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구하다
하시모토 츠무구 지음, 맹보용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회사를 다니던 나는 어느날 홀연히 사표를 내던지고 호주로 연수를 떠났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기보다 당시 나를 둘러싼 환경들에 지루함을 느꼈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도모코와 데짱이 도쿄를 벗어나 시골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호주에서의 내 생활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로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흰 바탕에 나란히 서있는 남녀와 고양이의 표지가 아기자기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며 문체가 매우 간결한데 책은 시종일관 동거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담담하고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던 도모코는 밤새면서 일하던 어느날 발작을 일으키고 자신이 패닉장애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때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고 병원에 함께 가준 사람이 바로 데츠였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그 일을 계기로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도모코는 데짱과 함께 도쿄를 떠나 시골로 이사를 한다.아담하고 지붕이 파란 빛이 쏟아져들어오는 집. 생각만으로도 포근하고 따스하다. 하루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도모코와 데짱의 모습은 예전에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서 봤던 봉준호 감독님의 Shaking Tokyo를 떠올리게 했다. 도모코는 아르바이트로 학교에 가지 않는 소녀의 영어선생님이 되고 고양이 콩이 새 식구가 되면서 그들의 소소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놓은 돈도 많지 않고 매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세 조바심을 낼 것이다. 하루에도 서너번씩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현실에 발목이 붙잡혀 도모코와 데짱의 여유로운 일상을 그저 부러워할 뿐이다. 바쁜 것도 아니면서 여유라곤 전혀 없었던 요즘의 내게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 책은 작은 쉼표와도 같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성공적인 삶도 좋지만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인생이라면 마음의 빛을 잃지 않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무슨 일에든 덤덤해 보이는 도모코의 모습과 늘 웃으며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하는 데짱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내 입가엔 흐뭇한 미소가 맴돈다. 

그 누구도 아니다. 나를 쫓고 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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