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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평점 :

역사를 좋아하지만 편지글이 담긴 이야기는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 싶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오배송으로 나한테 잘못 배달되는 덕분에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관계에서부터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관계까지, 사랑, 정치, 가족, 용기 등을 담은 다양한 내용의 129통의 편지를 통해 흥미로운 세계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편지글에 앞서 이 편지를 주고받은 이들의 관계와 역사 이야기가 특히나 재미나다.
흥미로운 인물들에 대해서는 따로 검색하고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여다보느라 한 챕터씩의 마무리는 다소 더디었지만, 역시 이런 사생활, 은밀한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기 마련이다.
예카테리나 대제가 포툠킨 왕자에게,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에게, 피카소가 마리테레즈 월터에게, 나폴레옹이 조제핀에게 등등 긴 장문의 편지에서부터 몇 줄의 짧은 편지까지..담긴 내용의 성격도 제각각인데 이런 편지들이 다 역사적 인물들의 손에서 나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뭐니뭐니해도 나의 최대 관심을 끈 편지는 헨리 8세와 앤불린, 그리고 이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1세에게 보낸 편지이다. 간략소개된 이들의 스토리를 읽으며, 한 때 너무 흥미로워서 주구장창 읽어왔던 이 시기의 영국왕실 역사와 세계사에 대해 다시 책을 읽고픈 마음이 든다.
가장 끔찍한 편지는 작가 패니 버니가 여동생에게 쓴 긴 편지인데, 가슴의 혹을 제거하기 위한 수술과정을 아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녀는 마취도 없이 가슴을 절개하고 뼈까지 긁어내고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감내해야 했는데 글자 하나하나에 그 끔찍한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당시의 의료환경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수준이면 거의 전쟁 중 군인들이 받는 수술과도 맞먹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수술을 받은 후 30여년동안을 더 살았다는 사실이다.
이 편지를 쓴 당사자들은 후대에 이렇게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편지가 책으로까지 엮어져 나오리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 못했을텐데..그래서 더욱 솔직하고 스스럼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무래도 편지라는 것은 제 3자가 써내려간 평전이나 자신이 쓴 자서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사생활을 엿봤다는 사실에 사알짝 미안한 마음도 든다.
실제 편지들의 원본이 조금이라도 같이 담겼다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훨씬 더 리얼하게 다가왔을텐데 하는 작은 아쉬움도 남지만, 내용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있게 읽혔던 책이다.
[ 시공사 출판사 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