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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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속 로맨스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듯 우리 역사에서도 한 명의 왕을 두고, 왕비과 후궁과의 얽히고 섥힌 사랑이야기가 더해지면 그 재미가 배가 된다. 왕을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운명의 여인들의 이야기인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역시 그렇다. 조선왕조 500여년 역사에 총27명의 왕들이 있었고, 3명의 폐비를 포함해 총 41명의 왕비 중 실제 왕이 된 왕비의 소생은 고작 15명 뿐이었다고 한다. 그 외 나머지 왕들12명은 모두 후궁이나 후에 왕비로 추대받게 되는 추존왕비이거나 대원군부인의 소생이었다고 하니 그 수치만으로도 후궁들의 위세와 후대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조선의 왕이 끔찍히 사랑한 결실로 왕을 낳은 그녀들의 흥미진진한 삶을 이 책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은 한껏 들뜨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칠궁'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져 검색을 통해 알아보았다. 종로에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있듯이 조선의 왕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다섯채의 사당이 있다고 하니 그곳이 바로 '칠궁'이고, 이 칠궁이 청와대 뒤편, 경복고등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청와대 관람신청을 한 관광객들에게만 개방이 된 곳이라고 하는데 요즈음에는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관람예약을 하면 볼 수 있다고 하니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꼭 들러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최근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책을 주로 집필을 하고 있는 홍미숙작가의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제목 그대로 왕을 낳은 후궁들 가운데 그 신주를 앞서 살펴본 '칠궁'에 모신 후궁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칠궁에는 모두 7명의 후궁의 신주가 있고, 광해군을 낳아 왕위에 올랐으나 후에 폐위되어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는 바람에 비록 칠궁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선조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어느 왕릉보다 아름다운 곳에 잠들어있는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가 포함되어 총 8명의 후궁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야기는 총2부로 나뉘어 <제1부>에서는 실제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4명이 소개되고 있다. 먼저 제15대와 광해군의 어머니이며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는 앞서 말했듯 왕을 낳았지만, 칠궁에는 들지못한 비운의 후궁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제20대왕 경종의 어머니이자 각종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도 최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이야기는 후궁중 유일하게 왕비가 되었다 폐비가 되며 결국 사약을 받지만, 이후에도 폐서인이 되지 않고 후궁의 신분을 유지하게 되어 칠궁으로 모셔지게 된다. 또한 숙종의 또 다른 후궁이며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장기집권한 효자왕을 낳은 제21대왕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이야기와 유일하게 삼간택을 거친 성품이 온화하기로 유명한 정조의 후궁이자 제23대왕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박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실제 왕이 되진 못했으나 손자나 양자 덕에 추존왕이 되는 경우의 이야기인 추존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선조의 후궁 이며 손자 인조 덕분에 자신이 낳은 아들이 후에 왕으로 추존되는 인빈 김씨,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 아들인 정조가 자신이 낳은 아들의 양자가 되는 바람에 되는 정빈이씨,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를 낳아 실제 왕위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사도세자를 후에 왕으로 추존하게 되어 왕을 낳은 어머니가 되는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종의 후궁으로 조선의 마지막 비운의 황태자의 어머니가 된 순헌황귀비 엄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기본 지식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있다. 후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자신의 지아비가 된 왕과 자신이 낳은 아들의 업적과의 인과관계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인물들과 관련된 주요 장소와 유물, 그리고 그들의 묘지인 능과 원의 소개도 컬러풀한 사진으로 빼곡하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부록으로 27명의 조선왕 계도와 조선의 왕릉의 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비 혹은 왕을 낳은 후궁의 무덤을 뜻하는 조선의 원 14기, 대원군 묘3기, 태조의 4대조 왕릉 4기의 능호와 소재지 등을 함께 상세하게 수록해 주고 있다. 또한 조선왕릉의 상설도와 그 의미, 다양한 참고문헌도 함께 기록해 두었다.

