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이 책에서 저는 사회적 불행을 초래하는 두 가지 극단적 입장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훌륭한 정치적 원칙들을 뒷받침하는 애국심 및 여타 감정들의 함양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불화나 비판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독재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으로감정을 함양하는 방식입니다. **현명한 정책이란 이 두 극단 사이에서규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입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토대와 힘을 무력화하는 태도이고, 두 번째 입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품격 있는 민주적 정치 문화라는 목표는 당대의 정치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비판적으로사고하며, 변화와 개혁의 방식에 대해 토론하는 시민들이 있어야 도달 가능합니다.
동시에 이들은 최선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에 매진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을 가진 시민들이어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균형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책에서 바로 이 균형에 이르는 올바른 방식을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역사적인 논의를 다루면서 저는 장자크 루소와 오귀스트 콩트가 **유의미한 반대 의견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지나치게 독단적인 방식으로 **감정의 동질성 homogeneity 을 추구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습니다.
반면 존 스튜어트 밀과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을 기르는 풍부한 감정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도 비판 정신과 자유를 지지함으로써 앞서 언급한 균형을 잘맞춘 사례로 분석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저는 현명한 국가라면 **지고한 이상을 향한 열망을 굳건하게 유지하면서 동시에 **비판의 목소리를 수호하는 정치적 집단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이는 사법적 독립성이라든지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현명한 국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비판 정신 자체를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양심적인 반대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선의에 기반한 오류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진실성과 비판의 자유라고 하는 서로 양립 가능한 개념을 필요로 합니다.
8-11쪽
<1장 자유주의 역사의 문제>
**공적 감정은 대개 강렬하여 국가의 진보에 있어 거대한 변화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국가가 정해놓은 목적을 추구하는 데 새로운 활력과 깊이를 제공하는가 하면, 차별, 위계, 무시, 둔감함 등을 강화함으로써 본래의 궤도를 이탈하게 만들기도 한다.
모든 정치적 원칙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오랜 세월에 걸친 안정성을 보장받기 위해 감정적 기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모든 **품위 있는 사회는 *공감과 *사랑의 정서를 적절히 함양함으로써 *사회적 분열과 *계층의 분리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등한 기회를 열망하는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감정의 정치적 함양을 위해 두 가지 과제가 요구된다.
하나는 많은 노력과 희생을 요하는 유의미한 기획에 대해 사람들의 강력한 헌신을 촉구하고 또 이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적 재분배,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이들의 완전한 참여, 환경 보호, 해외 원조, 국가 안보 등이 포함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편협한 공감 능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쉽게 **자아도취적 기획에 갇히며, 자신의 협소한 굴레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요구는 금세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국가적 차원의 목표를 향한 감정들은 흔히 사람들로 하여금 좀더 **거시적으로 사유하게 만들고, 좀더 넓은 **공동선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공적 감정을 함양하기 위해 필요한 또 다른 과제는 **나약한 자신을 보호하고자 타인을 *폄하하고 *무시하려는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모든 사회 안에,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 안에 도사리고 있다. (칸트는 이러한 경향을 *‘근본악‘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에 대한 해석에서는 나와 차이를 보인다)
**혐오나 시기,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욕망 등은 모든 사회에, 좀더 정확히 말하면 모든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이런 것이 입법과정이나 사회 형성 과정에서 하나의 지표로 작동한다면 그 피해는 더 커진다.
**역사 속 위대한 민주적 지도자들은 적절한 감정의 함양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대체로 이 주제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5-19쪽
<1장 자유주의 역사의 문제 (2)>
칸트는 로크보다 인간의 심리에 대해 더 깊이 탐구했다. 칸트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사회 내에서의 악행은 사회적 조건이 만든 단순한 가공품이 아니라, **타인을 이용하려는 경향성-타인을 그 자체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대하는 태도-을 내포한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칸트는 이러한 경향성을 **‘근본악‘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악한 경향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 속에서 타자와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도록 부추긴다.
그렇기에 칸트는 개인들이 각기 가진 **선한 경향성-타인을 선하게 대하는 태도- 을 강화하는 집단에 참여할 윤리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여겼으며, 그럼으로써 악한 경향성을 물리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보기에 올바른 형태의 **교회는 사회적 도덕성을 지탱하는 구조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교회에 가입할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자유주의 국가 그 자체는 근본악과의 전쟁에 있어 **극도로 제한된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로크와 마찬가지로 칸트는 **국가의 첫째 임무란 모든 시민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국가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심리적 조치를 취하고자 할 때, 국가는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라는 고유의 책무에 손발이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껏해야 정부는 칸트가 선호했던 인간의 평등을 가르치고 도덕률에 대한 복종을 주장하는) ‘인간 종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에게 재정 보조금따위를 제공할 뿐이다.
