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하신 하나님과 역사 속의 인간, 책임적 자아
: 리처드 니버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 본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지배적이던 20세기 중반 죄의 교리를 재해석하며 인간 본성의 역설과 모순을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인간의 노력으로 죄악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역사 속에서는 선을 추구하려면 권력과 폭력이 필요하다는 그리스도교 현실주의를 제시했다.

그리스도교적 죄론의 의미를 *현실 정치의 맥락에까지 확장하여 해석함으로써, 그의 신학은 세계대전을 거쳐 동서 냉전 시디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끌어냈다. - P367

죄악된 인간이란 개념은 *나의 세대에게는 *불편한 것이었다. 우리는 인간의 순수성, 심지어 인간의 *완전성을 믿도록 교육받았다.

이것은 자유주의적 환상이기도 했지만, 모든 미국인이 가진 유전자가 표출된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니버는 원죄 개념은 나의 세대가 겪고 있던 여러 문제를 해결했다.

인간의 완벽함에 대한 신념은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맞서게 우리를 준비시키지 않았다. 인간 본성과 역사에 관한 니버의 분석은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다가왔다. - P3657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다섯 유형으로 나눈 <그리스도와 문화> Christ and culture 1951

다섯유형은 다음과 같다.
1)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
2) 문화의 그리스도
3) 문화 위의 그리스도
4) 문화와 역설적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
5)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

많은 이가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가 니버의 입장이자 문화신학이 지향할 바라고 해석했다. 그 결과 문화 신학과 문화선교 영역에 *변혁주의 모델이 힘을 더 얻게 되었다. - P371

그리스도와 문화 도입부에서 그는 트뢸치가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언급한다.

트뢸치가 내게 가르쳐 준 바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과 운동의 *다양한 형태와 *개별성을 존중하라는 것,
그런 다양성을 *미리 짠 *관념의 틀에 맞추면 안 된다는 것,

그럼에도 신화 속에서 로고스를,
역사 속에서 이성을,
실존 속에서 본질을 각각 구하라는 것 등이다.

그는 또한 역사적 객체들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역사적 주체(관찰자이자 해석자인 존재)의 상대성을 수용하라고 가르쳐 주었고, 또 그로 인해 유익을 얻게 해주었다. - P373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현존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실재를 *인간의 이성, 감정, 문화 역사와 동화시키는 경향을 보였다. - P373

급진적 유일신론 radical monotheism

니버는 신앙 faith을 종교 religion와 구분한다. 신앙은 종교보다 더 포괄적 개념으로 인간이 *절대적인 것에 대해 가지는 모호한 느낌을 표현하고 구조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대상에 대한 *경건한 태도만이 아니라,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 시스템 대한 *헌신도 신앙이 될 수 있다.

그 결과 *신god이라는 단어도 단지 신화나 종교 경전에 나오는 초자연적 존재만이 아니라 일상 속 여러 "*가치의 핵심과 *헌신의 대상"까지로 의미가 *확대된다.


니버에 따르면, *대다수 사람은 (자신들의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서 신 이외에도) 혼란한 세상 가운데 삶을 *풍요롭고 안정시켜 줄 여러 *유한한 대상에 *의존하고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다신론적 polytheistic 혹은 택일신론적인 henotheistic 신앙을 갖는다.


김진혁, <신학의 영토들>, 374
; 리처드 니버, radical monotheism and western culture, 23쪽 - P374

니버가 보기에 인간은 *정치, 경제, 군사력, 이념 등 시간적인 범주에 속하는 것을 *영원한 것인 양 절대화하는 왜곡된 신앙과 함께 살아간다.

이와 같은 *악한 상상력 때문에 인간은 *실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배타적 부족주의나 *자아에 대한 파괴적 망상에 빠진다.

*유한한 것에 *궁극적 가치를 부여하는 *다신론적 혹은 택일신로적 신앙은 서로 부딪치고 갈등을 일으킨다.

