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여자가 되나니 - 아킬레우스의 노예가 된 왕비
팻 바커 지음, 고유라 옮김 / 비에이블 / 202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소개를 잘 보지 않고 단순히 아킬레우스 신화와 트로이아 전쟁 등을 배경으로 한 신화소설이라고만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책장을 넘기면서 보니 첫 시작부터 왠지 심상치가 않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담은 완벽한 남성위주의 스토리로 전개되고 오랜 세월동안 독자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간혹 신화 속 여성을 소재로 한 소설도 나오긴 했지만 이번처럼 기존과는 100% 다른 관점에서 다룬 소설은 흔치 않았던 것 같다.

트로이의 도시국가의 여왕이었던 브리세이스가 전쟁 이후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으로 전락하면서 맞게 되는 비참한 생활이 오롯이 브리세이스의 시선에서 묘사가 되는데 영국 역사소설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저자의 필체 덕분인지, 읽는 내내 마치 내가 그 전장 가운데 있는 듯한 현실감과, 노예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참으로 리얼하게 전해진다.

 

브리세이스는 자신의 눈 앞에서 오빠와 어린 막내동생이 죽임을 당하고,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강간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녀를 포함한 패전국가의 여성들이 전리품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최근에 < 관통당한 몸 > 을 읽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전시의 여성들의 피해 현장을 마주하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는데, 이 책 속의 내용도 시대와 배경만 다를 뿐 비슷하다. 여성에 대한 시각,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굉장히 낮았던 고대나 중세와 비교할 때, 현대 여성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많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의 여성의 위치는 왜 끝없이 추락해야만 하는 걸까..단지 힘없기 때문에 당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억울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주 많이 접해보지를 못해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리스의 영웅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아가멤논 등에 인물에 대해서는 영웅의 이미지가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지를 않아서, 이런 나에게 있어서 이 소설은 신화의 재해석이라기보다는 그리스 시대의 전쟁통과 그 전시 당시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로웠고 한 편의 가슴아픈 전쟁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신화에 능통한 독자들한테 이 책은 과연 어떻게 다가왔을지도 새삼 궁금하다.

 

[ 비에이블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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