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들이 보기에 **섹슈얼리티는 결코 별개의 영토를 갖고 있는 미개척지가 아니다. 성은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어 온 인간관계와 사회적 제도의 장(場) 속에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으로부터 섹슈얼리티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성에 대한 관심이 소중한 까닭은 성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의 인간관계 속에 스스로를 위치짓는 중요한 **기준점이며,
그것을 통해 **삶의 모든 면을 다시 성찰하는 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립되고 신비화된 성의 세계에 함몰되어서는 안되며, 연애·사랑·결혼·가족·외로움 · 증오 · 수치심등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잡은 제도들과 인간적인 감정들이 뒤얽혀 있는 관계망으로서 섹슈얼리티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아가 우리가 (사회)구조‘ 라고 불러온 것들, 즉 생산과 소비와 지배가 조직되는 (공적)영역의 변화 속에 그러한 관계망을 정당하게 위치지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있는 억압의 기제와 해방의 잠재성들을 새롭게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13쪽.



기든스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내부-준거적 체계(internally referent system)라는 점에서 전통사회와 구분된다.

이전에는 관습이나 전통, 아니면 자연의 명령을 따라서 이루어졌던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들이 점차 사회 체계의 내적 논리 속으로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재생산(자녀의 임신과출산)이 자연의 섭리이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던 현대 이전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 역시 자연으로부터 이미 결정되어 주어지는것이었으나, **재생산 없는 섹슈얼리티(피임)와 **섹슈얼리티 없는 재생산(시험관 아기 등의 테크놀러지)이 모두 가능해진 현대 사회에서는 성이 더 이상 단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 

**‘조형적 섹슈얼리티 (plastic sexuality)‘는 기든스가 이러한 상황을 조명하기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한편 인간관계 역시 더이상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유지되지않고, 각각의 개인이 그 관계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계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그 형태와 존속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한번 결혼했으면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평생 함께 살아야 한다는 식의 전통적 결혼관계가 관계 ‘외적 인 관습과 전통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을 통해 줄기차게 배우자의 사랑을 확인하려 하고 사랑이 없다면 결혼관계를 미련없이 깨어버린다거나 혹은 사랑하면 되었지 결혼이라는 형식이 왜 필요하냐는 식의 **인간 관계는 그 관계에
**‘내적인‘ 속성에 대한 당사자들의 판단에 따라 지속 여부가 좌우되는 것이다. 

혈연에 의해 의무처럼 부과되던 *친족관계가 점차 엷어지고 **친밀성과 애정에 기초한 관계가 보다 중시되는 것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기든스는 이치럼 관계 외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 그 자체의 내재적 속성에 따라 유지 · 변화되는 관계를 순수한 관계 (pure relationship)‘ 라고 이름붙이고 있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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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텍스트


<작품에서 텍스트로>는 텍스트론의 이론적 바탕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글이다. 구조주의적 관점에서의 <작품〉(oeuvre) 이 단일하고도 안정된의미를 드러내는 기호체계라면, 이런 고정된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무한한 시니피앙들의 짜임이 곧 텍스트(texte)이다. 

작품은 항상 상징적인것/비상징적인 것, 정신/물질 등의 이분법적인 구조로서, 지금까지 해석비평이 추구해 온 것이 항상 그 마지막 시니피에, 총체적이고도 단일한 의미의 발견과 재구성에 있다면, 그것은 의사소통이 지니는 결정적이고도 고정적이며 목적론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런 선조적인 로고스 중심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라는 개념으로는 의미의 흔들림과 의미를 이루고 있는 그 다양한 층과 이탈을 포착하지 못하며, 그리하여 바르트는 크리스테바 작업의 도움을 받아 텍스트라는 개념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8쪽

1. 텍스트 (2)

텍스트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시니피앙의 다각적이고도 물질적, 감각적인 성격에 의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언어학이 언표·의사소통 · 재현의 산물이라면(크리스테바의 요어로는 현상 텍스트),
 텍스트는 언술행위 · 상징화 · 생산성 (크리스테바의 용어로는 발생 텍스트)의 영역이다. 

바르트가 <이야기의 구조적 분석입문>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런 현상 텍스트라면, 《S/Z)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의미작용의 생성과정인 발생 텍스트이다. 따라서 작품과 텍스트, 현상 텍스트와 발생 텍스트의 구별은 시간적 상황이나 작품의 현대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어를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체험되는가 아니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은 소비의 대상이나, 텍스트는 작품을 소비에서 구해 내어 우희·작업·생산·실천으로 수용하게 한다. 

