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의 지혜
이문영 엮음 / 정민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베낭하나 달랑 메고 훌쩍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친 심신의 위로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전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인 욕망을 모두 내려놓고, 40여 년간 팔도를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뛰어난 방랑시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대한민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김삿갓'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대시인으로, 홍경래난에 역적죄를 진 조부로 인해 평생 하늘을 보고 살 수 없었던 그는, 평생 얼굴을 가린 채 삿갓을 쓰고 다녔다하여 김립, 김삿갓으로 불리었으며, 그의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시는 여전히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 <김삿갓의 지혜>는 김삿갓의 전기와 그와 관련된 자료들와 문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탓에, 옛 문인들의 이야기와 그의 시를 토대로 있을 법한 일을 상상하고 창조하여 만든 이야기로 엮었다. 모든 물육을 떨쳐버리고 노모와 처자식이 있는 상황에서도 그 긴 세월을 어떤 사상과 가치관으로 평생을 살았는지를 알아보고,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시 속에서 전해듣는 깊은 울림과 기발한 해학과 풍자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은 <김삿갓의 지혜>는 크게 7부로 나뉘어져 있고, 모두 6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십, 수백년을 산다해도 깨우치기 힘든 인생의 지혜, 자신 앞에 닥친 고난과 역경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알려주는 처세의 지혜, 단순히 말재주나 임기응변으로가 아니라 실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성공의 지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행복의 지혜, 나이를 더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위엄과 칭찬을 얻어낼 수 있는 인격의 지혜,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읽어낼 줄 아는 진정한 군자로의 모습을 강조한 정의의 지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지위고하, 경중대소가 없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배우지 않는다면 알 수없는 배움의 지혜로 이루어져있다.

'세 사내의 추위자랑'에서의 추위를 표현하는 방법과 '내 배 타시오'의 동음이어로 마누라와 아들을 표현하는 해학적 표현, '부자일수록 베풀어라'에서도 당나귀를 귀나당으로 비꼬는 표현이 재미있었으며, '몽둥이가 명약'에서도 몸에 해롭다고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지 않고, 적당히 취하고 적당히 삼가는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적'자의 의미'이나 ''멱'자 밖에 모르는 훈장'과 같은 한글자로 그 자리에서 시를 뚝딱 완성해내는 놀라운 실력과 '쉰 밥을 먹으며'와 '이 절 인심 고약타'부분에서 방랑생활의 서러움을 김삿갓 특유의 놀라운 표현력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60편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전해지는 당시 문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주제인 '요강'이나 '장기'나 '바둑', '맷돌'과 같은 시에서 사물을 묘사하거나 표현함에 있어서 역동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들, '시시비비'같은 시에서 동음이어와 라임을 정말 너무도 놀랄 정도로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사용함으로써 그저 말로만 듣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아닌 그의 문학적 소양과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제대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너무도 좋았다.

또한 앞에서 주로 다룬 시 뿐만 아니라 방랑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해준 해결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색한 인심에 쓴소리도 하고, 힘든 민생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 가진 것 없어도 탁월한 기지와 지혜를 발휘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가 방랑 중 만났던 여러 훈장들과의 일화들로 비추어 조롱하는 시들이 제법 있었기에 평소 그가 훈장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 <김삿갓의 지혜>는 김삿갓 특유의 언어유희와 해학적 표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사실 별 기대없이 보았었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읽고나서가 처음보다 훨씬 더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책이다. 60편의 스토리도 2-6페이지 내외라 짬을 내서 읽어도 부담도 없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음직한 지혜와 교훈도 가득한 책이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삶은 힘들지라도 가진 것 없어도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통해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의 놀랄만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판본 동물 농장 (양장) - 1945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조지 오웰 지음, 이종인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 종영한 tvN의 <요즘책방-책읽어드립니다>는 책을 좋아하는 내가 다시보기라도 해서 꼭 챙겨보고자 하는 몇 안되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다. 얼마 전 읽고 싶은 책 위시리스트에 넣어두었다가 여지껏 읽지 못하고 있었던 책들 가운데 하나인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이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었고, 출간 이후 단 한 번도 절판된 적이 없는 영원한 고전이며, 영미문학 100대 소설에 꼽히는 소설임을 알고 있던지라 이번 기회를 통해 읽어보기로 했다. 마침 출판사 더스토리에서 최근에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으로 다양한 고전문학들이 출간되는 것을 알고, 1945년도의 감성으로 돌아가게 하는 레트로감성의 이 커버디자인의 <동물농장>을 선택했다.

