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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하스 의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다.
이 책은 사야지~하고 마음만 먹다가 이번에 세일하길래 질렀는데 오랜만에 그녀 특유의 이야기를 읽으니 정겨운 느낌이 들더라. 물론 내용이 정겹다는 건 아니고. ㅎㅎ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과자, 웨하스.
크리스마스때 과자선물세트에 담겨 있던 여러가지 과자를 동생과 나누며 서로 맛있는 것을 먹겠다고 싸우던 기억이 난다.
웨하스도 그 중 하나였다. 내게 웨하스는 어린시절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는 과자인 것이다.
나는 그 하얀 웨하스의 반듯한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약하고 무르지만 반듯한 네모. 그 길쭉한 네모로 나는 의자를 만들었다.
조그맣고 예쁜, 그러나 아무도 앉을 수 없는 의자를.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했다.
눈 앞에 있지만, 그리고 의자는 의자인데, 절대 앉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웨하스 의자는 내게 행복을 상징한다.
<웨하스 의자>에서 사랑하는 두 남녀, 즉 나와 애인은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사이이다.
여자는 중년의 독신이고, 남자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들까지 있는 유부남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따라 그림을 그리고 우산이며 스카프의 디자인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모든 것을 바쳐 애인을 사랑한다.
그녀는 생각한다. 자신은 어른인데, 때로 어린애의 시간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녀에게 절망은 곧 사랑이다. 그 절망을 벗어던지려 할 때, 즉 애인과 헤어지려 할때 그녀에게 남은 건 죽음 뿐이다.
죽음의 상태에서 깨어난 그녀를 바라보는 애인의 따스한 눈길을 마주하며 다시금 여행계획을 세우는 두 사람. 그들에게 과연 불륜이란 올가미를 씌울 수 있을까.
에쿠니 가오리, 그녀의 소설에는 늘 일그러진 모습의 사랑하는 연인이 등장한다.
겉으로 볼 때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는 커플이지만 실상 그들의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공감하게 된다.
산뜻하지 않은 관계를 그린 소설이지만 읽고 나면 가벼움을 느끼게 되는 것.
아마도 그게 그녀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