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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평점 :
이번에 다산북스 나나흰 미션 도서로 소설책이 던져져 왔을 때 처음에는 '왠 소설?'이라는 생각으로 받아 들었다. 부제에 '혼불문학상'이
달려 있어서 '오! 재미있으려나? 혼불문학상은 "혼불" 같은 소설에 상을 주나?' 궁금해하며 읽기 시작했다.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너무나도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감시와 관리, 통제와 스파이 작업을 다루고 있어서 이야기 초반부터 흥미진진했다. 다 읽은지 일주일은 되었는데
평일에 여력이 없어서 주말에야 서평을 정리하고 있다. 다 읽자 마자 정리해야 가장 좋은데 생생함이 떨어져 아쉽다.
* 스파이, 감시
"이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현실은 주관적이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면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목표는 그들이 그들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임무수행이다.
이렇게 또 한 명의 스파이가 탄생한다." 126-127쪽.
요즘 교육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밀한 통치술'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그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시대에 모든 분야는 경제로 수렴한다(실제로 여기에는 데이터를 조작하여 막대한 수입을 '스파이 집단?'에
안겨주는 직업군이 등장한다). 숫자와 데이터를 지배하며 인간 행동과 상황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예측하고자 한다. 일어날 만한 위험을 미리
예방하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손쉽게 180도 바꿔버린다. 이 이야기에서 스파이는 노련한 배우에 가깝다.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눈에
띄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스파이들은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 소설가!! 이야기로 혁명
"나의 예전 보스는 말했다. 소설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 재밌어. 그런데 그 재미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재미하고는 좀 달라. 너무 재밌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어. 어떤 작가들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문제를 고민하고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어. 그런 작가들은 본능적으로 문학이 어떻게 세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알아. 게다가 작가와 독자는 스파이들의 암호보다 더 복잡한 코드로 소통하지. 그들의 연대는 그들이 직접 스스로를 드러낼 때까지는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어." 146쪽.
스파이는 배우에 가깝고 소설가는 혁명을 한다. 이 이야기에서 당국이 소설가를 위험한 존재로 여기고 감시, 통제하는 이유는 소설가가
이야기라는 강력한 도구에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무서운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데, 소설가의 행위와 다가올 상황에 대해 예측이나 대비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테다. 재미있게도 당국은 소설가 역시 감시자를 붙이고 자본으로 세밀하게 길들이려고 시도(지원금을 다달이 지급하고 그 돈을
소설을 쓰기 위해 어디에 사용했는지 영수증을 붙여가며 보고하게 만듦)한다. 그런데 이런 소설가 같은 사람은 자본으로 쉽게 움직여지는 일반인들과
달라서 결국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나 하나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생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출까. 나
하나 이런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고 나 혼자만 죽게 될 뿐이다...... 억울하지만 더 억울해지기는 싫다...... 어떤 방법으로도 세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심지어 목숨을 걸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악의 악순환을 바꾸어야
한다.
시작은 나 하나로도 세상은 바뀐다는 것이다." 261쪽.
이 말에 공감했다. 이 "고요한 밤의 눈"을 쓴 작가는 혁명 가능성을 믿는 듯해보인다. 소설보다 인상 깊은 '후기'에서 그는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슬프고 답답한 상황들을 언급하며 시대를 아파하고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마도 여기서
이야기로 싸우는 사람들에게 작가 자신을 투영하고 있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낭만적이게도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마음은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저는 제가 본 다큐멘터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물었을 때 그 누군가가 사랑이라고 대답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너무 흔하고 뻔한 대답이라 미안하다는
듯이, 하지만 그래도 하는 수 없다는 듯 그는 그 단어, 사랑을 말했죠. 내가 사는 곳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그 사랑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그 모든 깨달음으로부터 치유가 온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의 재능과 열정에 눈을 뜨고 공부를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힌 뒤
참여하라고. 진부하지만 늘 사랑은 정답이죠. 그 이야기가 저에게는 환경 문제뿐 아니라 인생 문제의 해결책처럼도 보였어요."
287쪽.
* 세대 담론
이러한 지점 때문에 아래 내용을 읽으면서 작가의 나이를 확인해보았다. 1971년 생, 민주화 운동 끄트머리에서 시대가 (한시적으로) 혁명에
성공하는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다시 혁명 이전으로 퇴보하는 듯해보이는 이유는 다음 세대가 돈 외에 시대 아픔에
대해 관심이 적고 주어진 상황에 너무 잘 순응하기 때문은 아니냐고 화를 내며 묻는다. 이런 류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래도 나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어한다고도 하지만,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정치, 경제적 이슈들에 대해 뒤에서 페북 좋아요를 누르고 기사를 공유해 퍼나르는 젊은이들은
보이지만 어떤 분야에 깊이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하는 사람을 잘 안 보인다. 어떤 젊은이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이유는 기성세대가 나누지 않고 누리고 있는 힘이나 권한, 지위 등으로 인해 생존 위협을 느낄 만큼 젊은이들 일상이 각박하기 때문이다.
여기 중견 스파이?가 개탄하듯 지금 젊은이들은 불쌍하게도 영혼을 팔아서라도 순응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안정된 직장과 일상을 소유할 수
있다.
"그들의 사뭇 진지한 대화를 지켜보는 것도, 내가 저 질문을 하기 전까지 그들은 이미 토론면접까지
거쳤다. 고용불안과 승자독식의 세계 주위에서 사회의 맨 밑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이십대 젊은이들의 사회적 연령이 낮아지고 있고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도 떨어진다는 보고서가 계속 있었다. 감각적으로 그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정말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있을 때는 시비를 걸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 방법을 모른다. 아예 싸울 줄 모를뿐더러 비록 이번에
싸워서 승리하지는 못해도 승리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저 취직만 시켜준다면 돈만 벌게 해준다면 끽소리 않고
살겠다는 생각인가. 나쁜 세상에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인가."164쪽.
* 하루키? 등장인물에 따라 번갈아가며 전개되는
장(혼란스러움)
종종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장르가 구사하는 비유와 애매모호한 표현 때문에 스토리를 이해하며 독서하기가 힘들곤 하다. 이 이야기는 마치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원제: 일각수의 꿈)" 속 주인공들처럼 거시적 혁명이 아니라 소소한 곳에서 소소한 방식으로 거시 구조
악에 대해 균열을 내며 싸워 나가는 이야기이다. 이 "고요한 밤의 눈"이 등장인물에게 이니셜을 붙이고 장마다 다른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우고
있는 점 역시 한동안 하루키가 취하던 장편소설 구성 방식과 비슷해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이니셜 붙은 등장인물로 장마다 화자가 바뀌니 스토리
자체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 아쉬웠다. 요즘 해야할 일, 읽어야 할 책이 많아 내 스스로 집중해서 읽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