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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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http://blog.yes24.com/document/8052940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http://blog.yes24.com/document/8543840

 

 

다산북스 나나흰 활동을 이어오면서 재기발랄한 북유럽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 소설을 세 권째 읽고 있다. 옮긴이 후기에 나오듯 그의 소설 주인공들은 나이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서 특별한 이유와 경험 때문에 '까칠한 성격'을 장착하게 된 사람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아, 문제옹'도 잘 들여다보면 사실 그런 까칠한 언행을 갖게 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문제 의식이 세 소설을 공통으로 관통하고 있다. 이번 신작은 전작 "할미전"에서 까칠한 이웃들로 나왔던 브릿마리와 켄트 부부의 이야기를 깊이 들려주고 있다. "할미전"을 읽을 때는 저런 이웃이 있으면 짜증나겠다 싶었는데 "브릿마리 여기 있다"를 읽고 나니 과연 전작 주인공들보다 브릿마리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나나흰 덕분에 평범한 소시민이 영웅이 되는 통쾌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할.미.전"에서 엘사와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 중에서 가장 밥맛이었던 사람이 누구였느냐고 물으면 1위가 켄트, 2위가 바로 브릿마리였기 때문이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말로는 아무 편견이 없다면서 사실은 온갖 편견으로 똘똘 뭉쳤고, 잔소리꾼으로 낙인이 찍혔으며, 청소에 강박증을 보이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브릿마리가 취직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부터 성벽처럼 단단하게 브릿마리를 차단하고 있던 내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크만의 작품에서 아무 이유 없이 까칠한 사람은 없었다. 오베가 그렇게 까칠했던 이유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고, 엘사가 그렇게 까칠했던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고, 브릿마리가 그렇게 까칠했던 이유는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어쩌면 배크만은 지금껏 나이가 너무 많아서 또는 너무 적어서 그것도 아니면 너무 특이해서 발언권 없이 함구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던 이 세상의 주변인들에게 마이크를 쥐여 주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세상과의 소통에 서툴러서 온갖 오해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변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476-477쪽.

 "그를 안아주고 싶지만 브릿마리는 지각이 있는 사람이다. 교도관들은 면회 시간이 아니라서 벤이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고 했지만 스벤이 누차 설득한 끝에 편지를 안으로 들여보내는 데 성공한다. 교도관들이

서명을 받아서 들고 온다. 서명 옆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사랑한다!"" 224-225쪽.

수 십 년 간 집에서 살림만 하던 브릿마리는 바람핀 남편과 집으로부터 떠나 자립을 연습하기로 한다. 경력도 없고 나이도 많아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와중에 겨우 구한 일자리는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 때문에 몰락한 시골 마을 보르그에 방치된 레크리에이션 센터 관리직이다. 거기서 축구장도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알게 되고, 브릿마리가 거기 있음을 통해 마을은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맞는다.

 

 

 

* 브릿마리에 대한 공감 

올해 업무분장희망원과는 전혀 상관 없이 환경봉사 업무를 점지 받고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 시종일관 청소, 계획, 도덕, 이성, 완벽에 집착하며 끈질기고 까칠한 브릿마리를 보며 공감 내지는 연민이 들었던 이유는 그가 나와 너무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학교에서 제일 까칠한 사람이라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나도 브릿마리처럼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야기꾼 프레드릭 배크만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반복해서 유머 코드를 만들어내듯 책 전체에 걸쳐 아래와 같은 문체로 브릿마리의 캐릭터를 구축한다. 그는 마음 속에 드는 충동을 이성으로 자제하려는 자세, 예의에 어긋나거나 정의롭지 않은 언행이나 상황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하는 자세를 보인다. 한편 수첩을 들고 다니며 리스트를 적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무엇보다 언니와 부모님에 대한 기억 때문에 자신도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청소 강박을 해소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모습은 안쓰러운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다. 

"나머지 아이들은 바깥 복도에서 공 두 개를 굴리며 차고 있다. 브릿마리는 달려 나가 실내에서 공을 차는 게 얼마나 부적절한 행동인지 엄하게 나무라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한다. 사실 그녀가 보기엔 실내 경기장 자체가 부적절한 발상이지만 자기가 오히려 어이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기에 함구한다." 368쪽.

