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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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모녀관계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련한 그 무엇이 있다. 아직 청춘일 때는 엄마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투닥거리고,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점점 애틋하고 가슴 뭉클한 존재가 되어가는 '엄마 라는 이름. 

이 책은 그런 엄마와 딸의 관계를 회상하는 에세이이다. 그런데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엄마에 대한 저자의 회상은 따스하고, 나를 항상 이해해주는 그런 따스한 엄마의 이미지가 절대 아니다. 그 회상은 지독히도 냉철하고 비판적이고, 그리고 너무도 솔직하다. 

 

뉴욕 브롱크스 유대계 이민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의 유년기 시절,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은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배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공허한 여자들의 삶 그 자체이다. 조그마한 '주방'과 뒤뜰의 공간이 여자의 삶 전체의 공간이라 여기며 살아가면서도, 남편의 사랑을 가장 중요시여겼던 엄마는 중년의 나이에 남편을 여윈 후 점점 자신의 삶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그런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역시 남편을 여위고 혼자 살아가는 옆집 여인 '네티'는 유년기 시절의 저자에게 엄마 이상의 정신적인 지지자 역할을 한다. 

 

홀로 사는 젊은 여자의 외로움으로 인해 문란한 성생활을 가진 네티와, 반대로 금욕주의자라고 여겨질 정도로 '성'에 있어서 보수적인 엄마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다 큰 딸의 성생활까지 간섭할 정도이니..

그러나, 또 그러한 사고 방식과는 달리, 굉장히 비판적이고 냉소적이고 거침없이 쏟아붓는 엄마의 말투, 특히 딸과의 대화에서 여과없이 그대로 내뱉는 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순간순간 놀랍기만 하다. 흔히들 ''나는 절대 엄마같이 살지 않아. ''라고 말하지만 똑같은 인생의 절차를 밟듯이, 저자도 어느 순간 엄마의 모습과 성격을 자신에게서 보게 된다. 

 

저자와 엄마는 각각 중년과 노년의 나이가 되어 자주 뉴욕 거리를 거닐고, 차를 마시는 그 시간에도 애틋한 모녀의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끊임없이 서로를 할퀴고 말로 상처를 주지만, 저자가 엄마한테 말했듯이 저자는 '엄마의 인생저장소' 이다. 징글징글하고 지독한 애증의 관계이지만 결국은 모녀의 그 끈끈한 정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듯 싶다. 

현대사회에서 자식이 있어도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부모가 많은데,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엄마가 자주 만나 뉴욕거리를 산책하고,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것을 보면서 서로는 알게 모르게 많이 의지를 하면서 사는구나 싶고, 비록 따스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런 함께하는 중년과 노년의 모녀관계가 참 예뻐보이기까지 한다. 

 

유대인, 소수인, 도시 하층민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에세이를 왜 시대를 초월한 고전, 회고록 분야의 대표작, 20세기 100대 논픽션으로 선정했는지 직접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번 책이 국내에 소개되는 '비비언 고닉' 의 첫작품이라고 하는데,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 글항아리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자유로운 느낌으로 써 내려간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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