 볼 수 있듯이 8월 어느 날 니시무라 유지는 17살의 상냥하고 씩씩하고 명랑한 고등학생인 외동딸 요리코가 학교 근처 공원에서 교살당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딸의 방을 정리하던 중 산부인과 진찰 기록을 발견하고는 살해 당시 그녀가 임신 4개월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의사에게서 듣게 되지만, 경찰에서의 그러한 사실도 숨기고 딸의 범죄 수사과정 역시 뭔가 석연치 않아, 본인이 직접 범인을 잡아 그에게 복수를 하고, 그 간의 행적을 자세히 수기로 남긴 후 자살을 하기로 결심한다. 14년 전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로 누워지내는 사랑하는 아내 우미에를 두고 가야 하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으나, 그는 딸을 임신하게 한 교사 히이라기 선생을 죽인 후 자신도 약을 먹고 자살을 한다. 아내의 전담간호사의 도움으로 남편의 자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 후 사건은 딸을 임신시킨 선생을 살해한 아버지가 자살을 한 전형적인 범죄사건으로 해결되는 듯했으나, 딸 아이의 학교에서는 이사장의 오빠가 보수당 중견의원으로 이런 스캔들이 학교이미지에 손해를 입히게 되고 그것이 다음 선거에 영향을 있는터라 교사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목적으로 학교에서는 추리소설 작가이지 명탐정으로 유명한 노리즈키 린타로를 고용해 사건을 재조사하게 된다. 탐정 린타로를 통해 그녀의 아버지가 10일동안의 행적을 기록한 수기에 적힌 내용의 허구성을 찾아가며 요리코와 그녀의 가족에 얽힌 인물들을 만나며 사건을 재조명하며 진짜 범인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요리코를 위해>는 쓰여져 있다.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자신이 완벽해졌을 때 결혼하고자 해 10년만에 소중한 가족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고, 주변의 유혹에도 우미에에 대한 니시무라의 변함없는 사랑은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인들의 사랑에 비교해보니 더욱더 숭고해 보였다. 14년전의 사고를 각자의 시각에서 따로따로 보더라도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었으며, 엄마의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는 결국 딸의 죽음과 아버지의 자살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니 그렇게도 사랑하는 가족이었으나 결국은 그 사랑의 결말은 비극일 수 밖에 없었으니 읽는 내내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매번 추리소설을 읽으면 먼저 추측하곤 하는 게 '범인이 과연 누구일까?'라는 것이다. 읽으면서도 궁금했고 나름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추측을 하곤 했지만, 결국 범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정말 의외의 사람으로 밝혀졌다. 린타로 자체의 뛰어난 추리력도 놀라웠지만, 만나는 인물마다 제공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들은 책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 줬을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는 극강의 몰입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했다. '노리즈키 린타로'시리즈 세번째 소설이자, 가족의 비극을 다룬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시리즈라고 한다. 책을 덮는 순간 작가의 다른 소설 시리즈를 찾게 되는 걸 보니 극찬받은 이유를 알게 된듯하다.

기억에 남는 문구 몇 가지를 기록해본다.

-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요리코는 누구보다 행복해질 권리를 갖고 있다고. 그건 나와 아내와, 그리고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아들의 몫이었다. 그걸 요리코의 손에서 빼앗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중략)... 오늘 우리는 느닷없이 배신당했다. 가장 비열한 배신이다. (p.12)

- 사랑의 증오와 인간 존재가 지닌 죄에 대한 경외감은 다르지 않았다. (p.389)

- 육체를 잃은 여자, 당신은 스스로를 관념의 괴물이라 불렀다. (p.415)

- 당신은 요리코의 마음의 균열에 무서운 망상을 불어넣었다. 당신에게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14년 동안의 과업이었다. (p.415)

