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마음들의 마을 - 우리는 각자의 지옥을 품고, 서로의 구원을 꿈꾼다
도널 라이언 지음, 정소하 옮김 / 필름(Feelm)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부서진 마음들의 마을 > 이라는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표지 속 마을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2024 아일랜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이 소설의 작가 도널 라이언은 클레이 키건과 함께 아일랜드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읽기 전, 무려 21명의 화자라는 독특한 설정 덕분에 반드시 메모를 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리뷰를 많이 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워낙에 인물의 관계도나 이름에 약하기에 이런 사전정보는 너무도 유용하다.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의 주민들은 조용하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듯하지만, 어딘가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 

보비라는 중년의 남자는 이 마을의 중심이 되는 인물로 주민들로부터도 좋은 이미지를 받고 있는데, 어느 날 친구 동생의 총각파티에 참석했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그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한 장의 사진이 유포되게 된다. 

1장 보비의 이야기에서 그 사진을 찍은 절친 쇼니를 때려죽일 것처럼 싸우지만 쇼니가 웃음기 없이 사뭇 진지하게 그 사진은 삭제했고 아무한테도 보낸 적 없다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쇼니의 말이 진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뒤에 쇼니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에서는 이와는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상에나...

이처럼 나머지 20명이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 가운데 이 보비의 사건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진다.






몇 년간 집을 떠나 소식조차 끊겼던 아들 포키 버크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자 아버지는 좋아하지만 그의 등장은 곧 마을에 독을 퍼트리는 계기가 되고 아버지마저 희생양이 된다. 

포키로 인해 약물과 마약이 이 작은 마을에 조금씩 유입되면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되고, 주민들의 균열되는 마음들이 서서히 드러난다.


이들 가운데 가장 안 된 인물은 릴리라는 여성으로, 그토록 아끼던 손녀 밀리센트한테서 큰 배신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참 아팠는데, 또 밀리센트 입장에서 그녀의 고백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면서, 차라리 할머니한테 진실을 털어놓았다면 적어도 손녀에 대한 마음의 상처는 입지 않았을텐데..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처음 3,4명의 이야기까지는 어떻게 연결이 좀 되고 이해가 되더니 어느 순간 인물들이 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또 그러다 앞에서 언급되었던 인물이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등장하면서, 조금씩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리뷰를 쓰느라 앞으로 돌아가 다시 뒤적이다 보니, 처음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름이며 연관성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마치 추리소설에서 곳곳에 숨겨둔 복선과 단서를 두번째 읽으면서 파악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 책은 집중해서 읽어야 제대로 그 묘미를 느낄 수 있기에, 병렬독서로 읽지 않길 잘했다. 

꽤나 독특한 구성이고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각자의지옥 #서로의구원 #도널라이언 #장편소설 #부서진마음들의마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8050 ㅣ 이판사판
하야시 마리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80대 노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사회문제를 뜻하는 8050.

히키코모리에 이어 이러한 8050 현상이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하는데, 가까운 미래의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겁다.


이 책의 부모와 자녀의 나이는 30년 정도 더 젊지만, 이 문제를 방치하고 그대로 가져간다면 자연히 8050 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소설 속 가족은 뒤늦게나마 다행히 그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긴 하지만..


마사키는 동네에서 치과를 운영하며 큰 부자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큰 딸은 아버지의 욕심과 기대치에 부응해 일류대학에 합력, 대기업에 입사하지만, 우등생이던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등교거부를 시작으로 그 후 7년간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히키코모리가 된다.

가족 구성원 모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다.

그 전까지는 그저, 그런 동생, 그런 아들이 창피하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었는데, 딸의 결혼을 앞두고 그들 가족 앞에서 보인 아들의 미쳐 날뛰는 난폭한 행동에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쇼타가 히키코모리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가족내에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는 다소 권위적인 마사키도 그렇고, 시부모와의 문제와 갈등을 한번도 남편에게 터놓지 않고 맘속에 응어리로 남은 아내도 그렇고, 히키코모리 동생이 창피하고 그런 동생이 자신의 결혼에 해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딸도 그렇고...


그러나 이런 가족의 모습은 왠지 낯설지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가정내의 풍경이 아닐런지..

물론 일본만큼 히키코모리 현상이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닐지는 몰라도 대신 청소년들의 자살율은 상당하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청소년들의 학교문제를 부모가 알아채고 도움의 손길을 준다는 것은 사실상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내 자녀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꺼야..하는 생각은 금물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또다시 느끼게 된다.

가해자들도, 그것을 묵인하는 학교도 교사도..너무도 익숙한 모습들이라 더 화가 난다.

일본내에서 히키코모리를 대상으로, 붕괴되는 가정을 상대로 현혹된 광고로 잇속을 챙기려는 수많은 장사꾼들의 모습이 놀랍기도 하다.


이 소설에서는 8050이라는 사회문제를 큰 테두리로 다루고 있지만, 히키코모리, 가족간 소통의 부재, 학교폭력 등 다양한 이슈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어서 다행이다.



p.s 작가의 이름은 낯선데 작품을 보니 20여년 전 읽었던 19금 소설 < 불유쾌한 과일 > 의 저자라는 사실이 의외였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 ㅣ 명화의, 그때 그 사람
성수영 지음 / 한경arte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유명한 이 시리즈를 이제서야 만나본다. 완결편인 것도 몰랐네.

