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감각의 수용자이자
뇌이며 기록 장치다.

/ 폴 세잔

(도입부)



<들어가기: 고전미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라도 고전미술과 현대미술의 차이는 금방 알아차릴 게다. 고전미술에는 *식별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 그 **대상은 감각적 쾌감을 주고, 그 **메시지는 정서적 감동을 준다. 반면에 20세기 현대미술에는 종종 알아볼 만한 대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위해 눈을 제목으로 돌려봤자 소용이 없다. 거기에는 ‘무제‘라고 적혀 있기 일쑤여서 쾌감이나 감동은커녕 외려 짜증이 나곤 한다.

 어쩌다 미술이 이렇게 변했을까? 현대미술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미술사의 이 급진적 변화는 실은 19세기 중반부터 차근차근 준비되어 왔다.

  이른바 ‘고전미술‘의 이념은 *19세기 중반에 여기저기서 거센 도전을 받게 된다. 여기서 **‘고전미술‘이라 함은 르네상스에서 고전주의(classicisme)를 거쳐 신고전주의 (néoclassicisme)로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주류를 가리킨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마니에리스모(manierismo), 바로크(baroque)나 로코코(rococo), 혹은 낭만주의(romantisme)를 생각해보라. 하지만 이 일탈마저도 전체적으로 보면 여전히 고전미술의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500년 동안 지속되던 이 강고한 고전미술의 이념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다. 미술의 현대성(modernity)‘이 이미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살펴보려면 먼저 무너진 그 ‘고전미술‘의 이념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썩 좋은 구분법은 아니나 일단 **회화를 ‘내용‘과 ‘형식‘으로 구분해 보자. 

미술의 ***‘내용‘은 크게 *‘제재(subject)‘와 *‘주제(theme)‘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제재‘가 그림의 소재라면, ‘주재‘는 그 그림을 전달하려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한편 회화의 **‘형식‘은 크게 ‘형태(form)‘와 ‘색채(color)‘의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화면에 형태를 그리는 것을 ‘소묘‘라 하고, 거기에 색을 칠하는 것을 ‘채색‘이라고 한다. 이제 고전미술의 ‘내용‘과 ‘형식‘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17-8쪽

<원근법적 공간의 구축>


먼저 형식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르네상스 이후 500여 년에 걸쳐 서양미술을 지탱해온 기본적 규약은 **‘원근법‘ 이었다. 원근법은 한마디로 **2차원 평면에 3차원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중세 미술의 화면은 어디까지나 2차원 구성의 ‘평면‘이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x, y축에 새로 z축을 추가하여 평면 위에 3차원 공간의 깊이를만들어내려 했다.

 원래 원근법은 건축가 *브루넬레스키 (FilippoBrunelleschi, 1377~1446)가 건축주에게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완성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해 개발한 투시법이다. 이 기술은 그의 나이 어린 제자이자 친구인 *마사초(Masaccio, 1401~1428)에 의해 처음으로 회화에 도입되기에 이른다.

중세의 장인들은 **중요한 인물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은 그보다 작게 그리곤 했다. 묘사하는 대상의 크기를 *심리적으로 결정한 셈이다. 

반면에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리에 따라 대상의 크기를 **기하학적으로 축소시켜 나갔다. **중세의 장인들이 세계를 ‘아는 대로‘ 그리려 했다면,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

18쪽

 중세의 장인들이 그림을 *‘신학적 관념의 표현‘으로 여긴 것과 달리,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그것을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여긴 것이다.

**이들이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려 한 것은 물론 그 세계가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은 현세를 경멸하는 경향이 있었다.

중세의 화면은 *다수의 이질적 공간들의 짜깁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안에서는 묘사된 대상 하나하나가 제 주위에 저만의 공간을 품고 있어 그것들이 화면 안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반면에 원근법적 화면은 **단 하나의 시점으로 구축되기에 그 안에는 단 하나의 *등질적 공간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많은 대상이라도 서로 충돌하는 일 없이 그 안으로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들어갈 수가 있다.

 **르네상스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대상을 그리기 전에 일단 원근법을 이용해 공간부터 구축하고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 이는 향후 500여 년 동안 회화에서 거의 헌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19쪽

<비례론과 고전미>


이로써 시각적 재현의 원리가 밝혀졌다. 일단 재현의 원리가 밝혀진 이상 
(**그리드를 이용해 전사를 하든, 실과 송곳으로 윤곽을 따든, 혹은 카메라오스쿠라의 영상 위에 덧칠을 하든) 
화면 위에 묘사 대상의 윤곽을 옮겨놓는 일은 순수 기술적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회화의 원리가 전부 밝혀진 것은 아니다. 고전미술의 목표는 그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정확히 묘사하는 데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전주의는 자연주의(naturalisme)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자연주의‘가 그저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는데 머물렀다면, 고전주의‘는 그 수준을 넘어 사물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려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이후 미술은 **‘자연의 모방‘이라 불려졌다. 여기서 ‘자연‘은가시적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특히 인간의 신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고전미술의 목표는 인간의 신체를 모방하되 그것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이올리는 데 있었다.

 인간 신체에 이상적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르네상스의 작가들은 먼저 이상적인 신체의 비례를 발견하려 했다. **피타고라스 이래로 ‘미‘의 본질은 수적 비례관계에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베르티나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그리고 뒤러와 같은 르네상스의 작가들이 비례론의 연구에몰두했던 것은 그와 관련이 있다.

신체를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현실에서 아름다운 모델을 발견하여 그대로 모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현실의 모델들은 어딘가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고대의 조각가 페이디아스는 헬레네 상을 만드는 다섯 명의 모델을 사용했다.

물론 각각의 모델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취해 현실의 그 어떤 신체보다도 아름다운 여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아이디어를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이데아‘가 된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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