- 폐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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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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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정함에 있어서 수상작이 주는 매력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인지라 사실 책 표지의 '일본 3대 문학상을 휩쓴 무라타 사이카', '또 한번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서 성과 욕망을 그려내다'라는 소개글, 그리고 몇 해전 신경숙 작가가 그의 작품 표절로 시끄럽게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힐리니즘을 표방하는 탐미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작이라는 제목에 매혹되어 <적의를 담아 애정을 고백하는 법>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재개발이 한창인 초4메 마을에서 유카라는 이쁘지도 않고 지극히 평범한 친구가 철저히 자신의 눈으로 초등학교거쳐 중학교 시절을 보내며 겪고 느끼게 되는 학교생활과 첫사랑에 대한 내면의 격정적인 감정을 그려놓은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과의 관계와는 달리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 내에는 소위 이쁘고 잘나가는 상위그룹부터 왕따와 괴롭힘을 당하는 바닥그룹까지 철저히 계급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 속에서 유카는 초등학교 때 친했던 바닥그룹의 친구인 노부코와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말도 하지 않으며 철저히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상그룹의 눈치 아닌 눈치를 봐가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학교생활을 한다. 유카는 매번 자신의 몸에 냉혹하게 점수를 매기며 잔인한 현실에 한숨을 쉬면서 거기이 속한 그룹에 맞춰 행동하며 학교생활을 하고있다. 한편 초등학교때 서예교실에서 만난 키작고 밝은 성격의 이부키와 호기심으로 시작한 키스로 유타는 그를 자신의 '장난감'으로 명명하지만, 중학생이 되자 근육질의 축구부 부주장인 이부키는 전교생이 다 아는 유명인이 되어 남학생 상위그룹에 속하게 되고 정작 학교에서는 아는 척도 못하는 사이가 되면서, 그런 그를 향한 그녀의 마음은 끝을 모르고 커져만 간다. 이부키가 사귀자고 하지만 그를 향한 그녀의 진심은 말도 못하고 숨긴채 그에 대한 그녀의 행동은 전혀 예상과는 반대의 비뚤어진 형태로 드러나게 되고 둘은 소원해진다. 이후 유카는 바닥그룹 친구 노부코가 변해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고 자신도 변화를 꿈꾸기 시작한다.

작품상 자체가 허무주의와 이상심리를 다룬 작가의 상인지라 그와 비슷한 소재의 작품일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주인공의 연령이 초등에서 시작해 기껏해야 중학교 시절의 사랑을 담고 있는터라 일반적인 첫사랑의 풋풋하고 가슴설레이는 핑크빛 기류의 사랑이야기일거라는 기대했었다. 아니면 초반 설정이 초등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된터라 이후 성인이 된 유카와 이부키의 사랑이야기일거라는 기대를 내심 했지만 내 기대는 처참히 빗나갔다. 사실 단순히 연애감정인지 종속관계인지 불분명한 그들의 관계 사이에 일어나는 상황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본인의 가치관대로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당당히 고백으로 용기있게 끌어내는 모습에서는 잠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키스가 장난감으로 변질되어 지속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는 장면들은 사회구석에 만연되어 있는 삐뚤어진 어른들의 성의식에 일침을 가해주는 장면인듯해 읽는 내내 씁쓸했다. 또한 초등학교때 친했던 친구들이 각각 상위그룹과 바닥그룹에 나뉘어져 자신의 위치에서 갈등하며 어쩔 수 없이 상위그룹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잘 지내고자 하는 모습은 비단 학교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해 현실감있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철저히 강자 약자의 그룹으로 나눠 학교라는 사회를 바라보는 10대소녀의 시각을 보고 있자니 어른인 나로서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더불어 미래를 남몰래 경멸하며 그 사실에 왠지 자신을 특별한 여자애인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는 유카의 말을 들으며, 그녀를 좀 더 환하고 밝은 곳으로 인도해 줄 이부키가 있었기에 그나마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줄 힘을 낼 수 있었고, 암울하게만 느껴졌던 이야기 속에서 마을이 재개발된다는 기대와 함께 그들 이야기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찾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 한번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책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들을 남겨본다.

- 나는 이 감옥같은 학교 저 위에서 모든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다. 그러면 착각에 빠질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에서 누군가를 관찰하는 건, 나에게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내가 누구보다 현명하고 올바른 존재처럼 느껴졌다. 사실은 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에 있는게 아닌가 하는 착각도 들었다. 내 얼굴에 얼마나 낮은 점수가 매겨졌는지, 이 순간 만큼은 잊을수 있었다. 그러면 늘 갑갑하고 괴로운 이 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은 숨통이 트이는것 같았다. (p.178)

- 이부키의 좋아하는 마음은 나와 전혀 다르다. 나처럼 발정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도 아니고, 광기어린 독점욕을 퍼뜨리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올바른 '좋아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중략)....나는 이부키의 올바름이 두려웠다. 그 올바름이 현기증 날 정도로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이부키가 급이 낮은 아이라면 좋을텐데. (p.257)

- 괴로운 건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숨이 멎으면 편해질 수 있다. 시야를 뒤덮은 하얀색을 올려다보고 있으니 이미 호흡이 멎은 듯한 기분이었다. 무리하게 숨 쉬기보다 이곳에서 하얀 벽을 올려다보며 숨이 끊어지는게 더 편안할 것 같다. (p.274)

