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징후를 즐겨라>의 도입부는 중국요리의 음란성에 대한 부적절한 대화로 시작한다. 지젝은 큰 접시에 요리가 나오고 이를 다시 덜어서 먹는 중국식 식사법이 영 못마땅한데, 이 때 동석한 사이비 정신분석학의 세례를 받은 작자가 지젝을 나무란다. 말인즉슨, 지젝의 무의식 속에는 이른바 난교에 대한 부정적 태도가 잠복해 있는데, 이러한 태도가 엉뚱하게도 중국요리의 식사법에 대한 불편한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젝 역시 짜증에 또 짜증이 겹쳤던 탓인지, 그 작자의 어설픈 정신분석이야말로 중국요리에 대한 스스로의 공포심을 억압하기 위해서 난교에 대한 어이없는 설명을 들먹이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경우야 어찌 되었든, 친(親)지젝주의자를 열망하는 나로서는, 지젝의 저녁식사를 망쳐놓은 그 사이비 정신분석 똘마니라는 놈이 더 없이 한심해 보이고, 지젝이 말하는 ‘중국요리에 대한 공포심’이란 또 무엇일까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러다가, 정말이지, 그러다가, 갑작스레 중국요리가 - 정말이지 - 진짜로 윤간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벼락같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는 중국요리의 식사법보다는 중국요리가 가지고 있는 그 괴상망측하고도 이상야릇한 이름들이 윤간이나 집단난교와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아닐까하고 추측해보는데..., 예를 들면 양장피, 류산슬, 깐풍기, 팔보채...,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민망하고 더러는 상당히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그 이름들, 이름들, 이름들.(하나만 이야기하자. 난 팔보채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게도 팔도과부촌의 부채마크가 생각난다. 물론 다른 생각도 난다. 팔!보×!,채×!) 하물며 난자완스라는 이름에 이르러서야!(이건 거의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사에 맞먹는 수준의 노골적인 폭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정말이지 그러다가, 이름이 이 정도라면 중국식 식사법 또한 지젝의 분노와는 달리 윤간이나 집단난교와 필연적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정당한 의심이지만 부당한 배신을 때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그 사이비 정신분석의 세례자가 중국식당이 아니라 한국의 어느 실내포장마차에서 다음과 같은 장면을 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다. 회식인지 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조개탕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물론 각접시는 없다. 그들은 각자의 숟가락 또는 젓가락으로 테이블 중앙에 놓인 조개탕을 마구 헤치고, 쑤시고, 뒤집기도 하면서 연신 조개를 입 속에 집어넣는다. 곁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들이 약간의 성적인 내용이 섞인 농담을 지젝거리면서 꼬치오뎅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지젝이 몰랐던 것은 중국식 식사법보다 한국식 식사법이 훨씬 더 공포스럽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지젝이 옳았던 것은 적어도, 최소한, 아마도 이러한 식사법들이 윤간이나 집단난교의 환상과는 아무런 - 아무래도- 관련이 없을 것 같다는 점이다. 다행히 나는 부정의 부정, - 뜻밖에도 지젝을 부정하고 그러다가 너무나 압도적인 한국적 섹스 환타지에 질겁을 해서 사이비 정신분석을 부정하고 - 을 거쳐서 지젝이 여전히 정당함을 확인한 후에 안도한다. 그러니까, 지젝은 안심해도 좋다. 중국사람들보다도 몇 배나 더 강력한 한국인들도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아무튼, 무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