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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
홍미숙 지음 / 글로세움 / 2020년 7월
평점 :

드라마 속 로맨스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듯 우리 역사에서도 한 명의 왕을 두고, 왕비과 후궁과의 얽히고 섥힌 사랑이야기가 더해지면 그 재미가 배가 된다. 왕을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운명의 여인들의 이야기인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역시 그렇다. 조선왕조 500여년 역사에 총27명의 왕들이 있었고, 3명의 폐비를 포함해 총 41명의 왕비 중 실제 왕이 된 왕비의 소생은 고작 15명 뿐이었다고 한다. 그 외 나머지 왕들12명은 모두 후궁이나 후에 왕비로 추대받게 되는 추존왕비이거나 대원군부인의 소생이었다고 하니 그 수치만으로도 후궁들의 위세와 후대에 미친 영향력은 결코 간과할 수 없었음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였다. 조선의 왕이 끔찍히 사랑한 결실로 왕을 낳은 그녀들의 흥미진진한 삶을 이 책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로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은 한껏 들뜨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칠궁'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져 검색을 통해 알아보았다. 종로에 조선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있듯이 조선의 왕을 낳았으나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들의 신주를 모신 다섯채의 사당이 있다고 하니 그곳이 바로 '칠궁'이고, 이 칠궁이 청와대 뒤편, 경복고등학교 옆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과거에는 청와대 관람신청을 한 관광객들에게만 개방이 된 곳이라고 하는데 요즈음에는 문화재청 홈페이지를 통해 특별관람예약을 하면 볼 수 있다고 하니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꼭 들러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최근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책을 주로 집필을 하고 있는 홍미숙작가의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은 제목 그대로 왕을 낳은 후궁들 가운데 그 신주를 앞서 살펴본 '칠궁'에 모신 후궁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칠궁에는 모두 7명의 후궁의 신주가 있고, 광해군을 낳아 왕위에 올랐으나 후에 폐위되어 시호와 능호 모두 삭탈되는 바람에 비록 칠궁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선조의 사랑을 한몸에 받아 어느 왕릉보다 아름다운 곳에 잠들어있는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가 포함되어 총 8명의 후궁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야기는 총2부로 나뉘어 <제1부>에서는 실제 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 4명이 소개되고 있다. 먼저 제15대와 광해군의 어머니이며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씨는 앞서 말했듯 왕을 낳았지만, 칠궁에는 들지못한 비운의 후궁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제20대왕 경종의 어머니이자 각종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도 최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이야기는 후궁중 유일하게 왕비가 되었다 폐비가 되며 결국 사약을 받지만, 이후에도 폐서인이 되지 않고 후궁의 신분을 유지하게 되어 칠궁으로 모셔지게 된다. 또한 숙종의 또 다른 후궁이며 무수리 출신으로 최장수 장기집권한 효자왕을 낳은 제21대왕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이야기와 유일하게 삼간택을 거친 성품이 온화하기로 유명한 정조의 후궁이자 제23대왕 순조의 어머니인 수빈박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제2부>에서는 실제 왕이 되진 못했으나 손자나 양자 덕에 추존왕이 되는 경우의 이야기인 추존왕을 낳은 칠궁의 후궁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선조의 후궁 이며 손자 인조 덕분에 자신이 낳은 아들이 후에 왕으로 추존되는 인빈 김씨,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 아들인 정조가 자신이 낳은 아들의 양자가 되는 바람에 되는 정빈이씨,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를 낳아 실제 왕위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사도세자를 후에 왕으로 추존하게 되어 왕을 낳은 어머니가 되는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종의 후궁으로 조선의 마지막 비운의 황태자의 어머니가 된 순헌황귀비 엄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반드시 알아야 할 역사적 기본 지식들이 이 책 속에 가득 담겨있다. 후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자신의 지아비가 된 왕과 자신이 낳은 아들의 업적과의 인과관계들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담겨져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인물들과 관련된 주요 장소와 유물, 그리고 그들의 묘지인 능과 원의 소개도 컬러풀한 사진으로 빼곡하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부록으로 27명의 조선왕 계도와 조선의 왕릉의 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비 혹은 왕을 낳은 후궁의 무덤을 뜻하는 조선의 원 14기, 대원군 묘3기, 태조의 4대조 왕릉 4기의 능호와 소재지 등을 함께 상세하게 수록해 주고 있다. 또한 조선왕릉의 상설도와 그 의미, 다양한 참고문헌도 함께 기록해 두었다.
사실 왕의 눈에 들어 왕의 후궁이 되었고 자식을 왕으로 만들며 권력의 핵심안에 들었지만 그녀들의 삶은 절대 녹록치 않았음을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꿈이 누군가에게는 이루어진다고 하듯 누구보다도 열심히 세상을 살아온 그녀들은 당당히 한 나라의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는 왕이 움직이지만 그 왕은 여인이 움직인다는 말은 마치 그녀들을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기대하며 열심히 살아볼 가치있는 세상이라는 사실을 믿고 따른 것이 그녀들이 그 자리에 갈 수 있었던 계기가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이 사랑했지만 결코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여인들의 삶을 되짚어볼 수 있었던 특별한 시간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