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소설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딱 한 곳밖에 없었다. 이름하여 '죽음을 부르는 청색고리' 처음엔 무슨 암호의 일종인 줄 여겼는데 알고보니 맹독성 문어의 이름이란다. 왼쪽이 평상시 모습이지만 열받으면 오른쪽 모습으로 돌변하면서 독을 뿜는다/뱉는다/쏜다/문다.(???) <공포의 제국>이나 인터넷을 뒤져보면 이 놈이 문다고 되어 있는데 잘 이해가 안 간다. 문어가 어떻게 물지? 쩝.., 문어에게 물려본 적이 없어서리. 그나저나 문어가 무슨 독? 어쨌거나 마이클 크라이튼과 정보통신기술의 도움을 받아서 찾아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학명 : Hapalochlaena fasciata (Blue-Ringed Octopus)
우리말 이름 : 표범문어, 파란고리문어
맹독문어, 독은 복어독으로 잘 알려진 테트로도톡신.
후부의 타액선에서 분비하고 물리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먹물은 뿜지 않는다.
몸길이 5cm, 다리길이 10cm, 평균몸무게 30그램 미만
경계하면 몸 색깔이 짙어지면서 청색 고리의 무늬가 나타난다. 
호주 남부의 수심 50미터에서 발견됨. 일본 난세이 제도등에 서식
청색고리의 직경은 2mm 정도
마리당 50개 이상의 청색고리 무늬가 나타남.

   이 소설을 논하려면 아무래도 ' 이 세상의 실제상황을 직시하다'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비외른 롬보그의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위기는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며 또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수치의 대부분은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엄청난 분량의 통계표가 부록인지 본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려있는 책. 정가가 5만원에 알라딘의 할인율조차 5%밖에 적용되지 않는 강력한 포스를 지닌 책이다. 마이클 크라이튼이 <공포의 제국>을 쓰기 위해서 3년간의 자료수집과 공부를 했다고 하니 최소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다양한 수치는 물론 속칭 회의적 환경주의자 그룹의 논리에 대해서도 정통했을 것임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는 대실망. 마이클 크라이튼의 신념의 옳고 그름이나 회의적 환경주의자 그룹의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서 문학적 형상화의 수준에서 완전히 빵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기회만 주어지면 잽싸게 환경주의자에서 회의적 환경주의자로 준비된 전향을 시도하는 등장인물들도 그렇고,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논리면 논리, 액션이면 액션 못하는 게 없는 최첨단 반환경 전투요원인 케인인가 뭔가 하는 작자의 요상스런 포스도 그렇고, 환경운동가들은 오로지 야욕과 출세를 위해서만 똘똘 뭉친 테러리스트이거나 혹은 배부른 한량들에 다름아니라는 어처구니 없는 적대적 이분법이 그렇고, 환경운동가의 편에서 일하던 제니퍼가 알고보니 <산신령 + 스티븐 시걸>의 합체모드인 케인의 조카였더라는 그 당혹스러운 설정이 또한 그렇고, 이건 뭐 모두가 그렇고 투성이일 뿐이다. 게다가 정말로 사람의 살코기를 좋아해서 사람을 먹는다는 식의 논리전개마저도 부족하던지, 굳이 한량 환경운동가의 몸뚱이를 야만족의 식탁에 올려놓고야마는 크라이튼의 무뇌아적 오리엔탈리즘에 이르러서야.., 쩌~억, 그리고 어안이 벙벙, 정말 나가도 너무 많이 나간다.         

결국, 이 책의 미덕은 최소한의 균형감각이 얼마나 소중한 미덕인가를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이 책은 신념이 강할 땐, 글을 쓰지 말라는 문학창작론의 또 하나의 반면교사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점수를 잘 줘봐야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의 의식화 교재로나 적당할 것 같은 이 책, 그나마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바닷속 깊은 곳에 살고 있다는 맹독문어에 대한 관심이라도 환기시켜서 그들이 멸종의 위험 없이 순탄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 ps : 거머리에 대한 추억

-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지구온난화가 사실은 조작된 공포이고 또 지구온난화라고 하더라도 이산화탄소의 영향은 지극히 미미할 뿐이며 빙하가 녹는 것은 일부의 국지적 현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해수면 또한 상승하지 않았다/않는다/않을 것이다라는 논리에 대해서 뭐라고 자신있게 반론을 펴기는 힘들다.

- 그렇지만 위와 같은 논리를 빌어서 사실상 환경위기 전체가 다 그릇된 말이고 멸종은 생태계라는 시스템의 특성상 언제나 발생하는 일이며 제3세계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한 부당한 간섭/옹호를 완화/중지하자는 논법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하기 어렵다.

- 어릴 적 거머리에게 많이 물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거머리라는 존재 자체를 혐오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제 거머리는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거머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것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거머리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 또한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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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뮈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읽은 책. 어쨌거나 기욤과는 첫만남인데.., 음..., 느낌상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다.(기욤 패트리의 숨막히고도 놀라웠던 플레이가 그립다.)

- 저승사자 그레이스 코스텔로가 처음 나타났을 때는 대략 황당, 그나마 이 여자가 별다른 신통력을 부리지 않아서 점점 적응해나가던 도중이었는데, 병원에 찾아와서 몇 바늘 꿰맬 때만 해도 제법 괜찮다 싶었더랬는데.., 벌집처럼 연발총을 맞고서 죽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으로 찾아오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저 어안이 벙벙, 그럴려면 뭣땀시 상처는 꿰맸나?  

- 삶의 표면을 겉돌기만 하는 문장들(그렇다고 표면을 탐색하자는 문장도 아니고) 단 한 줄도 건질 것이 없다!

-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적 감각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줬던 것처럼 <구해줘>가 이른바 영상적 감각의 글쓰기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만큼은 수확임. 특히 줄리엣과 샘이 메리어트 호텔에서 나누는 대화시퀀스는 재치있고도 기억할만함!(공중그네의 만화적 글쓰기와도 비교됨) 

- 줄리엣이 테러범으로 오해받는 장면이 왜 필요한 것인지?(작가가 미국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한 알리바이 확보용?) '디 노비'라는 이상한 이름의 악역 예정 수사관은 왜 똥폼만 잡고 소리만 치다가 끝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 모르다가도 모를 노릇

- 제목인 구해줘가 나오는 장면이 너무 없어보임. 일부러 그 장면을 잔뜩 과대포장을 해대니까 오히려 <구해줘>라는 말(혹은 시선)이 주는 절실한 느낌이 사라짐. '조디'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절실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과장된 설정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임(선정주의). 그런게 아니라 무언가 나즈막하고도 어렴풋한 호소가 담겨 있는 구해줘.., 

- 형편없는 복선과 반전....., 어색하기만 함. 게다가 언제나 날라리 장식품으로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 전형적인 너무나 전형적인 인물들, 착한 넘은 더욱 착하게, 나쁜 넘은 더욱 나쁘게(근데 나쁜 넘들은 마약장수들 빼고는 별로 없다.) 저승사자까지 포함해서 판박이 인물들이 뻔하게 움직이는 재미없는 인형극

- 뉴욕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묘사, 아무런 애정도 없으면서 애정 만땅인 척 사기치기, 여행가이드에 나올법한 닳고 닳은 문장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 <사랑과 영혼>의 얼렁뚱땅 합체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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