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손에 잡힌 책이었는데 날씨 탓인지 책의 몰입도가 대단하다. 그런데 책장을 덮을 때에서야 이 몰입도가 단순히 날씨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 속에는 단순히 한 가족의 불행한 가족사가 아닌, 우리나라의 비극적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초반 읽어 내려갈 때만 해도 이 책의 분위기를 파악하진 못했던 것 같다, ) 큰아들 태순이와 막내아들 동익사이의 눈에 드러나는 대립과 그 사이에서 막내동생에게 지극정성인 딸 세연. 또한 그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부모로써 당당하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증오를 하게 된 걸까..궁금하기만 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열일곱의 점례이다. 꽃다운 나이의 그녀가 힘없는 나라로 인해 어떻게 한순간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지.. 그 후로 50살이 될때까지 얼마나 한맺힌 인생을 살아왔는지 읽는 내내 내 마음이 답답해지고 이도저도 못하는 점례의 입장이 한없이 가엽게만 느껴진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이 우리나라의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일제말기~한국전쟁 이라는 사실만 봐도 여자로써의 점례(특히 눈에 띄게 어여쁘고 젋디 젊은 나이)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예측하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래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점례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고 한없이 꼬이기만 한다. 부모의 목숨을 위해 일본순사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는 점례. 그 때부터 점례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하고 참는 인생이 되어간다. 일본으로부터 독립되고 일본남편은 아들과 점례를 남겨두고 일본으로 도망가 버리고, 이모의 계획으로 자신의 처지를 숨기고 죄책감과 갈등끝에 제대로 맞이하게 되는 첫 남편. 그 짦은 3년이라는 세월이 점례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다. 그리고 그 때 나은 딸 세연이도 훗날 점례에게 없어서는 안 될 큰 힘과 위안이 되어주고.. 그러나 하늘은 점례의 행복을 오래 허락해주지는 않는다. 순하고 자상하던 남편이 인민군 부위원장으로 활약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국군의 점령으로 남편은 점례의 곁을 떠나게 되고 점례는 또다시 홀로 남겨지게 된다. 남편과의 갑작스런 이별의 슬픔을 추스릴 틈도 없이 인민군의 아내로써 취조를 받게 되는 점례는, 미군의 도움으로 취조에서 해방되게 되고 일자리까지 얻게 되지만 또다시 그녀에게 의도치 않은 불행이 닥치게 되고 미군과의 사이에서 막내아들을 낳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당시 미군들이 의례 그렇듯이 그도 어떤 연락도 없이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한 아버지의 자식을 홀로 키우기도 힘든 마당에 배다른 3명의 자식을 홀로 키워야 하는 점례라는 여인의 한많은 인생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말년에는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그 동안의 불행을 보답받는 사람도 많을텐데 점례는 그러지도 못한다. 그 당시에 점례와 같은 인생을 살았던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구태여 어렵게 표현해내지 않아도 이렇게 점례의 인생만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아주 절절히 느껴진다. 6.25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 학생들이 이 책을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적어도 우리의 부모세대 혹은 그 윗세대가 어떠한 불행한 시대를 겪으셨는지, 교과서적인 설명과 틀에 박힌 내용을 백번 접하는 것보다 이런 소설 한권 읽는 것이 그 효과는 매우 크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