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과 로맨스. 얼핏 보기에는 전혀 무관한 듯 느껴지는 단어인데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느낌은 어느 새 사라져 버린다. 피고와 변호사 사이에 사적인 감정이 내재된다면 그 사건의 진행은 어떻게 되는 걸까.. 변호사도, 검사도 인간인지라 전혀 그럴 경우는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터. 이 작품이 바로 그렇다. 비록 변호사, 검사는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그 이상의 파워를 지녔을 법한 귀족탐정 피터 윔지 경은 피고석의 해리엇 베인이라는 여성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버린다. 해리엇은 자신의 전 애인을 비소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구속되었는데 모든 증거를 종합해 볼때 그녀의 범행임이 명명백백 드러나는 상황에서도 윔지경은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탐정의 직관으로 그녀가 무죄라는 확신이 들어서라기 보다는 감정적인 끌림으로 인한 무조건적인 편들기이지만 다소 엉뚱한 인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뭐 그냥 넘어갈 만하다. 게다가 윔즈경은 해리엇에게 결혼까지 조건으로 내걸고, 해리엇은 그런 윔즈경의 마음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일단 자신을 구해 줄 사람은 이 사람 뿐이라는 생각에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상황. 귀족탐정의 면모는 이러한 것일까..실제로 사건해결을 위해 나서기 보다는 뒤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한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의 활약은 그다지 두드러져보이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사람을 쓰는 것도 능력이고, 머리를 잘 쓰는 것을 봐서는 재능있는 탐정의 면모를 갖춘 듯 하다. 제목만 봐서는 스릴도 있고 치밀한 전개가 예상되는데 사실상 그런 면은 매우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른 느낌의 추리소설. 약간 고전의 느낌이 들기도 하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독살로 인한 살해가 많았고 이 작품도 실제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더군다나 작품속의 해리엇에 작가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는 사실, 즉 자전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작품이 뒤늦게 흥미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