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즈음 숙소에서 나와 거리를 걸으며 도시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는 순간을지켜보는 게 그때의 내 유일한 낙이었다. 빛의 도시 서울이 폐점하듯 컴컴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아니, 내가 그때 숨죽이며지켜봤던 건 완전한 어둠이 아니라, 편의점과 24시간 운영되는 식당과 깜빡이는 신호등에서 보내오는 꺼지지 않는 불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깊은 새벽이어도 불 켜진 창문들이 꼭 몇 개씩 남아 있던 빌딩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검은 천막을 뒤집어쓴 거대한 발광성 생명체처럼 보였고, 빌딩 옥상의멀티비전에서는 음소거된 상태로 환하게 웃는 미인들이 클로즈업됐다. 내게 말을 거는 듯했던 고요한 빛의 수런거림, 나는 바로 그 수런거림을 듣기 위해 자정마다 아무도 몰래 숙소를 나와 무작정 걸었던 것이다.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