- '무'란 이런 것일까. 하얀 벽을 보며 생각했었다. 감옥 안은 이런 광경일지도 모른다. 창문도 없는 거대한 벽은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완전히 멎어버린 고요한 공터에는 풀잎 스치는 소리만 희미하게 흐로고 있었다. (p.275)

- 내가 제일 싫었던 건, 네가 그걸 꾹 억누르며 본인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쏟아내는 거야, 네가 싫어하는 네가 나보다 상처받은 얼굴로, 자기에게 상처를 줬어. 난 네가 좋아하는 너하고 그런 걸 하고 싶었어. (p.365 이부키가 유카 고백 받은 후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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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꿈결 클래식 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백정국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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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에게 식민지 인도와 셰익스피어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주저않고 셰익스피어라고 대답할 정도로 영국 국민들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은 대단하다고 알려져 있다. 얼마 전 tvN 프로그램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의 방송도서로 소개된 셰익스피어의 책 <햄릿>이 꿈결 클래식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읽은지 너무도 오래되어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햄릿>을 희곡으로 다시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전 세계인이 다 알고 있듯이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가장 뛰어난 대표 희곡 중 하나이다. <오셀로>, <리어왕>, <멕베스>와 같이 그의 황금기 때 쓰여진 작품으로 덴마크 왕실을 배경으로 한 총 5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문을 품던 햄릿은 아버지 모습의 유령과 조우하게 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덴마크의 왕이 되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 된 숙부가 아버지의 죽음에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면서, 근친상간과 간통, 반역죄를 꾀한 추악하고 패륜적인 왕에게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더 확실한 증거를 찾기위해 배우들에게 아버지 피살장면과 내용이 비슷한 연극에 숙부와 어머니를 초대해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더욱 더 숙부의 죄를 확신하게 되고, 왕이 기도를 하는 도중 살해의도로 검을 뽑지만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결국 더 끔찍한 때를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결국 그를 죽이지는 못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를 찾아가지만 평소에도 광기어린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는 아들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줄 알고 소리를 질렀고, 햄릿은 휘장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약혼녀 오필리아의 아버지이자 충신인 플로니어스를 칼로 찔러 죽이게 되고, 약혼녀인 오필리아 역시 물에 빠져 자살을 하게되자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아들 레이티스는 햄릿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영국으로 쫓겨가게 된 햄릿은 왕의 밀서내용을 알게되고, 레이티스에게 용서를 구하며 왕과 왕비가 함께 한 검술대회에서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 결국 왕이 햄릿을 위해 준비한 독배를 마신 왕비도 죽음을 맞이하고, 결투를 준비하며 칼 끝에 독이 묻은 검으로 왕, 레이티스, 그리고 햄릿 모두 결국에 죽음을 맞게 된다는 비극적인 스토리이다.

책 속에 함께 구성된 컬러 일러스트 26장은 각 스토리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어, 일러스트가 마치 연극무대의 한 장면들처럼 그려져 긴장감과 흥미를 배가 시켜주었으며, 또한 햄릿의 검은 색 옷과 표정들은 그를 더욱 비운의 주인공처럼 보이게 한다는 느낌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죽은 영웅이 무대 위에 되살아 날 때'라는 제목의 백정국 숭실대 교수님이 부록으로 쓰신 해제였다. 명성에 비해 알려진 바가 많이 없는 햄릿의 일대기에 대한 스토리는 읽으면서도 궁금증을 더하게 했고, 그가 살았던 16세기에는 지적 소유권의 개념자체가 없던 시대였던지라, <햄릿>이 삭소 그라마티쿠의 <앰릿>이라는 소설을 모티브로 큰 줄기의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21세기 그의 위상이 난공불락 수준이고 독창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이해와 극적 상상력은 다른 어떠한 작품보다 그가 쓴 <햄릿>이 월등하다는 사실에 귀중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생각도 들었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어로도 너무도 유명한 대사라 번역본으로 기록해두고 싶었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다. 변덕스런 운명이 쏘아 대는 돌덩이와 화살을 맞아야 하나, 아니면 고난의 파도에 맞서 무기를 들고 대항하다 끝장을 내야하나. 어느 쪽이 더 고결한가. 죽는건-잠드는 것. 그 뿐이야. 잠 한숨으로 육신이 상속받은 고뇌와 피할길 없는 수천 가지의 불화를 마감한다 한다면, 그건 애써 강구해야 할 귀결이다. 죽는 건, 잠드는 것. 잠들면, 아마도 꿈을 꾸겠지-아, 거슬린다. 이 뒤엉킨 삶의 허물을 펼쳐 냈을 때 죽음이란 잠 속으로 어떤 꿈이 찾아올지 생각하니 멈출 수밖에 없다-불행한 삶일망정 그토록 질질 끄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세월의 채찍과 멸시, 압제자의 횡포, 거만한 자의 욕설, 모멸당한 사랑의 아픔, 늑장 법집행, 관청의 오만불손, 겸손한 공로자가 하찮은 놈한테 받는 발길질, 이 모든 걸 그 뉘가 감당하겠는가.....'(p.126-127)