이와 같은 텍스트와 작품의 구별은 테리 이글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로의 움직임은 부분적으로는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움직임이다」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텍스트론에서의 저자의 위치는 어떤 것일까?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은, 텍스트 안에서 저자의 자리를 배제하고 독자의 탄생을 예고하는 선지자적인 글이다. 

이 글은 푸코의 <저자란 무엇인가>(1969) 와자주 비교 연구되는 글로서, 푸코가 저자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바르트는 텍스트에서의 저자의 배제와 독자의 탄생을 다루고 있는 점이 다르다.

 바르트는 우선 저자가 현대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란 중세 이후에 종교개혁의 개인적 신앙, 합리주의 · 실증주의와 더불어 생겨난 자본주의의 소산물이다.

9쪽

1. 텍스트 (3)


그러나 말라르메와 더불어 이런 저자의 제국은 흔들리기 시작하며, 글쓰기를 위해 저자를 제거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 발레리 · 프루스트 · 초현실주의 등은 저자의 이미지를 탈신성화하는 데 공헌한다.

 언어학 역시 언술 행위가 하나의 텅 빈 과정이라는 것을, 대화자들이라는 인간이 없이도 완벽하게 기능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여기다 바흐친의 **상호 텍스트 개념은 우리에게 저자가 더 이상 글쓰기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글쓰기기에는 기원이 부재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따라서 저자라는 개념은 이제 설 자리가 없으며, 다만 여러 다양한 문화에서 온 글쓰기들을 배합하 며 조립하는 조작자, 또는 남의 글을 인용하고 베끼는 필사자(scripteur)가 존재할 뿐이다.

 『저자를 계승한 필사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마음속에 정념이나 기분·감정·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하나의 거대한 사전을 가지고 있어, 거기서부터 결코 멈출 줄 모르는 글쓰기를 길어올린다. **삶은 책을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책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뿐이다.』(저자의 죽음, 본서 33쪽) 

그러므로 텍스트를 해독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의미를 제시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의미를 비우기 위해서이다. 이제 이런 저자의 배제는 독자의 탄생을 불러들인다. 

그런데 이 독자는 심리나 역사가 부재하는, 다만 글쓰기를 이루는 모든 흔적들을 모으는 누군가일뿐이다. 글을 쓰는 <나>가 종이 위에 씌어진 (나)에 불과하듯, 독자도 글을 읽는 어떤 사람에 불과하다. 독자는 그의 일시적인 충동이나 기벽·욕망에 따라 텍스트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해체하는 자이다.(저자의 죽음,
본서 33쪽) 

이렇게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을 선언하고 난 바르트는 저자와 독자, 글쓰기와 글읽기, 창작과 비평, 실천과 이론 등 그 이분법적인 경계를 파기하고, 즐거움의 대상으로서의 텍스트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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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개혁은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검찰 개혁이란 무엇인가? 

검찰 개혁 내용을 기능의 측면에서 
① 검찰의 구성 및 조직 
② 권한 
③ 활동방식의 개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구성 및 조직과 관련된 것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중립성, 법무부의 문민화, 검사의 임명과 인사 제도, 검사동일체 원칙 등이고, 

‘권한‘과 관련된 것은 수사권 · 기소권의 통제, 분산, 감시, 중수부(특수부) 폐지, 특별검사제도, 공수처, 재정신청제도, 검찰심사회 제도나 대배심 제도의 도입 등이다.

‘활동방식‘과 관련된 것은 피의사실 공표, 강제수사의 과잉, 자백의존 수사 등의 수사 관행, 피의자 권리보호 등이다.

59쪽.

<검찰 개혁은 왜 필요한가 (2)>


또는 검찰 개혁 내용을 구조(접근방향)의 측면에서는 
① 검찰 외부와 검찰 간의 관계 
② 검찰 내부의 민주화 
③ 검찰 외부로부터의 권한의 통제, 분산, 감시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여기서 ‘검찰 외부와 검찰 간의 관계‘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 법무부와 검찰의 이원화,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법무부의 중요 보직을 검사가 맡지 못하게 하는 법무부의 문민화 등과 관련된 것이다.

