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83년째 농담 중인 고가티 할머니
레베카 하디먼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유쾌한 한 편의 가족 드라마를 본 기분이다. 가끔은 이런 미국식, 영국식 개그가 낯설고 안 맞는 경우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그다지 그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꽤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가 학창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던 경험과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노인분들을 케어하고 부대껴온 경험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83세의 주인공인 밀리 고가티 할머니는 천방지축, 그 연세에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불안하다. 별의별 사고를 다 치고, 걸핏하면 옆집에 사는 아들에게 SOS를 날리곤 해서, 아들 케빈은 이런 엄마에게 대놓고 막말도 하고 귀찮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내면에 깔려 있다. 이런 까딸스럽고 제멋대로인 노모를 챙기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닐 듯. 케빈의 입장이 종종 이해가 될 정도이다.

케빈은 실직 후 아내를 대신해서 가정주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들고, 점점 자신감도 잃어가는 상황, 게다가 노모 외에도 신경쓸 사람이 있으니 바로 쌍둥이딸 중 하나인 에이딘이다. 쌍둥이 언니와 비교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그래서 사이도 안좋고, 반항기도 엄청 많아 항상케빈은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개성 강한 성격을 가진 3대가 가까이 살면서 겪게 되는 알콩달콩, 좌충우돌 이야기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고가티네나 우리네나 비슷비슷하다.

심술쟁이 고가티 할머니가 자신을 돌보기 위해 고용된 미국인 가정부 실비아에게 점차 의지하게 되는 과정, 자신을 요양원으로 보낼까봐 매사에 아들 케빈의 눈치를 살피는 장면들을 보면서 겉으로만 강한 척 하지만 실제로 마음은 너무도 외로운 80대 노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나, 화재사건 이후 몸과 마음도 폭삭 늙어버린 고가티 할머니가 케빈의 집에 들어가 살면 안되냐고 물으면서 손주들과 북적이며 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케빈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답을 하는 장면은 왜 그렇게 맘이 짠하던지...

웃기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다소 황당하기도 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반면에 왠지 모를 찡함과 처량함? 처연함?도 느껴지는 그런 소설이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고가티 할머니. 바로 우리들의 할머니, 우리들의 엄마, 그리고 미래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 미워하고 그러면서도 걱정하고 사랑하고..설명하기 힘든 애증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 가족이지만, 결국 가족은 참 소중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이 소설에서는 유쾌하면서도 명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 북로드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