사실 1601년에 이런 상상과 희곡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다. 아버지의 모습을 한 유령이나 미치광이 역할을 하는 햄릿은 상상력의 나래를 더하게 하고, 문장의 요소마다 다채롭고 풍부한 그의 필력은 읽는 재미를 더해 단숨에 몰입해 읽게 하였으며, 비극적 결말의 스토리 구성은 너무도 가슴이 아프면서도 인물묘사 하나하나에 아름다움마저 느껴지게 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되었지만 읽을 때마다 매번 그 느낌이 조금씩 다름을 느낀다. 그의 다른 희곡들도 이번 기회에 다시 꺼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꿈결클래식의 <햄릿>은 셰익스피어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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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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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는 물론 현재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급기야 WHO는 팬데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고, 이 바이러스로 인하여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요즘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읽힌다는 뉴스를 보고 나 또한 그동안 세계의 역사에서 전염병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가 궁금해졌었고, 그러던 찰나 나의 요즘 관심을 대변해주는 듯한 제목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라는 이 책은 세계사를 이끈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이 지닌 치명적인 질병과 더불어 세계적인 유행성 전염병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 중심으로 바빌로니아에서 죽음을 맞이한 알렉산드로 대왕을 시작으로 고대로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시대적 순서에 맞춰 기술되어 있다. 한 거물급 정치인이나 지도자의 질병이 역사의 진행방향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지만, 그들로 인한 역사는 분명히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사실임에 분명하다. 만약 그들이 그 병을 겪지 않았더라면 세계사 또한 다른 변화를 상상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또한 페스트나 콜레라, 천연두와 같은 세계적인 유병성 질병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으므로, 이러한 질병에 대해 이해와 고찰이 당시 역사를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다뤄줘야 할 분야로 여겼다고 생각해 이 책을 썼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카이사르로 시작해 네로와 엘라가발루스 그리고 정신이상증인 로마황제를 대변하는 이름이 되어버린 칼리굴라까지 수많은 정신병에 걸려 고통받았던 로마황제들이야기, 메리튜터의 상상임신을 다루면서 헨리8세와 그의 여섯부인에 다룬 튜터왕조의 이야기는 언제들어도 현실감없는 소설같은 스토리로만 느껴져 책을 읽는 이들에게는 항상 흥미로움을 더하게 한다. 또한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사망하게 만들었던 온 몸이 검게 변한다고 하여 흑사병이 진노한 신이 세상에 주는 벌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사실은 현대 몇몇 특정 종교인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흑사병이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으로 이어져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사실은 안타까움을 더해주었다. 그런 이면에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급감이 식량문제 해결과 제한적 자원의 효율적 사용 그리고 기술혁신을 통한 노동력 향상이라는 긍정적 효과를 끌어냈다는 보고는 개인적으로 너무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져 씁쓸했다.