요즘은 너무도 다양한 미술 에세이가 많아서 사실 이 시리즈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는데, 어머 !! 이렇게나 재밌는 책을 지금까지 안 읽었었다니.. 

처음 몇 페이지를 읽는 순간 바로 이 책에 매료되었다. 


저자의 필력이 너무 좋은데다가 작품 위주가 아닌 작가의 삶 위주의 스토리가 펼쳐져서, 원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가 빠져 읽을 수 밖에 없는 책. 게다가 피카소, 카라바조, 램브란트, 호퍼 등의 유명화가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그 미지의 인물에 대한 내용들이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피카소의 유명한 여성편력과 최악의 인성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고, 그의 천부적인 재능을 떠나 점점 더 싫어진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피카소에 대한 인식이 점점 바뀌게 되고, 실제로 서구 주요 미술관들 중에서는 피카소 전시를 꺼리는 곳도 늘고 있다고 한다. 





아르망 기요맹의 인생 스토리는 꽤나 인상적이다.

흙수저 출신인 그는 16살에 처음 생활전선에 뛰어든 이후 미술 공부를 위한 시간확보를 위해 몇 차례 직장을 옮기며 치열하게 그림에 매달렸다. 

모네 등의 동료 화가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10년 넘게 열정과 노력으로 그림에 매진한 결과, 반 고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등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화가가 된다.

40대 중반부터는 경제적 여건도 안정되고, 17살 연하의 교사인 아내와의 금슬도 좋았다.

그의 탄탄대로 인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50세 때에는 거액의 복권(지금 돈으로 거의 40억원에 달하는 거액) 에 당첨되는 행운까지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원체 성실한 기요맹은 그 후에도 연금을 받는 나이까지 일을 계속하고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그토록 원했던 그림을, 고객의 필요에 의해, 유행에 맞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마음껏 그리게 된다. 

그 후 비록 세상의 시선은 점차 차가워지고, 인상파 화가로써 후대에 전설이 되지는 못하지만 여든 여섯 살까지 살면서 그저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행복하게 살다 삶을 마친다. 


살아 생전 인정을 받지 못하다 사후에 큰 빛을 보게 되는 많은 화가들에 비하면 기요맹은 미술사에 커다란 발자국은 남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살아 있을 때 행복하게 여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에 찌들고, 병으로 요절하고, 고뇌에 차고, 괴팍한 성격 혹은 여성편력 등등 유명화가들이 어느 하나쯤은 짊어지고 살았던 이런 성향이나 환경을 생각할 때, 고난의 삶을 살다 죽어서 빛을 보는 것보다는 기요맹의 인생이 더 낫지 않을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앙리 에드몽 크로스는 20대 중반에 류마티즘 관절염으로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관절을 가장 많이 쓰는 점묘법에 매진하지만, 합병증인 홍채염으로 시력이 악화되고 나중에는 암까지 걸리면서 힘든 삶을 마감하게 된다. 






장 프레데릭 바지유는 금수저 의대생 출신이다. 

인상주의 그룹 화가 중 가장 재능있는 화가로 평가받았던 바지유는 모네의 절친으로써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고 친구들의 그림을 사주고, 인상주의 화가들이 마음껏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한다. 그러나 온화하고 내향적인 그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 자괴감, 가난한 친구들에 대한 거리감 등으로 점차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급기야는 최전방에 자원 입대한 후 29살에 총탄을 맞고 생을 마감한다. 

100여년이 흐른 뒤에야 미술사에서는 바지유라는 이름에 다시 주목하게 된다. 


이 책 덕분에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이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애, 작품까지 알게 되어 아주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시리즈의 앞서 3권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지...뒤늦게 너무 궁금해진다. 

미술이 어려운 사람들은 작품 해석된 책도 좋지만, 이렇게 화가의 생을 통해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도 꽤 좋을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세트] 어둠의 색조 1~2 세트 - 전2권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굉장히 묵직하고 먹먹한 범죄소설이었던 전작 < 나의 작은 무법자 > 에 못지 않은 추천작품이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이 어떻게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이 소설에서는 3명의 소년, 소녀가 등장한다.

해적놀이를 즐기고 열광하는 외눈박이 소년 패치, 그의 평생 친구인 세인트, 패치의 도움으로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미스티.

이들의 우정,사랑,복수의 서사가 10대에서 시작해 장작 26년의 세월에 담겨져 있다.


미국의 한 소도시의 아름다운 부잣집 소녀 미스티가 숲 속에서 납치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패치는 소녀를 구하는 대신 잡혀가고 어두운 지하실에 오랜 시간 갇히게 된다. 그 어둠의 시간 동안 그와 함께 했던 그레이스라는 소녀. 폐쇄된 암흑의 공간에서 비록 소녀를 볼 수는 없지만 그녀와의 시간들은 패치에게 영원한 구원의 손길과도 같다.


