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어 천년을 살리라 1 - 안중근 평전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평점 :
안중근 평전
이문열 (지은이) 알에이치코리아(RHK)
소설의 서평은 보통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몇문장을 적어놓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입니다. 그런데 줄거리를 요약하면 스포일러가 되고, 결말을 빼놓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마음에 드는 문장을 놓고 자신의 감상을 나열하는 방식인데 이것도 부족한 것이 전체적인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아니. 전체내용을 모르니 책을 읽게 되는건가.)
어쨌든 주요내용과 결말을 스포일러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소설은 서평신청을 안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안중근 의사의 평전입니다. 우리는 하얼빈 의거와 뤼순감옥을 알고 있죠. 결론을 알고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니죠. 명작이나 고전은 내용을 이미 알고 있지만 알면서도 항상 두번 세번 다시 읽을 수 있는 힘이 있죠.
게다가 이문열 선생의 이름 세글자로 안읽을 수가 없습니다. 여지껏 나온 책들 중에 재미없는게 하나도 없고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달리는게 특징이죠.
이제 아는 이야기를 책에서 어떻게 풀었을 지가 궁금합니다.
책을 받았는데 1권입니다. 깜짝. 웬지 삼국지, 초한지의 10권이 떠올라서 놀래기는 했지만 원체 글이 잘읽히고 몰입되는 분위기라 별 걱정은 안했습니다.
안태훈 진사의 전쟁 부분의 집중도가 좋습니다. 군사 전략이며 진행이 읽는 내내 숨가쁘게 만듭니다. 저 좁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치 삼국지에서 수십만 대군의 전쟁 장면같습니다. 얼마 안되는 자료로 이렇게까지 풀어가는 작가님의 탁월한 능력에 감탄할 뿐입니다.
"나는 셋과 닫는 여덞(三飛八走) 가운데서도 '나는 셋'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라길래 찾아보니 논문에 "박은식과 함께 안중근의 부 안태훈은 삼비팔주라는 11명의 한 사람이었을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다."고 나옵니다. 삼비팔주는 우학도인, 단에 나오는 11명이 아닌가요. 엄청나게 궁금한데 이렇게 간단하게 한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기법이 놀랍습니다. 궁금하게 던져놓고 넘어갑니다.
2/3쯤 읽다가 이러다가 큰일나겠다고 바로 2권을 주문해놨습니다. 책안에 2010년의 서문이 있길래 찾아보니 그때 나온 "불멸"을 다시 수정하여 출판한 겁니다. 제목이 훨씬 멋있어졌습니다.
죽어 천년을 살리라 (生無百歲死千秋) 라는 비장한 제목에 한시를 찾아봤습니다.
손문(孫文)의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글
功蓋三韓名萬國 공개삼한명만국 : 공은 삼한을 뒤덮고 이름은 만국에 떨치니
生無百歲死千秋 생무백세사천추 : 백 년을 못살아도 죽어 천 년을 살리라
弱國罪人强國相 약국죄인강국상 : 약한 나라 죄인이나 강한 나라 재상이다
縱然易地亦藤候 종연역지역등후 : 처지를 바꿔놓고 보면 이등 역시 죄인이라
원세개(袁世凱)의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글
平生營事只今畢평생영사지금필 : 평생을 벼르던 일, 이제야 마쳤다.
死地圖生非丈夫사지도생비장부 : 죽을 곳에서 살기를 도모하면 장부가 아니다
身在三韓名萬國신재삼한명만국 : 몸은 삼한 땅에 있으나 만국에 이름을 드높였도다
生無百世死千秋생무백세사천추 : 백 년을 못살아도 죽어 천 년을 살리라
양계초(梁啓超)의 추풍단등곡(秋風斷藤曲), 가을 바람에 덩굴이 끊어졌네. 단등의 표현이 절묘합니다. 전체 48연, 96구의 장문이라 멋진 대목만 따왔습니다.
1) 秋笳吹落關山月, 驛路靑燈照紅雪. 가을 밤 불어오는 피리소리는 관산의 달빛에 흩어지고, 역로의 푸른 등불은 흰 눈을 붉게 물들여 비춘다.
34) 萬里窮追豫讓橋, 千金深襲夫人匕. 만리 끝까지 쫓아오니 예양교요, 천금같이 깊이 감췄나니 사나이 비수로다.
35) 黃沙捲地風怒號, 黑龍江外雪如刀, 황사가 땅을 마는 듯 바람이 거세게 불고, 흑룡강 밖에 내리는 눈 마치 칼날 같구나.
36) 流血五步大事畢, 狂笑一聲山月高. 피가 다섯 걸음이나 흘러넘치며 大事는 끝이 나고,57) 미친 듯 호탕한 웃음소 리에 산 위 달도 높구나.
40) 男兒死耳安足道, 國恥未雪名何成. 남아는 죽어서 이에 도를 이루지만, 국치를 씻지 않는다면 명예는 이루어 무 엇 하리오라고 한다.
47) 一曲悲歌動鬼神, 殷殷霜雪照黃昏, 슬픈 노래 한 곡조에 귀신이 감동하고, 은은한 눈서리 황혼에 비친다.
48) 側身西望淚如雨, 空見危樓袖手人. 몸을 옆으로 돌려 서쪽을 바라보니 눈물이 비 오듯 하여, 공연히 높은 누대에 팔짱 끼고 서있는 나리들 바라본다.
- 양계초의 추풍단등곡 탐구, 최형욱, 동아시아문화연구 제49집, 2011. 전체 번역과 함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 양계초의 시만 보려면 http://www.snuma.net/xe/freeboard/129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