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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걷는 이유 - 이부스키에서 왓카나이까지, 기억과 성찰의 2,600km
임병식 지음 / 디오네 / 2026년 3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너무도 감명깊게 읽은 책이다.
일본의 최남단 이부스키에서 최북단 와카나이까지, 아픈 역사의 흔적을 찾아 저자가 2년에 걸쳐 일궈낸 성과는 읽는 내내 묵직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한다. 그 어느 페이지 한 장조차 소홀히 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와 닿는 덕에, 문장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어내려가게 된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는 단 하나다.
무조건적인 배타와 증오, 식민지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고로 일본을 평가하기 위함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극우 세력과 우익정치에 물든 군국주의 일본 정부의 여전히 뻔뻔스런 태도에 분노가 치미는 한편, 이러한 정부를 상대로 자국의 잘못을 일깨우고 배상과 사과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기관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미이케 탄광과 이 곳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그나마 이 곳은 다른 탄광과는 달리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는 공식 안내문과 함께 꾸준한 추모사업도 이어지고 있다.
자살특공대로도 유명한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조작된 애국심과 강요된 충성에 의해 죽음의 길에 들어선다.
편도 기름만 주유한 제로센 전투기의 명중률은 불과 11.6%, 내부에서 해치를 열 수 없게 설계된 가이텐 어뢰정이 격침에 성공한 배는 단 2척에 불과하다. 반면 전사자는 87명.. 10대~20대 중반 나이의 젊은이들의 무모한 죽음만 남은 결과이다.
그러나 해당 시는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들이 남긴 유품 등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나서는 이해하지 못할 일을 벌였다.

1945년 마이즈루 앞바다에 수장된 조선인 강제 동원 노동자와 가족들 5,000~7,000명의 죽음에 대해 일본 정부는 그동안 자료가 없다며 줄곧 공개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후세 유진이라는 일본인 기자가 끈질긴 정보 공개 요청과 자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일본 시민단체의 진상규명 노력에 의해 결국 승선자 명단을 공개하고 침몰되었던 선체를 인양하게 된다.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후세 다쓰지라는 변호사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나 감명깊다.
그는 천황 폭살 혐의로 체포된 박 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세기의 재판에서 두 사람을 변론한 변호사로, 단순히 변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인 학살을 지적하고 신문에 조선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 박 열 사후에는 그에 관한 책을 냄으로써 박열이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조선을 수차례 방문해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활동도 펼친다.
일본 군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일본인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조선 독립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실로 믿기 어렵다.

다다미 여덟 칸의 시골 학당에서 총리 5명, 장관급 이상 고위직만 무려 9명이 나온 쇼카손주쿠 학당을 통해 일본 우익 정치의 뿌리를 알게 된다.
그 외에도 너무도 가슴 아프고, 감명깊은 이야기도 정말 많이 담겨 있다.
일본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장소들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감상도 빼놓지 않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함께 하니 이러한 아름다움이 처연하게만 느껴진다.
저자는 친일과 반일의 대립된 감정, 쉽게 흥분하고 쉽게 분노하는 일본에 대한 감정을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음을..깊은 안목과 당당한 역사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이라는 나라. 분명 배울 것도 많은 나라임에 분명하다.
일본에 대해 좀 더 중립적으로 보게 되고, 너무도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된 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