 

 

* 마을공동체, 사회 참여

""한 아이를 키우려면 그 뭣이냐, 온 마을이 필요하다잖아요? 여기 우리 마을이 있어요!"" 456쪽.

커트러리를 깔끔하기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나쁠 리가 없다고 브릿마리가 단언했던 새미(베가의 오빠, 오마르의 형)는 착하게도 결국 친구 사이코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는다. 졸지에 고아가 된 베가와 오마르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다른 보호자에게 넘겨질 상황에 처하는데 브릿마리를 비롯,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와 같은 대사를 치며 자신이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브릿마리가 코치가 되어준 덕분에 아이들이 축구 대회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마을이 변화 계기를 맞는데, 마을에 변변한 축구장 하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한 브릿마리는 남편 켄트와 함께 관련자들을 찾아가 1주일 넘게 끈질기게 축구장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북유럽 시민 참여 분위기를 배우고 싶어하는 책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에 나오는 듯한 가까운 미래 민주시민이 가져야할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브릿마리는 원하는 바를 (사람에게 핸드백을 휘두르며) 직설적으로 요구하는 반면, 켄트는 매우 정치적이게도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투표권자인 마을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은 척하기, 여러 이익 단체와 시민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는 척하기, 로비 및 수십 통 전화 걸어 요구하기 등)으로 접근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책 전체는 브릿마리가 사회 참여하게 되는 과정과 마을공동체를 깊이 경험하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 

 

 

* 브릿마리 개인

가장 훈훈한 점은 살림만 하는 아내이자 엄마(아이를 낳아보지 않은)였을 뿐이었던 여성 브릿마리가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한 인간으로 서는 결말 부분이다. 타인과 공존하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그런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소설 안에서 브릿마리는 남편 켄트의 사랑을 되찾는 동시에 스벤의 사랑을 받는데, 그가 결국 어느 문을 여는지는 소설에서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이번 미션서평 도서를 비매품 가제본 형태로 받았는데 이미 오탈자가 전혀 없이 완벽해서 만족스러웠다. 역시 책 잘 만드는 다산북스, 표지 색감과 일러스트 마저도 너무 예뻐 마음에 들었다. 평일 저녁에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하는 일 없이 마음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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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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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나나흰 활동 중이다. 책 받은지 꽤 되었고 소설이라 책 자체도 재미있고 분주한 나날이라 매우 공감, 힐링 되기도 하는 책인데 안타깝게도 오래 붙들고 읽었다. 무엇을 먼저 손대야 할지 모르겠을 만큼 개인적으로(학교 일 X) 너무 바쁜 나날이라 11월에 책을 거의 못 읽고 있어서 너무 아쉽고 답답하다. 아무튼 항상 그렇듯 다산북스가 저돌적인 마케팅 중인 듯 예스이십사 페이지들에서도 많이 보이는데, 그만큼 추천할 만한 재미있는 책이다. 술술 잘 읽히는 문체라 정신적으로 피로한 와중에도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용은 제목대로다. 시빌이라는 고양이가 고통에 빠진 주인공 사라에게 '말'을 걸어 행복해지는 방법을 코칭해주는 내용이다. 이야기 후반으로 갈 수록 이 고양이가 진짜 인간 언어로 주인공에게 말을 걸었는지는 불확실해진다. 사실 여부를 캐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핵심은 주인공이 반려묘 도움을 받아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과정을 보는 일이다. 스포일러가 될지 모르겠지만 반려동물 키우기, 마음을 들여다보기, 몸을 챙기기("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와 비슷: 과일만 먹기, 금식하기, 요가하기 등), 동물처럼 예민한 감각으로 세계 받아들이기, 인간관계 회복하기, 잃어버린 꿈 찾기, 여행하기, 오늘 삶을 긍정하고 즐기기, 나누기,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 착한 일 하기,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돕기 등을 훈련하고 습관화하여 행복해지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 아름다움과 숭고함, 낭만과 자유(동양철학 특히 범신론)

