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쥔 손에 힘을 주면 책에 흐릿한 홈이 파인다.
그 홈에는 내가 어느 문장에 줄 그은 순간 느낀 시간과 감정이 고인다. 그래서 가끔 그 홈이 물고랑 밭고랑 할 때 ‘고랑‘ 처럼 느껴진다. 나와 나 자신을, 현재와 과거를, 우리와 타자를 잇는 먹 고랑처럼. 천천히그리고 꾸준히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이야기도 언젠가 두보의 시구처럼 누군가의 삶과 만나게될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스침이 혹 꽃잎 한장의 무게밖에 갖지 못한다 해도, 이야기의 이어달리기, 이야기의 배턴터치가 계속되길 빈다.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