사실 왕의 눈에 들어 왕의 후궁이 되었고 자식을 왕으로 만들며 권력의 핵심안에 들었지만 그녀들의 삶은 절대 녹록치 않았음을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꿈이 누군가에게는 이루어진다고 하듯 누구보다도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그녀들은 당당히 한 나라의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왕이 움직이지만 그 왕은 여인이 움직인다는 말은 마치 그녀들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볼 가치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믿고 따른 것이 그녀들이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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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벤 길마 - 하버드 로스쿨을 정복한 최초의 중복장애인
하벤 길마 지음, 윤희기 옮김 / 알파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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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애인의 날에, 장애를 가진 이들 중 30%를 제외하고, 70%나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이나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이 놀라우리 만큼 높은 수치는 장애는 특정한 소수의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이웃과 가족, 그리고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수치이기도 했다. 장애인들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와 동등한 구성원이며, 그들 역시 공정하고 편견없이 대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은 이제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실질적으로 어떻게 그들을 대하고 바라봐야하는지에 구체적인 방법은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하벤 길마>는 그런 우리들에게 장애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물론 우리사회가 장애를 가진 이들이 더는 특별하게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본인 스스로가 차별에 노출된 흑인이면서 볼수도 들을 수도 없는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스스로 고립된 삶에서 나와 굳게 닫힌 세상의 문을 당당하게 열어가는 놀라운 삶의 여정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저자인 <하벤 길마>는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선천성 중복장애인이다. 장애를 가진 하벤의 특별하고 남다른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에서의 가족이야기, 미국으로의 이주와 난민생활이 그려지고, 낯설고 외로운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어린시절 이야기가 시간과 장소순으로 동화처럼 펼쳐져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편견 속에서도 아프리카 말리로 학교세우는 일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신념과 굳은 의지로 부모님을 설득해 허락을 얻어내면서 그녀는 점차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워나가며 당당한 사회인으로 성장을 해나간다. 루이스 앤 클라크 대학교 시절 장애인에 대한 수없는 차별을 당하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차별의 행동과 말에 당당히 나가게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또한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 고든을 만나 알래스카의 6미터나 되는 빙산을 안내견 맥신의 도움없이도 당당하게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장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배타적인 집단이지도 한 하버드 로스쿨을 최초로 정복한 중복장애학생으로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졸업 후에도 장애인들의 가치보장을 위한 옹호활동을 하는 장애인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백악관에서 열린 제25주년 장애인법 기념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연설을 하기도 하는 등 현재도 계속 성장하며 당당히 세상에 맞서나가는 모습으로 살아나가고 있는 그녀 <하벨길마>의 이야기가 한편의 드라마처럼 그려지고 있다.

과거 TED에서 그녀의 영상을 본 기억이 있다. 5개국어 구사에 하버드로스쿨 입학, 장애인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에 또렷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에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 당시에도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보고 듣지 못하는 '장애'때문이 아니라 차별하는 '사회'로 단정해버리는 현실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지닌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고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 또한 자신감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안내견이나 다른 여타 것들에게서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은 장애문제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사는 나에게도 중요한 울림을 주는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강조하는 것처럼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술 및 대안기술 개발, 장애인을 위한 인권옹호로 전보다 더 많은 기회를 누리고 권리보장을 받는것, 그리고 평등은 앞으로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들로 보인다. 장애는 한 개인이 극복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한다면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을 누리는 세상이 올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 <하벤 길마>의 말. 말. 말. **

-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 이런 환경 속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답니다. 제가 아는 세상에서 나와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다가가 그 속에서 살아야 하는 무거운 짐. 그 무거운 짐은 이 세상 사람들이 제 어깨에 올려놓은 것이죠. (p.36-37)

-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에, 항상 모르고 지나치는게 많은 그런 세상에, 과연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을거야. 장애를 지닌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는게 없다고 단정해 버린게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까. (p.82)

- 내가 누릴 자유와 독립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거야, 자신감도 물론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고 안내견은 짝으로 삼아 같이 다니는 것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 (p.306)

-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포탄을 퍼붓듯 계속해 제 귀를 때렸어요. 웃음소리, 대화, 또 다시 웃음소리. 제 내면의 귀에 쓸쓸하고 슬픈 말이 들렸어요. 너는 외톨이야.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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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표범
실뱅 테송 지음, 김주경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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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살고있는 이 지구에서 인간들은 마치 지구가 자신들의 전유물인양 여기며 군림하길 원한다. 삶에 방해가 된다거나 필요성을 못느낄 때 개발이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서슴치않고 자연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오늘 읽은 책 <눈표범>은 자연 앞에서 한낱 보잘것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우리에게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려주고자 한다. 2009년 공쿠프상, 2011년 메디치상, 2015년 위사르상을 수상한 작가 실뱅 테송이 설상의 전령 눈표범을 찾아 떠나는 여행다큐드라마인 <눈표범>을 출간하게 되었고, 이 책은 2019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면서 발매되자마자 2019년 르노도상을 수상을 할 만큼 생생하게 사실적인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행기이다.

