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의 개 -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의 띠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음산함이 느껴진다. 후지와라 신야의 작품이란 것을 알았을 때 제목만 알고 있던 동양기행이 떠올랐고 사진과 글이 함께 담긴 여행기쯤으로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1995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옴진리교' 사건과 관련된 내용들과 인도에서 겪었던 낯설고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책은 1995년 7월부터 1996년 5월까지 <주간 플레이보이>에 '세기말 항해록'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처음 후지와라 신야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여행이 점점 나약해지고, 쉽게 신앙에 빠지는 위험성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과거 여행을 통해 그 시절 청년들이 인도에서 어떤 삶을 보냈는지 확인시켜줌으로서 신앙에 깊이 심취하다보면 자기 상실의 위험성이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도여행을 연재하게 된 계기가 옴진리교 사건에 있음을 밝히기 위해 우선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 일본 열도를 경악케한 사건이 벌어졌다. 인도의 힌두교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 단체의 신도들이 도쿄 시내의 전동차 다섯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린 가스 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약 5,000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병원에 실려 갔고, 열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 역사상 희대의 테러 사건으로 불리는 '옴진리교 사건'이다. 

저자와 옴진리교 교주였던 아사하라 쇼코 모두 인도를 여행했지만 그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인도라는 땅은 정치 이상으로 종교가 인간 생활의 규범으로 대접받고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는 종교와는 거리를 둔 여행을 했지만 옴진리교 청년들은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집단 명상에 빠졌고 일본에 대해서는 세상의 모든 현상과 체제를 믿지 않는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종교에 귀의해버렸다. 그러면서 신앙보다는 과대망상에 가까운 정신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나타났고 이는 인도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망상속으로 도피함으로서 자신을 보존하는 일종의 현실도피라고 여겨진다.

길 위에서 쉽게 삶과 죽음을 접할 수 있는 곳, 인도는 모든 여행자들이 한번쯤 가보길 원하는 이상향 같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갠지스강 근처에 가면 시체 태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자는 모래섬으로 배를 저어 간 후 그곳에서 사람의 시체를 먹는 '황천의 개'를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은 나의 손에도 땀이 날만큼 급박하게 느껴졌다. 무섭기도 했지만 무언가 인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로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할까. 책을 읽는 동안 꿈꿔왔던 인도를 여행한 느낌이었고 알지 못했던 옴진리교 사건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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