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섯 살 무렵 어머니는 ‘그래도 아들이 있어야지‘라는 할머니의 청을 거절하고 아이를더 낳는 대신 국수가게를 차렸다. 본가에 들어와 살 림과 농사를 맡으라‘는 요구 또한 받아들이지 않고자기 삶을 꾸렸다. 어머니가 종일 밭을 매고 고추를따는 사이 하루 두 번 씻겨 늘 깨끗하던 우리 몸에 이가 생기는 걸 목도하고서였다. 어떤 관계에서는‘식구니까‘ 혹은 ‘식구끼리‘라는 말이 줄곧 일방통행으로 쓰인다는 걸 깨닫고서였다.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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