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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의 지혜
이문영 엮음 / 정민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도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베낭하나 달랑 메고 훌쩍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지친 심신의 위로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전 사회적으로나 물질적인 욕망을 모두 내려놓고, 40여 년간 팔도를 휘젓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 뛰어난 방랑시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대한민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김삿갓'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손에 꼽힐 만한 대시인으로, 홍경래난에 역적죄를 진 조부로 인해 평생 하늘을 보고 살 수 없었던 그는, 평생 얼굴을 가린 채 삿갓을 쓰고 다녔다하여 김립, 김삿갓으로 불리었으며, 그의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시는 여전히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 <김삿갓의 지혜>는 김삿갓의 전기와 그와 관련된 자료들와 문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탓에, 옛 문인들의 이야기와 그의 시를 토대로 있을 법한 일을 상상하고 창조하여 만든 이야기로 엮었다. 모든 물육을 떨쳐버리고 노모와 처자식이 있는 상황에서도 그 긴 세월을 어떤 사상과 가치관으로 평생을 살았는지를 알아보고, 탁월한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그의 시 속에서 전해듣는 깊은 울림과 기발한 해학과 풍자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와 더불어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은 <김삿갓의 지혜>는 크게 7부로 나뉘어져 있고, 모두 6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십, 수백년을 산다해도 깨우치기 힘든 인생의 지혜, 자신 앞에 닥친 고난과 역경에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할지 알려주는 처세의 지혜, 단순히 말재주나 임기응변으로가 아니라 실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성공의 지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행복의 지혜, 나이를 더 먹는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닌 타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위엄과 칭찬을 얻어낼 수 있는 인격의 지혜,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읽어낼 줄 아는 진정한 군자로의 모습을 강조한 정의의 지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녀노소, 지위고하, 경중대소가 없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배우지 않는다면 알 수없는 배움의 지혜로 이루어져있다.
'세 사내의 추위자랑'에서의 추위를 표현하는 방법과 '내 배 타시오'의 동음이어로 마누라와 아들을 표현하는 해학적 표현, '부자일수록 베풀어라'에서도 당나귀를 귀나당으로 비꼬는 표현이 재미있었으며, '몽둥이가 명약'에서도 몸에 해롭다고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지 않고, 적당히 취하고 적당히 삼가는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한 부분도 기억에 남았다. ''적'자의 의미'이나 ''멱'자 밖에 모르는 훈장'과 같은 한글자로 그 자리에서 시를 뚝딱 완성해내는 놀라운 실력과 '쉰 밥을 먹으며'와 '이 절 인심 고약타'부분에서 방랑생활의 서러움을 김삿갓 특유의 놀라운 표현력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60편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전해지는 당시 문화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주제인 '요강'이나 '장기'나 '바둑', '맷돌'과 같은 시에서 사물을 묘사하거나 표현함에 있어서 역동적이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들, '시시비비'같은 시에서 동음이어와 라임을 정말 너무도 놀랄 정도로 적재적소에 기가 막히게 사용함으로써 그저 말로만 듣던 '방랑시인 김삿갓'이 아닌 그의 문학적 소양과 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제대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너무도 좋았다.
또한 앞에서 주로 다룬 시 뿐만 아니라 방랑하며 정처없이 떠도는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들을 해결해준 해결사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색한 인심에 쓴소리도 하고, 힘든 민생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 가진 것 없어도 탁월한 기지와 지혜를 발휘에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그가 방랑 중 만났던 여러 훈장들과의 일화들로 비추어 조롱하는 시들이 제법 있었기에 평소 그가 훈장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책 <김삿갓의 지혜>는 김삿갓 특유의 언어유희와 해학적 표현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처음에는 사실 별 기대없이 보았었던 것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읽고나서가 처음보다 훨씬 더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 책이다. 60편의 스토리도 2-6페이지 내외라 짬을 내서 읽어도 부담도 없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도 좋음직한 지혜와 교훈도 가득한 책이다. 자연을 벗삼아 사는 삶은 힘들지라도 가진 것 없어도 행복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의 삶을 통해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의 놀랄만한 문학적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