매독치료목적으로 린넨천으로 만든 작은 덮개가 콘돔의 근원이 된 것과, 네로황제가 검투장을 찾을 때 유색돌멩이가 안경의 근원이 된 사실, 젖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유젖 바이러스를 주입해 예방접종이 시작된 계기나 존스노우가 콜레라가 식수랑 관련된 사실을 발견해가는 과정 또한 굉장히 흥미로웠고, 공중위생이 상당히 발달한 로마문화에서 공중화장지 대신 막대기에 헝겊뭉치를 달아 공동으로 함께 사용했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끔직하게 느껴졌다. 그외 결핵, 통풍, 에이즈 등이 소개되었으며, 레닌이나 히틀러, 루스벨트, 케네디 그리고 프랑스의 최장수대통령인 미테랑까지 권력자들의 이미지를 위해 철저히 보안에 부칠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공감이 갔다.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병에 걸린다.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 그리고 과거와 같이 현재에도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와 같은 새로운 병원균이 계속해 생겨나고 있으며 인류는 이를 퇴치하고자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질병들이 바꿔놓은 세계역사의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었으며, 매 페이지마다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가득해 지겹거나 어렵지 않을 뿐더러 개인적으로는 아이도 그렇고 나도 굉장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요즘 읽어볼 흥미로운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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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영웅 조조 - 책 읽어드립니다, 삼국지에서 유비를 압도한 용병술과 리더십
장야신 지음, 장윤철 편역 / 스타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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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N <책읽어드립니다>에서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인물별로 파헤쳐 며칠 인터넷을 달구었던 기억이 난다.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나는 다시 한 번 삼국지를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러던 찰나 <삼국지의 영웅 조조>라는 신간 소개책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삼국지>하면 유비, 관우, 장비 인물 위주이고, 역사는 기록하는 이들이 속하는 입장에서 쓴 글인지라 조조라는 인물이 뛰어난 재능과 성공에도 불구하고 더 잔인하고 간사한 인물로 폄하된 것이라 주장하며, 실질적으로 문학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공적과 정치, 사상, 사회 풍습 등 다방면에서도 영웅적인 인물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로 접근한 새로운 시각의 책이라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져 이 책을 읽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철저히 조조의 입장으로 쓴 책이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동한 말기 대혼란시기에 왕권은 무너지고 호족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부정부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며 민생에는 관심도 없었을 뿐아니라 오랜 가뭄과 홍수, 기근들로 농민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런 혼란과 분열 역사를 끝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정치적, 군사적 군웅할거의 주인공으로 중국 천하통일을 목표로 삼은 이가 있었으니 그 중 하나가 바로 조조였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추구하기 보다 부하장수에게 전리품도 나눠주며,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세상이치에도 공정하였고, 군령의 원칙을 지키며 백성의 피해도 최소화하고자 하는 실리주의적인 사람으로 이 책은 평가하고 있다. 인재등용에 있어서도 능력과 도덕을 두루 갖춘 인물을 뽑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효율과 재능이 있는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다는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중국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으나, 현명한 판단력과 배짱을 지닌 정치적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군웅들을 평정하고 짧은 시간내에 북방을 통일해 오랜 기간 통치를 하며 통일과업을 위한 노력을 한 점도 인정받아야 할 점으로 꼽았다. 호족억압정책이나 둔전제 실시로 전투력 향상과 정치개선에도 공헌하였고, 근검절약하며 사치풍조를 가라앉혀 백성들의 부담도 줄여준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소개되고 있다.

황건적의 난 진압에 가담한 일, 지주계급으로서 농민과 대립한 점,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대량학살도 서슴치 않은 부분들은 여전히 부정적이고 지탄을 받을 부분으로 여겨지지만, 1927년 중국의 최고작가 루쉰이 학술경연대회에서 조조의 공적과 그의 사상, 문화적인 특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후로 최근까지 그에 대한 끊임없이 관심과 평가들이 과거의 부정적 시각에서 점차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역사발전에 공헌을 한 전기적 인물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조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자의 유가사상이 만연한 당시에 천명이나 신선도 믿지 않았고, 제사에 대해서도 중요시하지 않은 걸로 나온 부분을 보며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단가행'의 수수께끼 시풀이를 통해 '허창순욱'의 비밀의 풀어내는 장면이나 밀밭을 머리숙여 지나가다 자신의 말이 비둘기를 보고 놀라 날뛰는 바람에 군법대로 자살시도하려다 자신의 머리대신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도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제갈량과 견주는 조조의 간사의 서서와의 사연, 손권에게 유비와 동맹 끊게 만드는 편지에 담긴 모략이야기는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 외에도 경영자로서의 마음가짐, 심리전을 이용하는 방법, 사람을 얻고 버리는 용인술,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조조가 후세에 남긴 불후의 업적 그리고 중국작가 루쉰이 평가하는 조조에 대한 이야기 모두 알차게 구성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조조가 너무도 사랑한 책 최고의 군사병법서 <손자병법>도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고, 그 책에 주를 달아놓은 조조의 <병법접요>와 <위서>도 쓴 문학가로서의 조조도 매력적으로 느껴졋다. 그 뿐 아니라 위대한 군사가, 정치가, 시인에 건축공예, 기계제작, 음악, 서예, 양생술, 기공, 수수께끼, 음식문화 심지어 공차기까지 잘했다니 그야말로 천재에 흔히 말하는 위인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굴곡많고 변혁의 시대에 태어나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지는 인물임에 틀림없지만,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 역사를 이해하고, 이 책을 통해 역사적 경험과 지혜와 교훈을 얻어낼 수 있어 좋았고, 더불어 기존 시각과는 달리 새로운 시각으로 그를 대할 수 있는 책이었던 지라 매력적인 인물 <위대한 영웅 조조>를 주변 지인들에게 읽어보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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