석사 논문을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해 쓰느라 공부하고 고민했던 내용이 이 책 결말에 나와 반가웠다. 왕년에 히피였다던 주인공 아버지는 아름다움과 자유는 맞닿아 있다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가족이 함께 간 캠핑에서 엄마는 자주 가족들에게 시를 읽어주었다. 그러한 기억들이 가족들에게 남아, 엄마가 죽은 이후에도 엄마가 마치 지금도 함께 있는 듯 상상하게 한다. 영혼, 죽음, 너무 큰 자연은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말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다소 고통을 동반한 숭고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과학주의 시대에 인간 마음 속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경험하며 숭고한 감정을 느끼고 경외심과 겸손함을 배운다. 서양 작가가 쓴 이 책은 장자의 나비 꿈, 요가, 불교 범신론과 비슷한 모티프들을 바탕으로 이러한 생각을 풀어가고 있다. 

"... 공터에 다다르자 탁 트인 하늘과 빛나는 별빛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은하수가 검은 산 그림자 끝에서부터 피어올라 빛을 머금은 폭포처럼 하늘로 뻗어갔다. 그 광경을 보니 마치 내가 우주의 한가운데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 오랫동안 이 하늘에 나 있는 창 너머로 무한을 응시했다. 그러자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이런 밤하늘을 참 좋아했는데! 엄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얘들아, 이걸 마음에 새겨두렴. 너희 눈을 아름다움으로 채워봐." 

...

그러다 몇 주 전 시빌과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 너희 어머니는 여기 계셔. 우주 안에선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아. 또 아무것도 생겨나지도 않지. 존재하는 건 계속 존재해. 하지만 존재는 가만히 머물러 있지 않아. 언제나 형상을 바꾸는 거야...

하지만 인간들이 과학으로 무장하고 나타나서 별과 행성은 죽은 것이며 대지에는 생명이 없고 물은 그저 물질일 뿐 영혼이 아니라고 주장해..."

...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오색찬란한 별빛이 우주를 건너 먼 길을 달려와 내 위로 쏟아지도록 두었다. 그러자 엄마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느껴졌다. 빛과 어둠 속에. 공기와 대지 가운데. 고양이의 지혜 속에. 바로 내 속에.

... 수십 년 전, 엄마는 로르카의 이 시를 바로 이 자리에서 읽었던 적이 있다. 엄마가 들려주었던 시구로 난 엄마를 이 자리에 불렀고, 이제 엄마가 죽었지만 현존한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이 바로 백양나무들은 모든 걸 다 알지만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부분과 의미가 이어졌다.

... 지금까지 내가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다. 고통과 상실을 겪은 뒤에, 울부짖고 소리친 뒤에, 고양이의 형상을 통해 나타난 자연의 지혜와 고귀함을 마주 보게 된 뒤에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 것이다." 341-350쪽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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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는 글렀어
사라 앤더슨 지음, 심연희 옮김 / 그래픽노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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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흰 5기 활동 중이다. 이 책 서평단 신청할 때 인기가 너무 좋아 타이밍을 놓치고 아쉬워하던 차에, 책을 선택해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이 책을 선택했다. 나나흰들의 호평대로 책을 펴자 마자 재미있게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림체가 미국인 다운 만화 옷을 입은 이 책은 미국판 마스다 미리라고 하면 어떨까 싶을 만큼 여자 공감 만화다. 그래서 마스다 미리의 산문집 "어느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가 생각났다. 여자만 알 수 있는 불편한 상황들, 해야할 일이 있지만 귀찮은 상황들, 좋아하는 행동을 하며 여가 시간을 보내는 장면들, 그리고 내향적인 사람들의 심리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특히 마지막 내용에 참 공감했다. 누군가가 오지랖 넓게 지적질하는 장면이나 나와 별로 맞지 않는 사람이 인사하며 친한 척할 때 기분을 읽으며 '맞아, 나도 그래!!'를 외쳤다. 중간 중간 나오는 연애담은 '안물안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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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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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산북스 나나흰 미션 도서로 소설책이 던져져 왔을 때 처음에는 '왠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받아 들었다. 부제에 '혼불문학상'이 달려 있어서 '오! 재미있으려나? 혼불문학상은 "혼불" 같은 소설에 상을 주나?'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감시와 관리, 통제와 스파이 작업을 다루고 있어서 이야기 초반부터 흥미진진했다. 다 읽은지 일주일은 되었는데 평일에 여력이 없어서 주말에야 서평을 정리하고 있다. 다 읽자 마자 정리해야 가장 좋은데 생생함이 떨어져 아쉽다.