 ‘검찰 내부의 민주화‘는 검사동일체 원칙, 신분보장, 인사 제도 등과 관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찰 외부로부터의 권한의 통제, 분산, 감시‘ 중 ‘공소권에 대한 통제‘는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보유하되 시민 대표가 그에 대하여 사후적으로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제도인 대배심 제도,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하여 고소인 등이 법원에 판단을 구하여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인 재정신청제도 등과 관련된 것이다.

‘공소권의 분산‘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검·경수사권 조정), 기소권의 기능적 분리(특별검사제도, 공수처 등) 기소권의 지역적 분리(중앙검찰과 지방검찰의 분리, 지방 검사장 직선제) 등과 관련된 것이다. ‘감시‘는 주로 감찰제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위와 같은 검찰 개혁의 여러 내용은 상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61쪽.

<현재 검찰 개혁의 쟁점은 무엇인가>


현재 법무부 주도로 검찰 개혁방안이 제시되고 있고,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그런데 법무부가 2019년 10월 8일 발표한 특수부 등 직접수사 부서 축소, 파견검사 최소화, 공개소환 금지, 장기간조사·심야조사 금지, 부당한 별건수사 금지,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감찰권 및 행정사무 감사 강화 실질화 등과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같은 달 18일 권고한 법무부의 완전한 탈검찰화 등은 금지되는 행위상당 부분이 정치인, 재벌 등 거대권력 수사, 기소에 대한 감시수단이었다는 점과 검찰 독립성 보장이라는 점에서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대체로 적절한 방향이며, 그 이행이 문제되지 않을 것들이다.

또한 검경수사권 조정법안도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 직접수사 대상 범죄를 광범위하게 인정해 수사권 · 기소권 분리가 근본적이지 않다는 점과 검경수사권 조정 및 국가정보원 수사/정보 기능 축소로 권한이 커질 경찰에 대한 통제수단이 보완되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쟁점이 없기 때문이다.

62쪽.

하지만 공수처 설치법안은 백혜련안과 권은희안 두 가지가 발의 되어 있고, 심지어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사실상 공수처장 등 임명권을 가짐으로써 공수처의 독립성 중립성이 훼손될 가능선이 있고, 검찰보다 권한이 센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사정기구가 과잉되며, 수사권 기소권 분리와도 모순된다는 등의 이유로 크게 반대하고 있다.

그와 같은 반대 이유가 그 의도를 떠나 아주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검찰 개혁과 관련해 현재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공수처 설치 여부와 그 구체적 내용이다.

여기에 더하여, 주목받고 있지는 않지만,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올바른 관계 설정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다. 검찰 개혁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개혁은 정치권력이 검찰권력을 사유화하고 그 결과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이 유착하거나 검찰권력이 종속화됨으로써 실패해왔기 때문이다.

62쪽.

<검찰 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제 위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검찰 개혁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펴보자. 먼저 공수처 설치법안상으로는 공수처장 임기 후 주요 공직 임용이 상당 기간 제한되어 공수처의 독립성 중립성 훼손 위험성을 줄이고 있다. 공수처 수사와 중복되는 검찰 등의 범죄 수사는 공수처로 이첩되므로 수사가 중복되지 않고, 공수처 수사대상이 대통령, 정치인, 고위공무원, 판사, 검사, 고위급 경찰 등 거대 권력의 불법, 비리, 부패라는 점에서 ‘옥상옥‘을 만든다거나 사정기구가 과잉된다는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국회의원등 선출직에 대해서는 기소권이 없고, 공수처가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은 판사, 검찰, 경찰 등에 제한된다는 측면에서 수사권 기소권 분리에 크게 반하지도 않는다.

특히 공수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가 전 현직 검사의 비리, 뇌물 수수, 스폰서 파문, 성추문 등에 대한 면죄부 수사 때문이라는 점에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공수처 설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공수처 설치법안에 우려되는 부분은 국회 논의과정에서 보완하되, 현재는 검찰 개혁을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이다. 우려되는 공수처의 독립성 주립성 보장 문제, 공수처 자체의 기소권 행사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백혜련안보다는 공수처장 임명과정에서 국회 동의를 요구하고 기소권 행사의 적정성을 통제하기 위해 기소심의위원회를 두고 있는 권은희안으로 조정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자유한국당이 반대하지만, 나머지 정당의 합의로 공수처 설치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63쪽

그런데 오히려 내가 우려하는 지점은 공수처 설치가 검찰 개혁의 전부라는 생각과 사정기관인 공수처의 본질 자체를 간과하는 태도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에 대한 견제, 감시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곧바로 검찰 개혁이 이우러진다 할 수 없다.

