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걸리버 여행기>하면 거인국, 소인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어린이용 동화로 기억이 되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이 책은 내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도서였다. 얼마전 방영한 tvN <요즘책방-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걸리버 여행기>가 소개되었고, 그 내용들을 보고 사실 적잖이 놀랐다. <동물농장>의 조지오웰이 극찬한 최고의 풍자문학도서로, 당시 영국의 정치적 , 사회적, 문화적 문제를 통렬히 풍자해 한동안 영국에서 금서로 지정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1726년에 출간되지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일주일만에 초판에 매진이 되었고, 아동용 동화 외에도 여행서, 역사서,장편소설, 정치풍자소설, 철학논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도서로 소개되어, 이번 기회에 한 번 제대로 읽어보기로 마음을 먹던 차에,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에서 다양한 고전문학들의 완역본을 이 전에도 다른 도서들로 만나봤던 터라 <걸리버 여행기> 역시 이 시리즈로 결정을 하게 되었다.
조너선 스위스트의 <걸리버 여행기>는 다른 소설과 다르게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출판과정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 아일랜드인인 작가가 영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다 영국출판을 모색하게 되는 과정에서 신원을 감추고자 걸리버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세웠다는 해제의 해설이 설득력을 주는데, 걸리버가 출판담당을 해줄 사촌 심슨과의 편지글을, 그리고 발행인인 심슨이 독자들에게 이 책 <걸리버여행기>에 대한 출판과정과 이야기의 진위여부에 대해 먼저 논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 1부에서는 선상의사인 걸리버가 소인국 릴리펏으로의 여행기, 제2부에서는 거인국 브롭딩낵으로 여행기, 제3부에서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 왕이 통치하는 땅 바라바비, 그리고 마법사의 성 글럽덥드립, 철학자의 성 덕낵왕궁을 거쳐 일본으로의 여행기가, 그리고 마지막 제 4부에서는 인간과 닮은 외형의 야만인 야후를 다스리며 고결하고 모든 미덕을 지닌 지혜로운 말인 후이늠의 나라인 후이늠국의 여행기가 그려져있다.
릴리펏인 소인국 왕후가 머무는 궁전에 불이 났을 때 오줌으로 불을 끈 장면이나 거인국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성의 장면을 혐오스럽게 묘사한 점 등에서 기본적으로 여성혐오와 경멸이 내재되어있으며, 각 왕궁을 다니며 만나는 왕과 정치에 대한 비판들이 신랄하다. 라퓨타인들이나 발니바비의 수도 라가도 대학술원에 대한 논의들은 그저 자신들의 학식을 뽑내는 학자로 치부하면서 극히 따분하고 진부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모습을 한 야후는 타락한 야만인으로 묘사되고, 네 발달린 말이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유토피아의 주민으로 표현한 점들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상당부분을 할애하는 작가의 생애와 해제, 그리고 초반부 역자의 설명은 이 책을 좀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는 데 도움이 되어, 반드시 추가적으로 읽어보면 좋음직한 부분으로 여겨졌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상상력 그리고 기발하면서 엉뚱한 언어와 표현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21세기도 아닌 18세기 초반이라는 상황에서 걸리버가 여행하며 들르는 나라마다 자신이 살았던 영국사회의 역사, 정치, 철학 등 전반에 걸쳐 신랄하게 비판하는 모습에 금서로 지정될 수 밖에 없었던 점 역시 공감이 되기도 했다.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나라를 다녀온 이야기의 사실들을 모두 실제 이야기로 강력히 주장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트러지게 하는 부분 역시, 이 책만이 지닌 묘한 매력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 속에서 보편적인 미덕을 갖추기를 바란다. 바쁘고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내 삶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깊이 생각하며 진정한 지혜를 찾아가며 실천해가는 삶을 꿈꾼다면 이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기존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꽤 근사한 책, <걸리버 여행기> 책 읽기 시간이었다.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 몇 개를 기록해 둔다.
- 덩치가 너무 차이나서 아예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덩치 작은 사람이 자신의 명예를 내세우려 하는 것은 아주 헛된 일이로구나. (p.151 아일랜드와 영국비교, 작가는 아일랜드출신)
- 자네가 해준 말로 미루어 볼 때, 자네 나라에서는 공직을 얻기 위해 완벽한 자질은 필요없을 것 같아. (p.162)
- 나는 바다가 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달아난ㄴ 일이 벌어진다면 바다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일 것이었다. (p,172)
- 나는 주로 현대사에 역겨움을 느꼈다. 지난 백 년 동안 여러 왕가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사람들을 전부 세심히 검토해 보니, 세상이 돈에 영혼을 판 저술가들에 의해 엄청나게 날조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