칸트는 자신의 근본악에 대한 관점의 주된 원천이기도 한 앞선 세대의 위대한 철학자 장자크 루소를 계승하면서도 그와 대결하고자 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훌륭한 사회란 자신의 안정성을 유지하고, 국가 안보와 같은 사회적 희생을 수반하는 일들을 촉구하기 위해 ‘시민 종교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시민 종교란 사회적 감정‘으로 구성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 없이 인간은 선량한 시민도 충실한 국민도 될 수 없다)
20-22쪽
이 책은 길고 두껍기 때문에 몇몇 중요한 문제의식을 미리 언급함으로써 오독을 방지하고 주요 논의가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 정치적 감정에 대한 설명은 **규범적인 맥락을 전제한다.
군주정이나 파시스트 그리고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치적 개념은 공공 문화 속에 감정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두고 각각의 원칙이 갖는 안정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전략들은 각각의 특정한 목표에 의존한다.
5장에서 상세히 기술하겠지만, 이 책의 논의는 일련의 정치적 원칙들을 명시적으로 제시한다. 이는 뉴딜의 목적, 존 스튜어트 밀과 존 롤스의 정치적 개념들, 많은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지향점과 더불어 (이보다 것이긴 하지만) 내가 다른 책에서 주장했던 바와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47쪽
(계속) 이러한 것은 오늘날 미국의 정치 문화가 지향하는 목표들과도 상당 부분 겹친다. 나는 여기서 이러한 규범적 논의를 설명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물으려는 것은 그러한 원리들이 감정을 통해 어떻게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양한 정치적 규범을 포용하는 사람들 또한- 비록 그들 스스로가 선호하는 규범들을 지지하기 위해 그것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어야겠지만- 이러한 설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정치적 자유주의‘ 를 수용함으로써 논의의 기틀을 마련한다.
5장에서 상세한 논의가 이뤄지겠지만, **규범적 이상은 특정한 *종교적 또는 *세속적 (롤스의 개념을 빌려) 포괄적 교리comprehensive doeurine‘를 정립하지 않는 *일련의 원리들이며, 이것은 최소한 잠정적으로 시민들에 의해 수용된 포괄적 교리들 중에서 (서로 평등한 시민으로서 상대를 존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시민의 ‘중첩적 합의‘를 통해 선정된 목적이 된다.
이러한 정치적 자유주의의 입장을 택함으로써 내 논의는 루소가 말한 ‘시민 종교‘와는 차이를 가지며, 오귀스트 콩트와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한 ‘인간 종교‘와도 결별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시민적 감정을 현존하는 종교의 대체물로 설명했으며, 이러한 감정은 사회가폄하하거나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48쪽
3. 감정들: 포괄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나는 동정심, 두려움, 시기심, 수치심과 같은 감정이 어떻게 이 규범적 개념의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지 설명할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 감정들은 군주정, 파시즘, 자유주의 체제 등 다양한 정치 문화의 유형 속에서도 작동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감정들은 마치 다용도 공구키트와 같다. (혐오의 감정은 예외라 할 수 있다. 나는 ‘투사적 혐오 projective disgust는 자유주의 사회 안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낭비와 부패에 대한 일차적 혐오는 여전히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 종 차원에서 내가 상상하는 자유주의 사회는 고유한 김정들의 집합을 활용한다. 자유주의적 관점이든 비자유주의적 관점이든 **동기 부여를 위해 *수치심을 활용하지만 *각자의 수치심은 분명 다른 것이다.
자유주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탐욕과 이기심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낄 것을 요구하지만, 자신의 *피부색이나 신체적 결함에 대해서는 얼굴을 붉힐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감정들은 또한 각기 다른 의미에서 일반적이면서도 개별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 대한 개별적인 동정심은 좀더 넓은 의미를 가진 국가적 원리에 대한 동정적인 포용의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나의 이러한 기획은 롤스의 논의를 대체하기보디는 그를 보완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48-9쪽
4. 이상과 현실
내가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정치적 원칙과 제도들을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을 개선하고 또 완성하기는 지속적인 작업이 요구될 텐데 나의 논의는 근본적으로 좋은 제도란 존재하며 또 분명 실현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전제한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사회와 실재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미 달성된 정의보다는 이상적인 정의를 향한 열망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역사적 사례는 이상이 아닌 현실을 다루는 것이며,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규범적인 비전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관점은 심지어 오랫동안 존재해왔던 것들을 옹호한 링컨에게 적용된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을 재건하며 이를 자신이 묘사했던 모습 그대로의 국가로 다시 그려냈기 때문이다.) 혹자는 내가 그리는 사회의 도래를 가로막는 비감정적인 요소들(예를 들면 경제적인 요인들)이 있지나 않을지 물을 수도 있다.
나는 내가 그리는 사회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많은 면에서 이미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와 흡사한 형태가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존재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런 의문은 여기에 제시된 논의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여겨지며 나는 그러한 장애물은 없다고 믿는다.
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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