또한 사정 수사기관은 그 자체로 권한이 오 남용되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공수처장 등 임명 후 공수처에 대해서는 문민적 통제수단이 부족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공수처 설치 이후라도 논의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정치권력(집권세력)과 검찰권력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정부(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정당한 지휘, 감독과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중립성 보장이 적절하게 긴장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의 유착이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를 가로막고, 검찰의 정치화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에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법무부의 정당한 지휘, 감독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권력 등에 대한 사정기관의 견제, 감시 또한 중요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검찰(공수처)의 독립성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적 통제, 법무부의 지휘, 감독은 목적, 방법에 제한이 있어야 한다. 법무부는 국민의 일반의사가 표현된 형사법과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가 정한 형사정책에 근거해 검찰에 대한 일반적 지휘 감독권을 행사해야 하고, 인사권과 감찰권을 통한 검찰권력 견제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집권세력이 검찰권을 사유화하고 검찰을 장악하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며, 그 결과는 검찰 개혁 실패로 나타날 것이다. 그와 같은 점에서 검찰에 대한 지휘 감독과 개입 장악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점들을 고려할 때,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검경수사권 조정법안 및 공수처 설치법안 통과와 더불어 국민주권주의 및 인권보앙의 관점에서 국민들이 검찰 구성, 기소권 통제, 검찰행정 등에 직접 참여할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방 검사장 직선제로 검찰 구성에 유권자가 참여하는 것, 검찰심사회 제도나 대배심 제도 등을 도입해 시민이 기소권 행사에 대해 통제할 권한을 갖는 것, 배심재판 제도를 통해 시민이 재판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 검사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비중을 확대하는 것 등이 그와 같은 방법의 예시이다.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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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외무성 주임분석관이자 작가인 사토 마사루는 반지성주의를 "실증성이나 객관성을 경시하고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7쪽.


<‘계약‘ 개념의 미국화>
- 처음 유럽 대륙의 개혁파 신학에서 말한 ‘계약‘은 신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무조건적인 은총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었다. 인간의 응답은 그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이다.

그러나 청교도를 통해 미국에 건너온 계약신학은 신과 인간 쌍방이 서로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give and take‘, 즉 대등한 ‘교환‘을 통해 호혜관계라는 것이다.

미국 신학자 헬무트 리처드 니부어에 따르면 이런 식의 계약에 대한 이해는 현대 미국 사회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하자면 신학적인 계약 개념의 변화가 인간끼리 주고받은 세속적인 계약까지도 변질시킨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계약은 원래 스스로를 속박하는 신뢰와 약속의 표현이었지만 어느 사이 상대방의 의무 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감시하는 의미가 되어버렸다. 니부어의 이런 해석은 장사나 결혼 등을 계약 개념에서 이해하는 ‘메마른‘ 미국 사회에 대한 일종의 문명비판이기도 했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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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한 것은 놀이와 게임이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 철학자 버너드 슈츠는 저서 <베짱이>에서 놀이를 "반드시 극복할 필요 없는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 국립놀이연구소 Nationall institute of play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그 이유를 "놀이가 인생의 진정한 본질"이자 "문명에 대한 인간 사유의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3쪽.


- 작가이자 가디언 칼럼리스트인 올리버 버크먼은 충만한 삶의 가능성으로 :놀이를 제안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놀이야말로 삶의 균형추이기 때문이다.

5쪽.

- <왜 노는가>
*지적인 삶에는 모종의 자발적이고 내적인 결단이 따른다. 지적인 삶에는 나름의 독특한 안정감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런 안정감은 지식인이 지식에 대해 갖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기본적인 특질, 즉 **장난기와 경건함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질 사이의 균형에서 생기는 것 같다.
/ 리처드 호프스태터

11쪽.

-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 제임스 하월

16쪽

- 놀고 있는 아이들은 그저 뛰어노는 것이 아니라 가장 진지하게 온 마음을 쏟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 미셸 드 몽테뉴

29쪽.


- 내가 고양이와 함께 놀 때,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 미셸 드 몽테뉴

- 만약 1년 내내 휴일이라면, 놀이는 일만큼 지겨워질 것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노는 법을 아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다. / 랠프 월도 에머슨

36쪽


- 부끄러운 일은 놀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 호라티우스

- 인간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인간일 때만 유희하며, 유희해야만 온전한 인간이 된다. / 프리드리히 쉴러

- 놀아라! 세상을 창조하라! 현실을 창조하라!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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