프랑스에서 저널리스트이면서 작가이자 여행가인 실뱅 테송, 동물 전문 사진작가인 뮈니에와 그의 연인이며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리, 그리고 테송의 친구이자 철학가인 레오, 이렇게 4인방은 영하 30도가 넘는 극한의 티베트에서 서식하는 5000여마리 정도만 남아있는 멸종위기 동물인 '눈표범'을 관찰하기 위해 티베트로 다큐여행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총 3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1부 접근'에서는 티베트 극동부인 위수시 부근 야크골짜기에서 막사를 잡아 열흘을 보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눈표범을 만날 순 없었지만 인간들에 의해 무분별한 개발과 그 가운데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고지대의 뜰안에서 늘 쫓고 쫓기는 동물들의 추격전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야생 야크떼와 황소, 늑대, 노루, 두루미, 영양, 가젤, 야생 당나귀등 다양한 동물들의 섬세한 묘사가 마치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듯한 착각을 하게끔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었다. '제2부 안뜰'에서는 아지트에서 100킬로 미터 떨어진 해발 5200미터의 쿤룬산 야뉴골 호수주변과 창탕공원으로 공간을 이동한 이야기와 작가 내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성과 본성, 인간들의 현재의 모습이 그려져있다. 그리고 마지막 '제3부 출현'에서는 매콩강 주변에서 마침내 그토록 보고자 열망했던 눈표범을 만나게 되고, 이 후 야크를 희생시킨 표범을 다시 만날 기대로 죽은 야크시체를 두고 동굴 속에서 며칠을 잠복하며 눈표범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간절하게 눈표범이 보고 싶어 티베트로 머나먼 여정을 떠났고, 그 이유가 자신의 헤어진 여인과 오버랩이 되는 지극히 내면적인 이유였다고는 했지만, 대자연 속에서 함께 한 생생한 여행기는 눈표범을 단순하게 보는냐 마느냐의 인내의 문제를 넘어서, 80억이나 되는 인간들이 고작 얼마남지 않은 동물들은 물론 자연 앞에서 무분별하게 군림하고 복종시키고자 하는 모습은 동물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의 생존기로, 인간인 나에게는 참회와 반성의 시간으로 느껴졌다. 또한 책 커버에 소개된 '평화로운 철학적 사고와 힐링의 시간을 전하는 대자연의 찬가'라는 말은 책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록된 서사적이면서 서정적인 글귀를 보며 바로 수긍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구지 눈표범이라는 동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인지자체가 존재하고 있지 않음에 대한 경각심도 불러와 반성은 물론이고 동시에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가지게 했으며, 단순히 야생동물의 삶과 나를 대조해 봐도 그저 너무도 안일하고 쉽고 편한 삶을 추구하는 나의 생활태도와 습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읽고나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최근 들어 읽은 책들 중 가장 기억에 남고 감동을 준 책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고나서도 많은 부분들을 기억에 남기고 싶어 기록해본다.

- 동물들은 예고없이 불쑥 나타났다가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망을 눈곱만치도 남기지 않고 한순간에 사라져버린다......그러니 덧없이 사라지는 순간적인 장면들을 매번 축복하고 봉헌물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p.46)

- 그렇다. 모든 건 지나가고, 모든 건 흘러가며, 모든 게 순환한다. 그래서 당나귀는 달리고, 늑대는 당나귀들을 추격하고, 또 독수리는 하늘을 난다. 질서, 균형, 천지에 가득한 태양, 짓누를는 침묵, 여과없는 해빛, 드문 인적, 그리고 꿈. (p.64)

-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정원이 '내 눈엔 보이지 않아도 나를 보고 있는 존재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 잠복행위는 일종의 기도다. 동물들을 관찰하여서, 우린 신비주의자들처럼 굴었다. 최초의 기억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p.81)

- - 21세기의 인간은 공동소유자로서 세상을 살아간다......'인간에게 예속된' 지구. 그런데 이젠 인간을 낳은 자궁에 휴식시간을 줘야할 때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80억이다. 그리고 표범은 몇천 마리밖엔 남지 않았다. 인간은 더는 공정한 게임을 벌일 수 없다. (p.114)