하지만, 유일신 신앙은 모든 것의 존재와 가치의 *유일한 *근원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고, 그로부터 생겨난 *확신으로 *혼란한 세계 속에서 *살아가라고 가르친다.

유한한 것들에 대한 *우상숭배적 충성심과 *세상에 대한 망상에서 비롯한 그릇된 확신이 인류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면, 급진적 유일신론은 이들을 *상대화함으로써 진정 평화롭고 정의로우며 풍요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 P375

특별히, 신구약 성서는 하나님을 *추상적인 일자로 정의하지 않고, *세상과 그 속의 모든 것을 *선하게 만들고, 회복하고, 구원하는 분으로 이해한다.

택일신론 혹은 다신론적 신앙과 달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존재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라는 *도덕적 결론을 가진다."

따라서 유일신 신앙에 충실한 이는 *역사를 *사랑이라는 *신적 목적에 따라 해석하며, *세계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과 사건들이 주는 의미를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실재에 *충실할 수가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니버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현대적 의미를 해석하고, 이로부터 서구 문명을 비판하는 사례를 선구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제 그는 급진적 유일신론이 일상에서 내리는 판단과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초점을 맞춘다. <책임적 자아>는 바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다. - P375

니버가 사용한 responsible을 *책임적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다. 우리말에서 책임은 의무와 쌍을 지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니버의 분석에 따르면 *의무는 인간을 행위자로 보는 윤리 모델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니버는 responsible이라는단어를 ‘상황에 적합하게 fitting 행위하는’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이를 ‘책임적’보다 더 적적ㄹ히 표현할 우리말로는 ‘응답적’ 혹은 ‘응답하는’ 등이 있다. - P378

니버는 인간의 *도덕적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대표적 상징 *세 가지를 제시하고, 이 상징들을 중심으로 논의의 전체 구조를 형성한다.

첫째 상징은 *만드는 사람 maker이다. 이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자기를 만들어 가는 존재다. 이는 철학적 윤리학의 중요 모델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자신을 예술품이나 제작품처럼 대상화하는 약점이 있다.


둘째 상징은 ‘*행위자 agent’다. 인간을 *법에 따라 살아가는 ’시민‘으로 보는 관점은 인간을 행위자로 보는 대표적인 예다.

물론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도 시민 개념이 발전했지만, 근대에 이르러 법치국가가 확대되고 모든 개인을 시민으로 보면서 이러한 모델은 더 보편화화고 힘을 발휘했다.

시민으로서 행위자라는 상징은 인간관계를 도시의 통치자와 시민으로 정츼하고는 그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행동할지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법을 만들고 지킨다는 단순한 틀로 복잡다다단한 인간 현상을 해석하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 P378

니버가 제시하고자 하는 윤리학 모델은 *책임’이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구축된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구체적 시공간 속에서 여러 사람, 요인들과 계속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이에 *응답하며 살아간다.

*자유로운 존재인 만큼 인간은 무의식적이거나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상황에 *적절히 *응답 responsible할 능력 ability을 발휘하면서 윤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기에 *책임 responsibility은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도덕적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핵심어다.

*책임은 *주체와 *타자 사이의 *‘만남과 *응답’이라는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만큼, 저자는 자신의 제안이 당시 학계에 통용되던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역사학적 인간 이해와 궤를 같이한다. - P378

도덕철학의 중심 상징이 책임으로 이동하면서 윤리학의 근본 질문도 함께 바뀐다.

인간을 *만드는 사람으로 볼 때는 자아가 목표로 삼을 ’*선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목적론적 윤리’가 발전한다.

인간을 *행위자로 가눚할 때는 삶의 법칙으로 삼을 *옳은 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의무론적 윤리가 부상한다.

하지만 책임적 자아는 이와는 근원적으로 다른 질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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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과 정직함

솔직한 사람은 사랑한다는 말과 미워한다는 말을 번복과 반복으로 발설한다. 반면, 정직한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을 정리하여, 사랑하지만 미워한다거나, 밉기도 하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줄안다.