엄마와 단둘이 가난하게 사는 패치에게 있어 유일한 친구인 세인트는 패치가 납치된 후 소년을 찾는 것을 조금씩 포기하는 수사관들에게 기대지 않고, 결국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구조된 후 그레이스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패치는 그 후 26년이라는 삶을 ' 그레이스 ' 라는 실체를 찾는데 송두리째 바친다.


패치에 대한 세인트의 우정과 사랑은 한결같다. 비록 패치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하지만 그 둘이 30대, 40대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주고받는 그 둘만의 대화법은 너무도 친근하고 애정이 샘솟는다.

그레이스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 패치의 그림은 그 당시 실종사건에 연관된 소녀들의 초상화로 이어지고, 실종아동의 부모들을 방문해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 여정이 계속된다. 그러나 그의 종착역은 언제나 그레이스의 생존여부를 떠나서 그녀의 흔적을 찾는 것이다.


패치의 삶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아리고 먹먹하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에는 그를 사랑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충분히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의 곁에 항상 존재하는 세인트, 생명의 은인인 패치에게 보답의 감정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가지게 되는 미스티.

그런 미스티에게 세인트는 한 때 이런 부탁도 한다. 자신에게서 패치를 뺏어가지 말아달라고.. 그가 없어도 미스티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부유한 소녀니까..

어린 시절 잠깐 스쳐 지나가는 관계일 줄 알았는데, 평생을 패치와 함께 하면서 아버지같은 역할을 하는 새미도 정말 고맙고 든든한 존재다.


처음 책소개만 보고 한 소녀의 납치사건과 둘러싼 이야기가 두 권에 다 담겨 있을꺼라 예상했었는데, 반만 들어맞은 셈이다.

작가의 문학적 표현이 너무도 아름답고 섬세해서 읽는 내내 이 책의 장르가 미스터리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그러나 그 긴 서사 중간중간에 납치사건의 단서와 그레이스를 찾는 조각의 일면 등이 드러나고 있어 긴장을 놓치말고 읽어야 한다.

지독히도 마음아픈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작가의 책을 두 권 읽으니 이 작가의 작품 색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빠른 전개와 긴박한 분위기의 스릴러 소설을 즐기는 독자한테는 다소 느린 전개와 긴 호흡이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분위기라 앞으로도 계속 찾아읽게 될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너무도 매력적인 표지도 이 책의 독서를 부추기는데 한 몫 톡톡히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애가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ㅣ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 큐레이션 리커버
박경리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다산북스에서 박경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 김약국의 딸들 > < 애가 > < 표류도 > 의 3권을 리커버 특별판으로 선보였다.

다소 몽환적인 느낌의 커버가 정말 예쁘다. 그런데 내용은 표지만큼 아름답지 않다.


이 책은 박경리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시대를 뛰어넘은 멜로드라마, 어긋난 사랑이라는 문구를 보고 단순히 연인들의 아픈 사랑을 다룬 내용이려니 싶었는데, 왠걸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다. 이 책에서 다루는 사랑 가운데 정상적인 사랑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연인 진수의 과거를 알고 연인을 버리고 친구의 여동생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는 민호.

6.25전쟁 당시 자신을 사랑하는 미군에게 겁탈당한 후 그와 동거생활했던 민호의 연인 진수.

자신을 사랑하지 않지만 민호에 대한 연정으로 결혼을 결심하는 설희.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답고 희생적인 사랑을 한 인물이고 가장 가여운 인물이기도 하다.

설희를 사랑하지만 설희로부터는 편한 오빠의 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끌어내지 못한 채 민호와 결혼하는 설희로 인해 괴로워하고, 한순간의 욕정으로 혼자가 된 형수님과 관계를 맺는 상화.

현회와 사랑하는 사이지만 자신의 스승과의 결혼을 택한 현회를 잊지 못한 채 시골로 내려가 칩거생활을 이어가는 설희의 오빠 정규.

정규와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키워왔지만, 고아가 된 자신을 후원하며 키워 준 오박사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해 오박사의 아내가 된 현회.


이렇듯 주인공들이 다 자칭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중 가장 쓰레기 같은 인간은 민호이다.

연인이 양공주였다는 과거를 타인의 입으로만 들은 후 자신을 속였다고 분노해, 대체품으로 착하고 순수한 설희와 결혼한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그마저도 무책임한 행동을 보여주는 인간. 그의 파렴치한 행동과 사고방식은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해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 노력해도, 분노만 치밀 뿐이다.


민호에 비해 정규의 행동은 이성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감정만을 생각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민호와는 달리, 비록 실연을 겪었지만 오박사와 현회의 결혼생활을 훼방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동은 엿볼 수 없다. 애틋하고 참 안 됐다는 생각이 내내 든다.


박경리 작가님의 책 중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은 이번이 처음인데, < 토지 > < 김약국의 딸들 > < 시장과 전장 > < 파시 > 등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1950년대 한국의 성문화, 여성의 순결, 남성과 여성의 성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MZ 독자들의 시선으로는 어떻게 느낄지 사뭇 궁금하다.

그래도 역시 작가님의 필력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몰입해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