- 동물의 세계에선 이웃하여 살면서, 서로의 삶을 인정한다. 하지만 서로 친구가 되진 않는다. 이웃하며 지내되, 뒤섞이진 말기. 참으로 무리의 삶을 위한 좋은 해결책이다. (p.119)

- 막사에서 고통에 찬 울음소리, "표범들은 존재하기 위해 서로를 부르는 거야, 서로를 선택하고, 서로를 찾는 거니, 울부짖는 소리는 서로 생각이 일치했다는 거야."(p.173)

- 삶이 마법의 정원에서 개최된 파티 같은 것이라면, 동물의 멸종은 잔혹한 소식일 수 밖에 없다. 최악의 소식이다. 그런데 그 소식을 우리는 너무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철도원은 철도원끼리 서로를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에게 마음을 본다. 휴머니즘은 이렇듯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노조활동이다. (p.209)

- 모든 건 죽고, 다시 태어나고, 다시 돌아가서 죽고, 자기를 먹으면서 살아간다.(p.229)

- 기다림은 일종의 기도이다. 어떤 응답이든 오게 되어 있다. 만일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가 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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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이별입니다
나가쓰키 아마네 지음, 이선희 옮김 / 해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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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지인들이나 친지들의 부고를 전해듣는 일이 예전보다 잦아졌다. 그런데다 부모님들의 연세를 생각하면 이젠 삶 만큼이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아지게 된 나이가 되었다. 나 혹은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다보면 어떤 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북받치다가 또 어떤 때는 의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는 변덕스러운 생각처럼 그 감정의 깊이와 정도가 겪어보지 않은 이상 사실은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삶의 마지막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러던 중 책 한권을 소개받았다. 남편의 기일이 있는 9월과 하늘의 소리라는 단어를 합성해 슬픔을 딛고 앞으로 향하고자하는 마음을 담은 필명을 쓰게 된 나가쓰키 아마네라는 작가는 <머지않아 이별입니다>를 통해 남편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한 것이나 남편에게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한 말을 이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죽음을 특별하게 보지 않고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이며 극복해야 하는지를 따뜻하게 풀어씀으로써 제19회 소학관 문고 소설상도 받게 되었다고 하니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층 더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책의 주인공 시미즈 미소라는 대학졸업반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던 선배를 따라서 그녀 역시 부동산업계로 취업을 희망하지만 매번 고배를 마셨고, 가족들의 권유와 기분도 전환할 겸 대학1학년 때부터 했던 장례식장인 반도회관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다시 제의를 받아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총 3화로 나뉘어져 있으며 '제1화 이별하는 곳'에서는 앞서 말한 반도회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이야기와 장례디렉터인 우루시바라씨, 추모식을 담당하는 스님 사토미와의 특별한 인연이 그려진다. 또한 그녀 역시 그녀가 태어나기 전 죽은 언니의 영혼이 함께인 것을 인지하거나 사토미씨처럼 죽은 이들의 영혼이 보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을 알게 되면서, 이를 통해 임산부 레이코씨의 기저귀가 잔뜩 들어있는 가방이 아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행복한 추억이 담긴 것을 알게 되고, 죽은 그녀를 잘 보내주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제2화 크리스마스선물'에서는 사장님부탁으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우루시바라씨를 도와 병으로 죽은 어린 히나를 보내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이를 잃어 힘들어하는 부모의 마음과 죽음으로 병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아이의 마음 역시 공감이 되며, 그녀 역시도 자신의 언니를 생각하며 가족이 함께 있으면 강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는 모습에 점차 장례식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해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제3화 수국의 계절'에서는 우루시바라씨의 제안으로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직원으로 본격적으로 일을 하게 된 미소라가 병든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로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약지를 물어뜯어 결혼반지와 함께 약지를 삼키다 손가락이 기도를 막아 쇼크상태로 죽은 나오씨의 장례이야기가 그려진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에서는 언니와 할머니의 죽음이야기를 추가로 들려준다.

