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 - 한층 깊은 시각으로 들여다본 우리의 역사
김상훈 지음 / 행복한작업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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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
한층 깊은 시각으로 들여다본 우리의 역사
김상훈 (지은이) 행복한작업실 2022-12-07

평소 역사와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이 책은 딱 제 취향을 잡아서 알려주는 책같습니다. 2019년의 ˝B급 한국사, 지식의 빈틈을 메꿔주는 역사잡학사전˝를 새롭게 꾸며 펴낸 거라고 합니다. 새로 바뀐 제목은 ˝한 걸음 더 들어간 한국사˝입니다. 책내용이 같더라도 제목을 잘 뽑아낸 것같습니다.

총 51가지 이야기가 조상들의 사는 모습, 옛날의 일들, 역사의 사람들, 마지막으로 세상에 이런 일이?! 개인적으로 마지막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UFO에 인육, 금주령 등 별일이 다 있습니다.

조선시대 과거를 보려면 외워야할 한자가 40만자였답니다.
고려 전기 최충의 구재학당이 최초의 입시학원이었습니다.
1910년-1924년까지 사진만 보고 결혼하여 950쌍의 부부가 탄생했네요.
조선시대 천문학 수준이 높았다고 들었는데 1609년 실록의 내용에 따르면 행성, 운석, 유성을 구분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내용 하나하나가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뭔가 깊이있는 구석까지 들어가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듯합니다.

그 자리에는 『삼국사기』의 저자이자 문벌 귀족인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도 있었다. 갑자기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이 멋있다며 희롱하더니 촛불로 태워버렸다. 화가 난 정중부가 흠씬 패주었다.
이럴 때 올바른 아버지라면 망나니처럼 행동한 자식을 혼내야 한다. 정중부에게 사과를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김부식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미천한 무신 따위가 감히...”라며 당장 벌을 내려달라고 왕에게 청2했다. 후안무치다. 다행히 정중부는 왕의 배려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문신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졌다.
......
그날 밤, 무신들은 정변을 일으켰다. 나들이에 동행했던 모든 문신들이 철퇴에 죽어나갔다. 26년 전 정중부의 수염을 태웠던 김돈중도 이날 목숨을 잃었다. 비루한 왕도 얼마 후 암살되었다.
133p. 별의별 것들의 유래
삼국사기의 김부식이 이렇게 자식교육을 못시키는 사람이었나요? 뭔가 무신의 지위가 노예보다 아래에 있는 시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국사교과서에는 무신정변의 정중부밖에 못배워 이런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무신정권이 꽤 갔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들이 심한 짓을 히여 죽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죽은 후라 넘어갔나 봅니다. 표면적인 역사가 아니라 정말 한 걸음 더 들어간 내용이라 좋습니다.

서울 대학교 병원과 세브란스 병원의 적통 논란이 무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논란은 제중원이 국내 첫 서양 병원이라는 인식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제중원보다 먼저 국내에 세워진 근대식 서양 병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보다 훨씬 전에 일본인 의사가 국내에서 서양 의료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에 제중원이 설립되기 13년 전 1872년(고종 9년) 일본인 의사 다카다 에이사쿠기가 부산항에 내렸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 공관과 일본인 거류지가 있었다. 초량이란 지역에 있었기에 이를 초량관이라 했다. 초량관은 일본이 조선에 진출하기 위한 전초 기지 역할을 했다. 그 안에 한국어 통역관을 양성하는 어학소까지 두었다.
다카다는 이 초량관에서 일본인 환자를 진료했다. 이미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적 개혁을 추진하던 일본이었기에 서양 의학자가 드물지 않았다. 다카다 또한 서양 의학을 공부한 의사였다. 다카다의 의료수준이나 장비가 아주 첨단이지는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는 한국에 최초로 서양 의학을 선보인 인물로 기록되었다.
162-163p
여기 재미있습니다. 두 대학이 서로 원조라고 다투는데 정작 원조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런 식의 설명이 좋습니다. 서로 자기네가 옳다 소리지르고 있는데 가만히 팩트를 제시하니 이제 더이상 못싸우겠네요.

끝났는데, 끝나지 않았다! 서인이 잔혹한 보복을 시작했다. 서인의 정철이 조사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정철은 탁월한 문인이었지만 동시에 잔인한 정치가였다. 정철은 사건을 확대했다. 이참에 동인을 무참히 짓밟으려는 심산이었다. 뜻대로 되었다. 동인의 영수 이발을 비롯해 1,000여 명이 처형되거나 유배를 떠났다. 이것이 기축옥사다.
262-263p. 역사를 만든 사람, 사람이 만든 역사
강호애 병이 깁퍼 듁님의 누엇더니! 그 관동별곡의 송강 정철. 그분인가요. 모를 일이네요. 이 시기에 1000명을 내쫓았으면 일할 사람이 안남았겠습니다. 하기야 조조도 술자리에서 단가행이라는 멋진 시를 읊다가 마음에 안든다고 창을 던져 죽이기도 하였죠. 그건 자기가 대장이니 멋대로 하는 거고, 임금 밑에 있으면서 1000명을 내치다니 놀랄 일입니다.

표면적인 역사의 소제목에서 한발 더 들어가는 재미있는 한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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