 

* 스파이, 감시

"이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은 주관적이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면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그들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임무수행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스파이가 탄생한다." 126-127쪽.

 

요즘 교육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밀한 통치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그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시대에 모든 분야는 경제로 수렴한다(실제로 여기에는 데이터를 조작하여 막대한 수입을 '스파이 집단?'에 안겨주는 직업군이 등장한다). 숫자와 데이터를 지배하며 인간 행동과 상황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예측하고자 한다. 일어날 만한 위험을 미리 예방하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손쉽게 180도 바꿔버린다. 이 이야기에서 스파이는 노련한 배우에 가깝다.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스파이들은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 소설가!! 이야기로 혁명

"나의 예전 보스는 말했다. 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런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밌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어떤 작가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 게다가 작가와 독자는 스파이들의 암호보다 더 복잡한 코드로 소통하지. 그들의 연대는 그들이 직접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는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 146쪽.

 

스파이는 배우에 가깝고 소설가는 혁명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당국이 소설가를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감시, 통제하는 이유는 소설가가 이야기라는 강력한 도구에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무서운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데, 소설가의 행위와 다가올 상황에 대해 예측이나 대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테다. 재미있게도 당국은 소설가 역시 감시자를 붙이고 자본으로 세밀하게 길들이려고 시도(지원금을 다달이 지급하고 그 돈을 소설을 쓰기 위해 어디에 사용했는지 영수증을 붙여가며 보고하게 만듦)한다. 그런데 이런 소설가 같은 사람은 자본으로 쉽게 움직여지는 일반인들과 달라서 결국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261쪽.

이 말에 공감했다. 이 "고요한 밤의 눈"을 쓴 작가는 혁명 가능성을 믿는 듯해보인다. 소설보다 인상 깊은 '후기'에서 그는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슬프고 답답한 상황들을 언급하며 시대를 아파하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마도 여기서 이야기로 싸우는 사람들에게 작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낭만적이게도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은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저는 제가 본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물었을 때 그 누군가가 사랑이라고 대답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흔하고 뻔한 대답이라 미안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는 그 단어, 사랑을 말했죠.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도 보였어요." 287쪽.

 

 

* 세대 담론

이러한 지점 때문에 아래 내용을 읽으면서 작가의 나이를 확인해보았다. 1971년 생, 민주화 운동 끄트머리에서 시대가 (한시적으로) 혁명에 성공하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시 혁명 이전으로 퇴보하는 듯해보이는 이유는 다음 세대가 돈 외에 시대 아픔에 대해 관심이 적고 주어진 상황에 너무 잘 순응하기 때문은 아니냐고 화를 내며 묻는다. 이런 류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래도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한다고도 하지만,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정치, 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뒤에서 페북 좋아요를 누르고 기사를 공유해 퍼나르는 젊은이들은 보이지만 어떤 분야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하는 사람을 잘 안 보인다. 어떤 젊은이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나누지 않고 누리고 있는 힘이나 권한, 지위 등으로 인해 생존 위협을 느낄 만큼 젊은이들 일상이 각박하기 때문이다. 여기 중견 스파이?가 개탄하듯 지금 젊은이들은 불쌍하게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순응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안정된 직장과 일상을 소유할 수 있다. 

"그들의 사뭇 진지한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내가 저 질문을 하기 전까지 그들은 이미 토론면접까지 거쳤다. 고용불안과 승자독식의 세계 주위에서 사회의 맨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이십대 젊은이들의 사회적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도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계속 있었다. 감각적으로 그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있을 때는 시비를 걸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아예 싸울 줄 모를뿐더러 비록 이번에 싸워서 승리하지는 못해도 승리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취직만 시켜준다면 돈만 벌게 해준다면 끽소리 않고 살겠다는 생각인가. 나쁜 세상에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인가."164쪽.