자기감정에만 충실할 때에는, 좋을 때에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싫을 때에 미워한다고 말해버리지만,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을 때에는, 사랑하되 미워한다거나 밉지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즉, 솔직함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함은 남을 배려하려는 것이다.

솔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 헤친다. 이율배반적인 것들과 대책 없는 것들과 막무가내인 것들까지 그냥 다 뱉어낸다. 솔직함은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다.

반면, 정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 헤치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것들 중에서 일관성을 찾아 정리하고, 대책 없는 것들의 대책을 궁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직함은 한층 더 정리되어 있으나 고집스럽고 편집적이다.

정직함은 가리는 것이 있다. 의도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주겠다는 신념 아래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정직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정직함이지만, 진실로 더 믿게 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또한 솔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편하고 대하는 사람은 불편할 때가 많다. 정직한 행동은, 하는 사람은 조금 불편해도 대하는 사람은 편하다. 나를 편하게 하려는 것이냐 남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냐에 따라 솔직함과 정직함은 쓰임새를 달리 한다. 그래서 솔직함은 탈제도적이지만, 정직함은 제도 안에 들어와 있게 된다. 그래서 ‘솔직한 공무원‘ 이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정직한 공무원‘ 이라는것은 의미 있게 쓰인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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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믿음에서 칭의에서, 강조점이 변화한 만큼 틸리히의 신앙 개념은 *의심에서 칭의로 특징지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 P362

성서 종교에서 *존재론적 물음과 공명을 일으키는 *측면을 강조하다 보니, 그리스도교가 가진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의 *방법론은 유연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의 *형식을 우선시하면 *내용의 왜곡 혹은 *협소화가 일어난다는 바르트의 비판에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또한 틸리히가 존재론적 관점에서 신학과 철학의 구조적 동일성을 분석했지만, 사실 철학에는 존재론 외에도 다양한 영역이 있고, 전문 철학자들은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에 대한 담론을 발전시켰다. - P354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다양할지라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은 그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탈종교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관심을 궁극적 실재에 이끌리게 함으로써 신앙의 매력과 필요성을 재발견한 틸리히의 변증 작업과 방법은 여전히 중요하다.

"신앙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에 대한 의심 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서 종교는 존재론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긍정합니다.

이러한 긴장 가운데 고요하게, 동시에 용기 있게 사는 것, 그리하여 끝내 자기 영혼 깊은 곳에서, 신성한 삶 깊은 곳에서 성서 종교와 존재론의 궁극적 일치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인간 사유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 사유의 위엄입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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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어선 경계선 위에서의 사유
: 폴 틸리히


급속도로 세속화되던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는 틸리히를 ‘지성인의 사도’ apostle to the intellectuals 혹은 ‘회의주의자의 사도’ apostle to the skeptics라고 불렀다.

그만큼 신학의 영역을 넘어 철학, 심리학, 문화, 예술 정치 등 다방면에 영향을 끼친 인물, 대중적 인기를 누린 인물은 없다. - P349

근대 세계의 도래 이후 인류 삶에서 많은 것이 달라졌고 지금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그리스도교 사회라고 불렸던 유럽과 미국에서는
*제도 종교에 대한 무관심,
*권위에 대한 저항,
*전통에 대한 환멸이 퍼지며 교회의 영향력응 대폭 줄어들었다.

신학은 *현실을 *해석하는 *보편적 모델로 더는 인정받지 못했다.

신학자가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 시대의 지성과 양심으로 활동하는 건 매우 드물고, 또 힘든 일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후기 그리스도교 사회로 진입하여 사람들이 기성 종교에 관심을 잃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현대 그리스도인이 *동시대인이 체감하는 *문제를 *신학적 담론으로 끌어올 만한 *언어와 방법론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 P350

하버드 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당시 그는 인기인이 되었던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건 진짜 ‘나’가 아닙니다. 나는 두 명의 사람입니다. 그 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사유를 하려면 새로운 가능성을 기거이 수용해야만 하기에, 경계선 위에 설 때 사고하기가 유리합니다. 그러나 경계선 위에 서는 일은 실제로 고달프고 위험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끝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고 다른 선택 가능성을 배제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운명과 제 일은 경계선 위에 서려는 성향과 이 성향의 긴장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 P352

경계선상에서의 실존을 반영하듯, 틸리히의 사상에는 언제나

*이성과 계시,
*존재와 비존재,
*영원과 시간,
*무한자와 유한자,
*믿음과 탐구,
*아가페와 에로스의 양극성이 발견된다.