모든 이들이 비슷하겠지만 사실 장례식과 장례식장은 내게도 두렵고 무서운 장소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만난 장례식장 반도회관은 죽은 이들에게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는 곳이고 인연을 맺었던 이들에게 자신의 기억을 추억하게 하는 장소로 기억되고, 살아있는 이들에게는 죽은 이를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그와의 인연을 가슴에 추억하며 함께 슬퍼하고 공감하며 슬픔을 이겨내는 특별한 곳으로 소개된다. 사실은 장례식은 죽은 이보다는 살아있는 남은 이들을 위한 의식이라는 말에 더 공감이 갔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우리 모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죽음을 더 이상 절망과 슬픔으로서만 볼 것이 아니라 어떠한 마음가짐과 자세를 가지고 이별의 슬픔을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다 읽고나니 <머지않아 이별입니다> 제목이 가슴 아픈 슬픔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결 따뜻해지는 행복한 미소를 가져다 주었다.

책에서 기억나는 문장들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 아무리 의학이 발전했다 해도 인간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다. 남겨진 사람들은 죽은 자를 애도하고 슬퍼하고 배웅하며 가끔은 삶에 대해 생각한다. 면면히 이어지는 슬픔의 감정은 시대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그런 근본적인 부분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바로 반도회관이다. (p.97)

- 이별은 슬프지만 병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졌으니 이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p.139)

- 가족이 곁에 있으면 모두 강해질 수 있을거예요.(p.186)

- 사람이 죽는다는 건 이런거야. 아무리 깊이 사랑해도, 아무리 간절히 생각해도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엔 닿지 않아.(p.279-그 사람의 미련)

- 사람을 보내는 일을 하는 사이에 깨달은 게 있다. 죽음은 특별한 게 아니라 나의 가까운 사람에게도 반드시 찾아온다는 걸. 아무리 붙잡고 싶어도 손가락 사이를 스윽 빠져나간다는 걸. 그 순간이 다가왔다면 내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다. 조용히 떠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사랑했던 할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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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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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복잡한 도심 속에서 보다는 자연 속에 들어가 휴식하며 한가로이 보내는 여가시간을 더욱 선호하게 된다. 흙냄새 , 나무 냄새를 맡으며 걷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쌓였던 피로는 녹아내리는 듯 하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좋을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사답법인 '우리 땅 걷기'의 신정일이사장님은 걷기 열풍을 이끌며 도보답사의 선구자 역할을 하신 분 답게 얼마전 <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책을 출간하셨다. 세상 밖으로 잠시 벗어나 가서 쉬고 싶은 곳이 작가에겐 바로 '암자'였다고 하는 그의 마음이 내게도 이제는 백분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갔다.

이 책 <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에는 전국의 21개의 암자가 소개되고 있다. 소개된 암자와 관련된 창건설화는 물론, 암자의 설립배경, 암자와 절터에 얽힌 사연과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 소개와 발굴배경 등을 중심으로한 역사학적 의의를 상세히 소개시켜주고 있다. 또한 암자가 속한 절은 물론 암자 주변에 함께 둘러보면 좋을 법한 유적지에다 국보나 보물과 같은 유물도 함께 소개시켜 줌으로써 개인적인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어서 자칫 밋밋하기 느껴질 법한 여행이 이를 통해 더욱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21개의 암자 중 내가 들른 곳은 템플 스테이로 유명하며, 가파른 바위에 아름다운 마애불을 볼 수 있는 경주 함월산의 골국암, 동백꽃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아름다운 삼천명의 스님이 머물렀다는 선운산의 도솔암, 개인적으로는 어릴 적 부모님과의 추억이 가득한 주왕산의 주왕암 그리고 내 고향 포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영천의 팔공산이 전부였다. 모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의 추억의 장소라 개인적으로는 너무도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곳이라 특히나 반가웠는데, 책으로 다시 만나보니 내가 알고 있었던 부분은 그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고 수많은 역사적 지식과 정보를 통해 전혀 새로운 곳으로 느껴질만큼 특별하게 다가왔다.

또한 오대산의 중대사자암과 그 주변의 팔각 9층석탑과 무릎을 세운 자세로 앉아있는 처음보는 낯선 느낌의 석조보살좌상이 있는 오대산의 월정사, 찬란한 해돋이와 원효대사가 창건한 항일암이 있는 여수의 금오산,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서울서 가까운 파주 고령산의 도솔암은 개인적으로 가까운 시일내에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 속으로 새겨둔 곳이다.

곧 휴가시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을 다니는 것이 두렵고 망설여지는 요즈음, 사랑하는 가족들과 소박하고 아름다움이 깃들여져있는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녹아있는 암자와 산사로 한가로이 거닐며 더운 나의 여름휴가를 보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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