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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선 - 뱃님 오시는 날
요시무라 아키라 지음, 송영경 옮김 / 북로드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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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240여 페이지의 얇은 이 책 몰입감이 상당하다.
일본 에도시대의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기괴하고도 폐쇄적인 풍습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에 걸쳐 흐르는데,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내내 궁금해하면서 앉은 자리에서 한번에 다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이 어촌마을을 살리는 것은 뱃님이다. 뱃님은 쌀을 싣고 지나가는 배가 섬의 암초에 걸려 좌초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마을에서는 바닷가에서 소금을 굽는 의식을 통해 뱃님이 오기를 기원하는 한편, 더 궁극적인 목적으로 밤에 소금을 굽는다. 그 목적은 바로, 뱃님을 유인하는 것이다. 유인한다는 것이 설마....
뱃님이 오지 않는 해에는 먹을 것이 궁핍해 각 가정마다 돈을 받고 외부로 사람이 인부로 팔려나간다. 타지에서 죽거나, 못 돌아오거나 돌아와도 이미 혼기를 놓쳐 애물단지가 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사쿠의 아버지 또한 3년 계약으로 다른 집 하인으로 고용되어 떠나게 되면서, 모질고 피폐한 상황에서 홀로 자식들을 키우는 강인한 이사쿠의 어머니를 통해 어촌마을 여자들의 삶이 그려진다. 한편으로는 가족 중 한 명이 떠남으로써 먹을 입이 준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다른 가정의 모습도 보여진다. 편한 것에 길들여지는데서 오는 인간의 본성, 궁핍과 굶주림 앞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이기심도 마주하게 된다.
'뱃님'이라는 단어를 읽으면 읽을수록 오싹해지고, 그 뱃님을 유인하기 위해 밤새 소금을 굽는 상황 자체도 뭐라 형용할 수 없이 공포스럽다. 거기에 더해 유인 후에 그들을 처리하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까지 상상하다 보면 공포가 내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나, 공포감과는 또 별개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며 찌든 삶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이 참 애잔하게도 다가온다. 그래서 결말이 정말 마음이 아팠던...
읽는 내내 마을에서 굽는 소금의 짠내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인간의 심리와 마을의 분위기 묘사가 너무도 섬세하게 잘 묘사되어 있는, 서정적이고도 서사적인 문체가 정말 뛰어나다. 마지막까지 탄탄한 스토리로 마무리되는, 꽤나 임팩트 강한 소설.
문득, 예전에 재밌게 읽었고 역시나 오싹했던 < 야시 > 가 떠오른다.
이 작가분은 이 책으로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의 작품이라 참 아쉽지만 더 많은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