 

 

 

* 하루키? 등장인물에 따라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장(혼란스러움)

종종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장르가 구사하는 비유와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며 독서하기가 힘들곤 하다. 이 이야기는 마치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원제: 일각수의 꿈)" 속 주인공들처럼 거시적 혁명이 아니라 소소한 곳에서 소소한 방식으로 거시 구조 악에 대해 균열을 내며 싸워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고요한 밤의 눈"이 등장인물에게 이니셜을 붙이고 장마다 다른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우고 있는 점 역시 한동안 하루키가 취하던 장편소설 구성 방식과 비슷해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이니셜 붙은 등장인물로 장마다 화자가 바뀌니 스토리 자체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 아쉬웠다. 요즘 해야할 일, 읽어야 할 책이 많아 내 스스로 집중해서 읽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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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그림 - 운과 부를 불러 모으는 안티 스트레스 타로 컬러링
정회도 지음, 이윤미 그림 / 다산라이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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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무한도전"- 두근두근 다방구 편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유명한 타로 카드 전문가 정회도가 풀어준 타로 컬러링북 "부자의 그림"을 다산북스 나나흰 5기 선택도서로 신청해 받았다. 책을 받는데 꽤 시간이 걸렸는데 그 동안 컬러링을 제대로 해보자 싶어 파문블 미션 포인트로 전문가용이라는 프리즈마 베르신 색연필도 주문해두었다. 사실 나는 선천적 지리중추 결핍과 함께 치명적인 곰손이라 학창시절 "이게 다 그린 거냐??"라는 말씀을 미술선생님께 들으며 상처 받은 기억이 있다. 그림과 요리 등 손재주가 필요한 분야는 절대 내 영역이 아님을 믿고 살았다. 이번에 책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색감 부족과 손재주에 관한 인내심 부족(=대충 칠하기)을 절감한 점은 안 자랑.

 

 

 

아무튼 무슨 그림을 칠해볼까 하다가 책 앞부분에 '생년월일로 나의 인생 카드를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수식이 나와 있어서 계산해보니 나는 7번 '전차' 카드가 나왔다. 이는 체력이라는 기운을 나타내고, 육체적으로 지쳐서 힘든 순간, 마지막으로 집중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인생의 순간을 가리킨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라 그런지 요즘 "피곤해, 힘들어, 삭씬이 쑤셔."를 입에 달고 살고 있어서 엄청 적절한 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칠하다보니 불꽃과 말 갈기 등 자잘하게 다른 색으로 칠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 카드 고른 걸 약간 후회함, 컬러링북의 재미는 칸칸이 나눠진 그림을 다양한 색으로 칠하기가 묘미라 다른 카드도 마찬가지이리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음). 그래도 불꽃을 빨간색 계열로 칠하다 보니 책 앞부분에 색채론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와 있어서 그런지 힘이 나는 듯했던 건 기분 탓일까.

 

"오라소마 색채 요법에 따른 7가지 색의 효과

빨간색

- 상황: 지치고 우울할 때, 자신감이 떨어졌을 때, 마음이 약해져있을 때

- 효과: 빨간색은 혈압과 체온을 올려 기분을 고양시키는 힘이 있다. 따라서 열정을 갖고 바로 행동에 옮기게 해준다. 침체기나 권태기에 효과적이다."

 

 

책 제목이 "부자의 그림"이다. 몰입해서 열심히 칠하다 보면 타로가 주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컨셉이다. 부양가족 없이 부모님 댁에 아직도 얹혀 살면서 집에서 출퇴근하는데도 이상하게 돈이 모이지 않기에 물론 카드를 칠하면서 부자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된다면야 좋지만 그리 믿지는 않는 편이다. 컬러링 열풍에도 곰손을 자책하며 돈 들여 사지 않는 분야 중 하나였는데 이번 기회에 좋은 경험을 했다. 색을 고를 때마다 너무 어려워, 이렇게 칠해도 되겠느냐는 의구심을 내내 가지고 색칠을 했지만 또 이렇게 완성해두고 보니 그럴 듯 하기도?? 평생에 이 책을 다 칠해 완성할 날이 올지는 궁금하다.


원문 출처: http://blog.yes24.com/document/8950061 (저의 주력 블로그는 예스이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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