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
이로써 형태가 완성되었다. 남은 것은 채색뿐이다. 회화는 형태와 색채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이 중에서 회화의 본령을 이루는 것은 어느 것일까? 이 물음은 17세기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화가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고전미술에서는 **색채보다 **형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알베르티는 《회화론》(1435)에서 "소묘만 제대로 되어도 이미 그 자체로 훌륭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물론 색채를 강조하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바로크 회화는 색채(회화적 malerisch)를 강조하나, 그때조차도 그것을 형태보다. 더 중시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둘이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고 보았을 뿐이다.
색채에 대한 형태의 우위‘라는 원칙은 동시에 고전회화에서 색채가사용되는 방식을 의미한다. 즉, 고전회화에서 색채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 가치를 갖지 못하고 주로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데 사용된다.
고전회화에서 형태의 소묘가 대상의 윤관을 따라야 하듯이, 채색 역시 대상 자체의 색채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때 화면에 그려진 가상의 존재는 마치 실물처럼 생생하게 보이게 된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회화의 기능은 이렇게 아득한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을 우리 눈앞에서 보듯이 생생하게 다시 가져다놓은 데 있다.
***‘재현‘이란 말 속에는 한때 있었으나 present 지금은 없는 absent 것을 다시 있게 한다 re-present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재현으로서 회화는 가상이며, 이 가상은 동시에 아름다워야 한다. 여기서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미술의 본질적 규정이 얻어진다.
25-27쪽
<이스토리아의 시각적 번역>
이제까지 고전미술의 ‘형식‘에 대해, 즉 고전미술에서 그림을 ‘어떻게(how)‘ 그리슨지 알아보았다. 이쯤에서 고전미술의 ‘내용‘으로 넘어가 보자. 고전미술은 ‘무엇을 what 그리려 했을까?
사실 고전미술에서는 형식보다 그 **내용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회화의 목적이 그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정신적 교훈을 전달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고전미술이 원근법적으로 구축된 공간 속에 소묘와 채색을 통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묘사를 한 것도 실은 환영 효과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신적 교훈을 더 생생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고전미술의 중요한 특성이 도출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의 시각적 번역‘ 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고전미학을 완성한 철학자 헤겔은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정의한 바 있다. 즉, 미란 정신적 메시지를 물질적 매체에 담아 표현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림으로 번역되는 텍스트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성서와 신화, 그리고 역사가 그것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는 주로 성서에 기록된 사건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장면, 혹은 역사적 위인들의 행적을 다룬 것이다.
말하자면 이 세가지가 고전미술의 주요한 ‘제재‘를 이룬다. 이렇게 회화의 제재로 채택된 이야기를 **‘이스토리아 istoria‘라 부른다. ‘이스토리아‘를 흔히 ‘역사 history‘로 옮기곤 하나, 그 말의 원뜻은 ‘이야기story‘에 더 가깝다.
미술사에서 말하는 역사화란 역사적 위인을 다룬 회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성서든, 신화든, 역사든, 그 안에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는 그림은 모두 ‘역사화‘라 불린다.
27-29쪽
이처럼 미술이 문학에, 즉 **이미지가 텍스트에 종속되어 있떤 시대에는 그림의 품격이 주로 그 바탕이 되는 텍스트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그 시절에는 다루어지는 제재의 중요성에 따라 장르 사이에 위계가 존재했다.
**그 서열의 맨 위에 있는 것이 ‘역사화‘다. 아무래도 그림 안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편이 도덕적 교훈이든, 종교적 교훈이든 정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유리할 게다.
역사화의 바로 아래를 차지하는 것은 ‘인물화‘다. 비록 이야기가 없더라도 초상이나 자화상은 적어도 인물의 외간을 통해 **내면의 정신성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렘브란트의 자화상.
인물화 아래에 있는 것은 *‘풍경화‘다. 풍경화 아래로는 정물화가 있다. 고전주의자들은 소유욕을 저급한 욕망으로 여겼다. 그런 그들이 정물화 못지 않게 경멸한 것이 바로 풍속화다. 네덜란드의 풍속화는 먼 훗날 도래할 대중민주주의 시대의 예술적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
30-32쪽
<쿠르베와 사실주의 1>
과거의 미술은 자신을 **‘아름다운 가상‘으로 이해했다. 이 고전적 이념을 무너뜨린 것은 쿠르베의 사실주의였다.
사실주의는 19세기 과학적 실증주의, 사진술의 발명, 그리고 1848년 혁명이 낳은 예술이었다.
**과거의 미술이 신화나 성서 속의 허구를 그렸다면, 쿠르베는 자신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민중의 **‘현실‘을 그리려 했다.
과거의 예쑬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쿠르베와 같은 사실주의자들은 미술의 목표를 **‘진실‘에서 찾았다.
진실이 늘 밝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현실의 추하고 어두운 모습마저도 만약 그것이 현실이라면, 기꺼이 작품 안에 받아들이려 했다.
35쪽.
<쿠르베와 사실주의 2>
**미술에 현대성이 관철되는 과정은 ‘아름다운 가상‘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이 무너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고전미술의 붕괴는 **19세기 중엽에 사실주의와 더불어 시작된다. 이는 미술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사실주의를 미술 이념으로 내세운 것은 외려 쥘 샹플뢰리 (JulesChartpileury, 1821~1889)나 에드몽 뒤랑티와 같은 문필가들이었다. *문학의 영역에서 사실주의 운동은 스탕달과 발자크의 소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후,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1857)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같은 시기에 미술에서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사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Courbet, 1819~1877)다.
아름다운 가상의 파괴
*사실주의는 한마디로 고전적 예술 이념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19세기 초반 예술의 주류로 행세하던 것은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이었다.
**전자는 차가운 이성을, 후자는 열정과 상상력을 강조하지만, **두 흐름 모두 ‘아름다운 가상‘ 이라는 고전적 예술 이념을 공유하고있었다.
신고전주의는 신화 , 성서 · 역사라는 전통적 제재(이스토리아)를한 반면, 낭만주의는 상상을 자극하는 기이하거나 이국적인 사건에 집착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흐름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였다.
37쪽
당대의 현실을 전유하여 작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로 사실주의의 정신이다. 사실주의자로서 쿠르베가 추구한 것은 **눈앞의 현실을 생생히 묘사한 **‘살아있는 예술‘이었다.
쿠르베는 그저 예술의 왕국에서 ‘화가‘로 머물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이 되려고 했고, 그 결과 작품은 상상으로 그린 ‘가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충실한 기록에 가까워진다.
고전적 예술 이념에 따르면,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에 있다. 그렇기에 과거의 화가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이상화 idealization하고 했다. 다시 말해 대상을 보이는 대로 모방하되 그것을 수정하여 **‘이상적 아름다움‘으로까지 끌어올렸다.
반명에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을 이상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묘사하려 한다. 그래서 사실주의 회화는 첫눈에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아름답기보다는 외려 어딘지 *우중충해 보인다.
사실주의자들에게 예술의 존재 이유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에 있다. **그들은 현실을 미화하는 것을 뻔뻔한 ‘허위‘로 여겼다.
고전주의의 이상화 요구를 배척했기에 쿠르베는 종종 비평가들에게서 ***‘추‘를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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