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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평점 :

자식한테 쏟는 사랑과는 또 다른 색깔의 무한한 사랑이 손주 사랑이라고 하는데, 흔히 엄마들은 이 손주에 대한 사랑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한다. 나 또한 이런 말을 무수히 들어왔지만 도대체 자식보다 더 사랑스러운 그 감정이 어떤 것일까..궁금하기만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살 때까지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하며 까딸스럽고 낯을 많이 가리던 자신을 우직히 지켜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자신과 비슷하게 까탈스럽던 딸의 육아시절, 사춘기 시절도 함께 들려주면서 그런 상황에서 여지없이 떠오르는 할머니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사실 저자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할머니의 그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몇 십년이 흐른 후이다. 20대가 지나 자신만의 방을 고집해서 할머니로부터 독립했을 때도, 정작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대학생활이 주는 그 즐거움에 빠져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저자가 순간순간 떠올리는 할머니는 보통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머리맡에서 옛날 얘기도 들려주고, 엄마의 매질 앞에서 손주를 보호하고, 맛있는 집밥도 매일 해주시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다.
평생 하신 말씀의 80퍼센트는 그려, 안 뒤야(안돼), 뒤않어(됐어) , 몰러(몰라), 워쩌(어떡해) 의 단 열두 글자.
잘했든 못했든 " 장혀 " 라고 말씀하시고, 잘못하거나 고집을 부릴 때에도 " 원 얘두 참 별나. " "예쁜 사람 왜 그러나" 라는 말로 함축해서 말씀하셨던 분이시다.
그런 할머니의 절제된 표현이 커서 생각하니 오히려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자주 내뱉는 말 ' 저런 !! ' 이라는 단 두 단어의 표현이 아이들이 뭔가 힘들거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구구절절 말로 위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될 수 있음을, 저자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딸이 저자에게 했던 한마디 " 오오.." 가 그 어떤 장황한 위로와 관심의 말보다 훨씬 더 적은 부담을 주면서 위로가 되었던 경험을 들려준다.
예전에 < 나의 아름다운 정원 > 을 읽고 나서 느꼈던 것처럼 (하도 옛날에 읽어서 내용은 가물가물하지만) 이번 에세이 역시 참으로 푸근하고 따스하고 재밌기까지 하다. 특히나 사춘기 딸과의 에피소드와 그 순간순간 엄마가 가지게 되는 그 부글부글거리는 감정들에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 속에 이미 곁을 떠나신, 혹은 여전히 곁에 남아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소중한 시간이 될 꺼라 생각한다.
[ 사계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