TV에서도 소개된 것도 있었고, 읽어보진 않았지만 이 책이 정치풍자와 해학을 담은 소설이라는 정보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해설에서도 소개되어 있듯이 이 책 <동물농장>은 러시아 혁명으로 부터 1943년 테헤란 3차 회담에 이르는 약 26년의 러시아 정치사를 동물들의 우화 형식을 빌어 풍자하는 형식을 빌은 정치 알레고리 소설로, 니콜라이 2세,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에 이르는 러시아 정치인들이 무능한 인간 존스, 돼지 스노불과 나폴레옹과 같은 동물로 분화되어 동물농장을 다스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총 10부에 이르는 중편소설이다.

존스씨가 운영하는 메이저 농장의 동물들의 삶은 고달팠다. 어느 날 존스씨가 쏜 6연발 엽총 소리에 놀란 동물들은 반란을 일으켜 그를 쫓아내는 데 성공하고 그들은 메이저 농장의 가르침을 정교하게 다듬어 완벽한 사상체계인 동물주의를 정립하고, 동물주의 원칙의 일곱가지 계명을 정하고 농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동물들은 돼지인 스노볼과 나폴레옹을 중심이 되어 총회를 열고, 다양한 동물위원회를 결성하고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등 스스로 계몽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권력의 중심이었던 스노볼을 몰아내고 돼지 나폴레옹이 동물농장의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되면서 새로운 독재정치의 암시를 풍겨준다. 핑크빛 삶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농장 동물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노예처럼 일만 하지만 여전히 먹을 것도 넉넉치 않았다. 그러던 중 평소 인간들에 대한 증오를 외치던 나폴레옹은 이권을 위해 인간들 농장과 사업계약을 맺게되고, 동물들이 정한 동물계명을 어기는 행위 역시 서슴치 않게 자행하는 모습에. 동물들은 그에 대한 항의나 음모에 가담하지만, 반역자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한다. 이후 이익에 따라 언제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나폴레옹은 풍차전투에 승리 이후 더욱 더 승승장구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 막강하게 키워나간다. 결국 동물농장은 공화국으로 선포되고, 만장일치로 나폴레옹은 대통령이 되었으며, 잉글랜드를 통틀어 동물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유일한 농장이야기이다.

이 책의 작가 조지오웰도 이 책의 이야기를 러시아 혁명의 실제 역사서에서 가져왔다고 직접 언급하바 있다. 책에서 나온 동물주의는 공산주의를 의미하고, 동물의 반란 역시 레닌을 독일이 러시아에 귀국하도록 도와준 사실을 빗댄 것이라 한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갈등은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갈등대립을, 핀치필드 농장은 독일을, 폭스우드농장은 영국과 프랑스를 의미한다고 한다. 백마 몰리가 사라져버린 사건은 백계러시아인들이 파리망명을 빗대는 것이라하고, 스노볼이 제안한 풍차건설을 나폴레옹 자신의 것인양 바꿔버린것이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동물들을 가차없이 죽이는 것은 스탈린의 역사날조와 우상화작업 그리고 반대파숙청 그대로 빗대어 보여 준 것이다. 핀치필드농장 프레데릭의 동물학대는 독일의 유대인 학대를, 풍차전투는 스탈린의 그라드전투를 말한다고 한다.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방식은 부자가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는 방식과 같고, 동물농장의 동물들에게 힘들고 어렵지만 작은 꿈이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강력한 규율과 권력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공산주의 체제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사실 정치적 풍자의 날카로운 표현들이 가감없이 담긴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는 순간, 더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할 당위성은 명백해 보였다.

사실 러시아 혁명이니 실제 역사니 하는 이러한 일말의 연관성을 모르고 읽어도 이 책은 충분히 다양한 각도로 상상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읽어갈 수 있다. 읽는 내내 답답한 농장의 운영상황은 죽도록 일만하고 노동력 착취를 강요받는 동물들은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모두 사라져서 잉들랜드의 푸른 들판을 밟는 인간이 없을 때가 온다는 이야기는 그들에게 일말의 희망과 꿈, 그리고 자유를 갈망하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 투영되어 비춰져 보였다. 그러한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 속에서도 암울한 현실은 동물주의 실패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돼지, 말, 개 등의 다양한 농장의 동물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이 동물보다는 권력을 손에 넣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좌지우지 휘두르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비춰져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서와 같은 매번 성실하고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말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기대하였으며, 결국 그도 늙고 병들어 도살장에 끌려가 죽음을 당하는 등 철저히 이용당한 후 결국은 버려지고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은 물론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공포감까지 전달해줘,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아팠던 장면으로 기억에 남았다.