그는 대조적 개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읅 최대한 생동감 있게 유지할 수 있는 사상의 틀을 만들고자 했고,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 가능성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던 현대인들은 틸리히 사상에 힘입어 *허무와 *무의미의 굴레를 벗어나는 *존재의 용기를 배웠다. - P354

인간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서 있습니다. 자신의 유한함을, 그리러면서도 무한에 속해 있음을 인간은 깨닫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존재 물음을 던집니다. 인간은 존재에 관해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존이 이 물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신앙 역시 *무한한 관심입니다…. *궁극적 실재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과 *신앙의 상태에 있는 인간, 이 두 인간은 그들의 관심이 무조건적이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 P358

- 궁극적인 관심에 사로잡힌다는 것

틸리히가 찾은 *성서 종교와 *존재론이 *만나는 지점은 인간의 **실존이다. 달리 말하면, "성서 종교의 주관적 측면을 분석해 이를 존재론 작업의 주관적 측면을 연결"하면 양자가 긍정적으로 관계 맺는 지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성서 종교의 핵심인 ‘*인격적 신에 대한 믿음’을 *존재론적 시각과 언어로 재해석하려 한다.

우선 틸리히는 하나님을 모든*유한자가 존재하는 *힘이 되는 *‘존재 그 자체’로 이해한다. 이러한 철학적 언어가 성서의 *인격주의를 훼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리스도교 전통의 위대한 신학자들은 인격적인 신에 관해 이야기하며 알게 모르게 신을 인격성을 넘어서는 존재의 근거로도 이해했다.


예를 들면, "철학을 매우 못 미더워했던 루터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보다 더 그들에게 가까운 분이라고 말했을 때, 또는 하나님은 모래 알갱이에도 온전히 현존하시지만,

만물 전체로도 담을 수 없는 분이라고 말했을 때… 루터는 성서의 인격주의를 초월하며 만물 안에 있는 존재의 힘인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긍정한 셈이다.

따라서, 존재의 근거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에는 인격적 요소와 비인격적 요소가 긴장 속에서 공존한다. - P360

틸리히는 대립하는 두 이론 혹은 주장을 마주했을 때 둘을 섣불리 조화시키거나, 옳은 하나를 선택하고자 다른 하나를 버리는 피상적 방식을 경계했다.

대신 그는 둘 사이의 관계를 긴장 속에서 종합하거나, 각각의 긍정과 부정을 함께 잡아내는 변증법적 방법에 크게 의지했다.

우리의 사고가 자율적인 것인한, 위대한 역사적 인문들과의 고나계는 *긍정인 동시에 *부정이어야 한다. *변증법적이지 못한 *부정은 *법증법적이지 못한 *긍정처럼 원시적이고 *비생산적이다. - P359

현상적으로 *순종을 덕목으로 삼는 신앙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철학적 사유가 쉽게 조화되기 힘들다.

신앙과 존재론적 탐구 모두 *무조건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동일성을 가진다.

틸리히는 *신앙의 본질을 인간의 존재론적 물음에 내포된 *불확실성과 *회의를 용납하는 *용기로 파악하는데, 이는 인간의 무능과 불신마저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는 *루터의 *칭의 개념을 급진화한 것이다.

