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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편집 - 에디터·크리에이터를 위한 편집력 강의
스가쓰케 마사노부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도쿄의 편집
에디터·크리에이터를 위한 편집력 강의
스가쓰케 마사노부 (지은이), 현선 (옮긴이) 항해 2022-12-12
도쿄. 일본의 수도죠. 뭔가 디자인의 최전선에서 편집을 보여준다고 하니 솔깃합니다.
책날개에 건방지게 자신이 편집한 디자인들을 보여주면서 누워있습니다. 젊은 여자네요. 자신의 반생을 편집에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그냥 인생의 반을 썼나? 20세에 이쪽 일을 시작해서 이제 40세가 된걸까요. 혹은 30세에 시작해서 60세가 되었을까요. 얼굴이 젊어 40대로 보이니 전자가 맞을 것같습니다.
1장은 기획에 대해 큰 흐름을 잡아줍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무엇을 보려주려고 하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
예산, 일정, 인원의 제약이 있다.
비용을 대는 클라이언트가 있지만, 조율은 하지만 그다지 의견을 듣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통쾌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유통, 배급에 따라 형태를 고민하고, 새로움, 제안, 도발, 다시 제안하기, 엮어모으기, 세계관 형성 등 기획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다시 제안하기 기획의 쉬운 예로 쇼가쿠칸이 1982년에 출간한 『일본국 헌법』이라는 책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이 책의 내용은 그저 일본 헌법의 조항뿐입니다. 그러나 마치 사진집처럼 텍스트와 사진을 교차 편집하는 등, 시각적 측면에 무척 신경을 써서 무려 약 100만 부나 팔려나갔죠.
최근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초역 니체의 말』같은 ‘초역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난해한 언어를 대담하게 발췌해서 쉽게 푼 ‘다시 제안하기 기획‘의 성공적인 사례인 것이죠. 물론 그 결과물이 니체의 원저만큼 울림을 주는지는 알수 없지만요.
26p.
마음에는 안들지만 성공한 결과로 알려줍니다. 저렇게 기분이 나쁘면 소개하지 않으면 되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책이 나왔지만 그다지 반응이 없었고, 초역 시리즈는 성공적인 것같습니다.
그래도 글로 설명하는 편집물의 전체 사진들을 앞부분에 배치하여 읽으면서 아 이런 디자인이구나, 이런 편집이네 하며 바로 알 수 있게 구성해놨습니다. 각주마냥 글을 읽다가 계속 앞으로 돌아가면서 봐야하니 상당히 귀찮습니다. 이럴거면 좀 친절하게 책 사이사이에 넣어도 될텐데 왜 이런 편집을 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이게 편집자의 관점인건가 생각도 듭니다. 자신의 작품들을 한번에 몰아 보여주고 싶었나봅니다.
2장은 언어입니다. 여기가 좋습니다. 글쓰는 핵심을 짚어줍니다.
독자는 전부 읽지 않는다, 타깃에 맞춰 글을 쓴다, 하루키조차 혹평을 받았던 시절이 있다,
1978년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문예지 『군조』에 게재되어 그해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같은 해 아쿠타가와상에서는 떨어졌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미국의 요즘 문학을 교묘하게 모방한 작품도 있었는데, 모방은 작가가 독자적 창작의 길로 향하는 훈련 과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기에 작가 자신에게나 독자에게나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시도라고 느꼈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1973년의 핀볼』도 아쿠타가와 문학상 후보에는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때 이노우에 야스시의 평가는 이렇습니다.
‘1973년의 핀볼‘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유일한 작품이었다. 부분적으로 뛰어난 부분도 있었고 신선함도 느껴졌지만, 상대적으로 볼 때 감성이 겉도는 부분이 많아서 잘 쓴 글이라 하기는 어렵다.˝
나카무라 미쓰오의 평가는 더욱 가차 없었죠.
‘1973년의 핀볼‘도 마찬가지로, 혼자만 고상하다는 듯 잘난 척하는 청년을 그처럼 태평스럽고 안이한 붓놀림으로 묘사한들 청년의 내면은 일절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날 미국화한 풍속은 분명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지만, 그 풍속의 표면만을 다루는 얕은 시각에서 문학은 태어나지 않는다. 재능은 있어 보이나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47-48p. 2장: 언어 주목을 사는 도구로서의 글
하루키가 스스로 책에 가끔 비판을 받았다고 가볍게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심하게 비평을 받았었군요.
가키우치 요시후미는 제목을 붙일 때 늘 네 가지 지점을 고려한다고 합니다.
- 친근성: 제목에 사용한 표현이 내게 익숙한 표현인가?
- 내용성: 제목이 책 내용을 드러내고 있는가?
- 대화성: 제목을 통해 독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찬반 여부를 떠나 의견을 들을 수 있는가?
- 충격성: 서점에서 그냥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눈을 끄는가?
그는 좋은 제목을 지으려면, 위 네 지점 사이의 균형을 의식하며 책에 가장 적절한 제목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참고해볼 만한 조언입니다.
63-64p
좋은 말입니다. 더 대단한 점은 네 가지를 다 쓰라는 것이 아니고 그 사이의 균형을 잡아야한다 입니다. 대화성도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도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제목을 다시 보면서 책의 내용을 제목에 다 표현했나, 내용과 동떨어진 제목이 아닌가를 보는데 제목과의 대화성은 꼭 필요합니다.
3장은 이미지입니다. 사진과 영화가 난데없이 명작이 떡하니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지는 사실을 전달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합니다. 사물을 쉽게 전달하는 역할도 있고 도발하거나 공감하게 합니다.
오마쥬라든가, 해상도, 거리감 등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도 설명해줍니다.
무엇보다 이미지에 설탕을 입히지 마라! 멋진 표현입니다.
억지로 단맛을 내지 않고 재료가 가진 본래의 맛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제 기준에 설탕에 해당하는 것은 ‘웃는 얼굴‘, ‘아이‘, ‘동물‘의 이미지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만 넣어도 손쉽게 행복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이 즐겨 사용하죠. 아이가 동물과 같이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불쾌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어떤 매체를 통해서 공개해도 일단 호감을 얻는 소재입니다. 다만 이런 이미지에서 독창성을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97p.
생각하는 수준에 한단계 위에 더 위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설탕을 제대로 쓰는 사진가는 칭찬합니다.
뒷날개에 저자 스가쓰케 마사노부는 1964년생이라고 나오네요. 그럼 59세에 반생, 29년을 편집일을 했나봅니다. 60이 다된 나이에 표지사진을 찍다니, 생각에 거리낌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