꼭 한 번, 아니 여러 번 읽어보아야 할 책으로 여겨진다. 책은 공산주의체제의 비판을 하고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쓸쓸한 결말을 맞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고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는다면, 자유와 평등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아울러 작가 조지오웰이 극찬한 정치풍자와 해학의 또 다른 소설 <걸리버 여행기>와 함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또 다른 명작인 디스토피아 소설 <1984>도 함께 읽어보길 개인적으로 권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뜨기 마을 - 전태일 50주기 기념 안재성 소설집
안재성 지음 / 목선재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5.18이 가까워오고 있다. 매년 5월이 되면 누구보다 선봉에 서서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과 요구에 목소리를 높이며 비판하고 저항했던 이들의 삶과 투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지난 100여년간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었고,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내가 선택한 책은 바로 그러한 그들의 삶과 투쟁이 담긴 이야기, <달뜨기 마을>이다.

작가 안재성씨는 <파업>이라는 장편으로 제2회 전태일 문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서민대중의 권익을 찾아주는 이야기에 흥미와 감동을 느끼며, 또 그러한 이야기들을 주로 써오고 있다. 전태일 50주기 기념으로 출간된 <달뜨기 마을>은 지난 2년간 시사월간지 <시대>에 연재되었던 민초들의 삶과 투쟁을 담은 단편소설 총 9편을 묶은 책이다. 본인이나 유족에게서 직접 들은 증언을 토대로 가독성과 익명성을 위해 약간만 각색했을 뿐 등장인물과 사건의 줄거리는 모두 실제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라고 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더 놀라울 따름이다.

총 3부로 나눠진 이 책, 제1부에서는 해방직후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상적 이념을 주로 다룬 소설 <이천의 모스크바>, <두 발 자전거>, <달뜨기 마을> 세 편이 실려있다. 제2부에서는 지극히 평범했던 아이가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노동운동과 민주운동을 하게 되며 겪게되는 <첫사랑 순희를 찾아서>, <팬데믹의 날>, <37년만에 맞춘 퍼즐>이, 그리고 마지막 제3부에서는 용역깡패에 맞서 싸워 이야기를 다룬 <그들은 성자를 보았다>, 비정규직 철폐 운동을 다룬 <스무 명의 성난 여자들>, 캐디 인식과 이미지 개선을 위해 단체협약에 가입해 당당히 맞서 싸워가는 <캐디라 불러주세요>가 담겨있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요구로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닌것 같다. 불평등과 불합리함에 맞써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는 자신을 저토록 희생해도 될 가치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로 융통성이 없어 답답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러한 그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지나 숙연함마저 들게 했다. 책을 읽은 내내 답답함과 억울함이 들게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식에 대한 마음가짐도 새롭게 다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천의 60호구 마을 중 기독교 집 두집을 제외하곤 모두 공산주의라 지어진 마을이름 '이천의 모스크바'도 공감이 갔고, 다리 밑에 버리고 간 자신을 엿장수딸이라 믿고 서당에 남장을 시켜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이정현씨 이야기도 과거 어릴 적 내면의 순수함을 상기시키게 했다. 남편과 자신의 가족들도 죽음을 당했지만, 자신 역시도 남편처럼 사상전향서를 쓰지 않았던 한연희씨의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첫사랑 순희씨와 40년만의 재회이야기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이 무섭고, 항상 불안한 코로나19를 5.18 그날과 닮은 모습으로 비춘 이야기엔 요즘의 우리의 안타까운 상황이 겹쳐져 많이 다르게 느껴졌음에도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노조탄압과 노조파괴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행중인 일이고, 비정규직 전환이나 직업인식에 대한 이미지 역시 여전히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보인다.

지난간 역사는 되돌아오지 않지만, 잘못된 역사는 되돌아오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항상 노력해야 한다. 노동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의 책을 읽을 때면 너무도 안타깝고 매번 울분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투쟁과 노력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철저히 준비해 나간다면, 아픈 역사였으나 이를 통해 진정한 가치로 빛이 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은 기록해둔다.