"신앙은 신앙 자체외 신앙 안에 있는 의심, 이 둘 사이에서 계속 일어나는 긴장입니다. 신앙은 무조건적인 것에 대한 깨달음과 불확실성이라는 위험을 감내하는 용기를 모두 아우릅니다. 신앙은 ‘부정’의 불안에도 불고하고 ‘긍정’을 말합니다. - P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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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신학이라는 여행의 이유
: 로저 올슨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 여행에서 반복되는 문제는 "여행에 대한 *기대와 그 *현실 사이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미끼용으로 여행 이미지가 남용되는 만큼, *책을 펼 때의 기대와 책을 읽으며 느끼는 *현실 사이의 *괴를 느끼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 P257

각 시대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이해를 묘사할 때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이중적 진리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창조적 긴장과 균형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던 것이다.


두 가지 진리 모두를 균형 있게 수용해야 *신학과 *이성 혹은 문화의 관계가 적절히 수립된다.

즉,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화적 상황과는 관련성을 잃게 되고, 반면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떤 특정 문화에만 얽매이는 신학이 되고 말 것이다.

현대성에 대한 반발로서 21세기 포스트모던 신학을 소개할 때 그는 교회의 특수성과 구체성에 집중한 스탠리 하우어워스와 교회 *전통마저 현대성과 함께 *해체하려던 *존 카푸토를 연달아 배치한다.

또한 신학에서 *아름다움의 범주를 재발견했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나, 복음주의의 탈보수주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그렌츠를 새로 포함한 것은 보수적 성향의 신학에서도 현대성에 반응하는 유의미한 시도를 발굴하고 그 업적을 보다 큰 신학사적 맥락 속에서 공정히 평가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 P267

또한 *영성과* 전례와 신학의 재통합을 시도하거나 *고대와 *중세의 신학적 *존재론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현대성에 맞대응하는 신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 중인데,
오히려 해체에 집중했던 철학자 카푸토로 현대 신학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이유도 의문이 간다. - P267

작가 김영하가 표현했듯,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편안한 믿음 속에서 안온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난 이상, 여행자는 눈앞에 나타나는 *현실에 맞춰 *믿음을 *바꿔가게 된다"

신학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년 전 신학자들이 쌓아 올린 견고한 교의학의 성곽 안에 머물며 현대성의 공격을 방어하고, 군데군데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것을 신학의 사명으로 삼을 수도 있다.

반면, 대항해의 시대가 도래하자 미지의 세계로 나갔던 근대인들처럼, 신학도 현대성이 던진 도전에 응답하고자 익숙하고 평온한 세계를 뒤로하고 모험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신학을 하는 방법을 여럿이지만,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멋진 말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근원으로 돌아가자’ *ad fontes 라는 구호만이 아니라 여행의 *모험을 받아들일 *용기와 개방성도 필요하다. 이러한 소중한 지혜를 배우는 것이 올슨과 함께 걷는 여행의 이유가 아닐까. - P270

/ 세계관으로서 그리스도교
: 헤르만 바빙크

바빙크는 한국의 장로교 혹은 개혁파 배경의 신학교와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자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 신학계에서 압도적 위상을 가졌던 루이스 벌코프의 조직신학은 독창적 작품이라기보다는 바빙크의 교의학을 신학 입문자들 수준에 맞게 내용을 정리한 교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의 목소리가 더욱 호소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하곤 한다.

첫째, 바핑크는 현대적 삶을 배척하지 않으며 오히려 포용할 수 있는 개신교 정통신학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주의할 점은 바빙크가 현대적 삶을 강조한다고 하여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신념에 기초한 근대성 자체를 긍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바핑크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단순히 대립 관계로 보지 않으면서도 둘을 동일한 차원에 놓거나 상관시키려고 하지 않는, 둘의 적절한 관계 구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셋째, 바핑크는 어떻게 *주체가 *외부 세계에 대한 *객관적 지식에 이를 수 있느냐는, 근대를 거치며 더욱 중요해진 인식론 물음에 답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바빙크가 살았던 근대 유럽 사회에서는 과학이 세계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고, 신앙은 순전히 개인의 주관적 문제를 다루는 인식 작용처럼 축소되어 이해되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의 심각성을 바빙크는 과장하거나 단순화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신학적 응답을 내어놓기 위해 분투했고, 인식론적 확실성의 문제와 연관해 계시와 세계관 개념 등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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