- 도대체 빨갱이가 뭐가 문제라는 거야? 골고루 잘 먹고 잘 사는 게 뭐가 나빠? (p.39 '이천의 모스크바' 중)

- 1930년 새해가 왔을 때,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행 기차를 탔다.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모르는 21살짜리 겁없는 처녀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날라다주는 또 다른 두발자전거였다. (p. 50 - '두발자전거' 중에서)

- 달뜨기는 나룻배 모양의 타원형 분지에 십여 가구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작고 아늑한 마을이었다. 봄날 맑은 밤이면 찰랑찰랑한 논물 위로 두둥실 떠가는 달이 꿈같이 아름답다고 해서 옛사람들은 그곳을 달뜨기 마을이라 부르고 한자로는 개월이라 썼다. (p.70 - '달뜨기 마을' 중에서)

- 여러분 귀청을 찢는 저 총소리가 들립니까? 살인집단 공수부대가 도청을 사수하는 우리를 죽이겠다고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못 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려워 마십시오. 광주시민이 우리를 기억할 겁니다. 우리의 죽음이 곧 살아있는 역사로 기억될 겁니다. (p.162 - '팬데믹의 날' 중에서 계엄군 총에 맞아 사망한 윤상원씨 이야기)

- 사람들은 보통 시계의 시침만 봅니다. 밖에서는 시침이 굴러가는 것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시계 안의 기어가 굴러가는 것입니다. 자본가와 노동자도 그렇습니다. (p.246 - '그들은 성자를 보았다'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오치 도시유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읽어보진 못했지만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이라는 책이 서점 여기저기서 한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라있었던 기억이 난다. 책 커버를 보니 65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교보문고에서 선정한 '2019년을 빛낸 역사책 100권'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더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에 이어 이번에 그 세 번째 시리즈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가 출간된다는 소식은 기존 책에 대한 위상이 더해 나의 기대감을 훨씬 배가 시켜주었다. 원래 시리즈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워낙 물고기를 좋아했던지라, 물고기이야기라고 하면 무조건 한 번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는 것 같다. '세계사와 얽힌, 세계사를 바꾼 물고기라니!' 도대체 상상이 잘 가지 않을 뿐더러 어떤 이야기일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읽어보리라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 책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청어와 대구를 중심으로 한 세계 어업사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총 6부로 크게 나누었고, 각 주제에 맞는 물고기와 얽힌 흥미롭고 재미있는 37가지 역사이야기로 꾸려져있다. 회유어인 청어가 이동경로를 바꾸면서 경제세력의 판도가 바뀌게 된 이야기부터 청어를 매개로 한자동맹이 독일에 경제부국을 이끌어 준 점, 잉글랜드가 청어통으로 바리케이트를 쳐 프랑스군을 격퇴한 청어전투 그리고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서 부정적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 청어이야기로 꾸민 제1부 <유럽의 세력판도를 바꾼 작지만 위대한 물고기, 청어이야기>, 제2부 <청어, 잉글랜드와 네델란드의 운명을 바꾸다>에서는 영국과 네델란드 사이에서 청어잡이로 인해 치열한 경쟁으로 네델란드가 패권을 잡게 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말린 대구인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는 장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했고 이를 통해 신항로를 개척하게 역사적 배경과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템페스트에서의 대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신항로 개척시대를 열어준 주인공, '스톡피시'와 '소금에 절인 대구'>, 제4부 <식민지 미국이 잉글랜드에서 독립하고 강대국이 된 원동력, 대구>에서는 미국 6개주를 상징하는 뉴잉글랜드의 어장을 중심으로 잉글랜드 어민들과의 갈등을 중심으로 이권다툼을 풀어갔다. 그리고 제5부와 마지막 6부에서는 종교와 관련된 물고기이야기 <청어와 대구는 중세유럽의 기독교 사회를 어떻게 지배했나>, <물고기는 어떻게 기독교에 스며들고 강력한 영향을 미쳤을까>라는 제목으로 단식일에 고기를 금지하고 생선을 먹게 된 역사적 배경과 과정, 그리스도가 물고기를 상징하는 이유 등에 대한 이야기를 유익하고 설득력있게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가의 맺음말 부분에 유명한 '키퍼'와 '피쉬 앤드 칩스'이야기도 추가적으로 부연설명이 되어져 있다.

사실 그동안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던 '물고기'라는 주제와 연결된 세계사는 나에게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소금에 절인 대구와 청어, 그리고 스톡피시로 장기저장이 가능한 식량확보는 장거리 항해가 가능하게 했고, 이는 신대륙 발견에 획기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공감이 갔다. 말린 대구를 스톡피시, 구지 cod를 사용하지 않아도 salt fish가 대구를 치칭한다는 사실, 그리고 소금에 말린 대구를 잉글랜드에서는 Poor John, 프랑스에서는 Green Fish로 사용된다는 점과 같이 각 나라별 대구의 다양한 이름을 알려준 부분도 흥미로웠다. 또한 예전에 카톨릭신자들이 탄 차에 물고기 모양에 JESUS라 적힌 로고를 보고 그 의미가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물고기가 생명을 상징하고, 빵, 와인과 함께 물고기가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간의 호기심이 이 책을 통해 해결된 터라 무엇보다 흐뭇했다. 또한 기독교에서 부활절 이후 사순절 기간동안 단식을 하는 데 그 기간을 Fish Day라 부르는 점 외에도 단식일에 얽힌 재미있는 세계사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세계사를 바꾼 ~가지 ~이야기'시리즈를 처음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고, 기존에 많이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 것들이 많아서 그 점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라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이 책의 다른 시리즈도 한 번 찾아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걸리버 여행기>하면 거인국, 소인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어린이용 동화로 기억이 되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 책은 내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도서였다. 얼마전 방영한 tvN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걸리버 여행기>가 소개되었고, 그 내용들을 보고 사실 적잖이 놀랐다. <동물농장>의 조지오웰이 극찬한 최고의 풍자문학도서로, 당시 영국의 정치적 , 사회적, 문화적 문제를 통렬히 풍자해 한동안 영국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726년에 출간되지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일주일만에 초판에 매진이 되었고, 아동용 동화 외에도 여행서, 역사서,장편소설, 정치풍자소설, 철학논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도서로 소개되어,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던 차에,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에서 다양한 고전문학들의 완역본을 이 전에도 다른 도서들로 만나봤던 터라 <걸리버 여행기> 역시 이 시리즈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조너선 스위스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다른 소설과 다르게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출판과정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 아일랜드인인 작가가 영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다 영국출판을 모색하게 되는 과정에서 신원을 감추고자 걸리버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세웠다는 해제의 해설이 설득력을 주는데, 걸리버가 출판담당을 해줄 사촌 심슨과의 편지글을, 그리고 발행인인 심슨이 독자들에게 이 책 <걸리버여행기>에 대한 출판과정과 이야기의 진위여부에 대해 먼저 논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부에서는 선상의사인 걸리버가 소인국 릴리펏으로의 여행기, 제2부에서는 거인국 브롭딩낵으로 여행기, 제3부에서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왕이 통치하는 땅 바라바비, 그리고 마법사의 성 글럽덥드립, 철학자의 성 덕낵왕궁을 거쳐 일본으로의 여행기가, 그리고 마지막 제 4부에서는 인간과 닮은 외형의 야만인 야후를 다스리며 고결하고 모든 미덕을 지닌 지혜로운 말인 후이늠의 나라인 후이늠국의 여행기가 그려져있다.

릴리펏인 소인국 왕후가 머무는 궁전에 불이 났을 때 오줌으로 불을 끈 장면이나 거인국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성의 장면을 혐오스럽게 묘사한 점 등에서 기본적으로 여성혐오와 경멸이 내재되어있으며, 각 왕궁을 다니며 만나는 왕과 정치에 대한 비판들이 신랄하다. 라퓨타인들이나 발니바비의 수도 라가도 대학술원에 대한 논의들은 그저 자신들의 학식을 뽑내는 학자로 치부하면서 극히 따분하고 진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한 야후는 타락한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네 발달린 말이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유토피아의 주민으로 표현한 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상당부분을 할애하는 작가의 생애와 해제, 그리고 초반부 역자의 설명은 이 책을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는 데 도움이 되어, 반드시 추가적으로 읽어보면 좋음직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상상력 그리고 기발하면서 엉뚱한 언어와 표현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21세기도 아닌 18세기 초반이라는 상황에서 걸리버가 여행하며 들르는 나라마다 자신이 살았던 영국사회의 역사, 정치, 철학 등 전반에 걸쳐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에 금서로 지정될 수 밖에 없었던 점 역시 공감이 되기도 했다.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를 다녀온 이야기의 사실들을 모두 실제 이야기로 강력히 주장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트러지게 하는 부분 역시, 이 책만이 지닌 묘한 매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 속에서 보편적인 미덕을 갖추기를 바란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깊이 생각하며 진정한 지혜를 찾아가며 실천해가는 삶을 꿈꾼다면 이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꽤 근사한 책, <걸리버 여행기> 책 읽기 시간이었다.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몇 개를 기록해 둔다.

- 덩치가 너무 차이나서 아예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덩치 작은 사람이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려 하는 것은 아주 헛된 일이로구나. (p.151 아일랜드와 영국비교, 작가는 아일랜드출신)

- 자네가 해준 말로 미루어 볼 때, 자네 나라에서는 공직을 얻기 위해 완벽한 자질은 필요없을 것 같아. (p.162)

-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달아난ㄴ 일이 벌어진다면 바다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일 것이었다. (p,172)

- 나는 주로 현대사에 역겨움을 느꼈다. 지난 백 년 동안 여러 왕가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전부 세심히 검토해 보니, 세상이 돈에 영혼을 판 저술가들에 의해 엄청나게 날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p.2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