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녹색혁명‘(새로운 고수확품종의 농작물들을 제3세계 지역들에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해당 지역에 특별히 적합한 방법으로 재배한 것으로, 주로 196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을 통한 과학의 투입과 관개가 없었더라면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은 급증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제3세계 나라들과 (전에 사회주의권이었거나 여전히 사회주의권인) 제2세계 일부 지역은 수출 가능한 많은 양의 잉여식량을 생산하기는커녕 더 이상 자신도 먹여살리지 못했다. 소련 농업은 기계화를 이루는 데에 눈에 띄게 실패했다.
농촌이 비워질 때 도시는 채워진다. 20세기 후반의 세계는 전의 어느 때보다도 **도시화되었다.
기존 거대도시들은 20세기 초에 절정에 달했다가 그 뒤에는 교외지역과 시외 위성지역으로의 탈출이 가속화되어, 이제는 기존의 도시 중심가가, 직장인들, 쇼핑객들, 행락객들이 귀가하는 밤이 되면 빈 껍데기가 되었다.
407-8쪽
농민층의 쇠락만큼이나 극적인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었던 것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요구하는 직업들의 부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가장 크고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들에 속하는 독일, 프랑스, 영국-총 1억 5000만 명의 인구-조차 대학생의 수가 모두 합쳐 1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세 나라 모두 합친 인구의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유럽 나라들만 거명하면)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스페인, 소련의 대학생 수는 백만 단위로 계산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대학생들이 사회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근대적인 경제는 어딘가에서 훈련받아야 하는-대학이나 그와 비슷한 고등교육기관은 오랜 전통에 의해서 주로 공직과 전문직의 양성소로 기능해왔다-행정가, 교사, 기술전문가를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경제계획자들과 정부들에게 명백하게 인식되었다.
전반적인 민주적 성향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점이 고등교육의 상당한 팽창을 정당화했지만, 학생 수 폭증의 규모는 합리적인 경제계획이 고려했던 수준을 훨씬 넘었다.
세계적 대호황 덕분에 무수한 평범한 지위의 가족들이 자녀들을 전일제로 공부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가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정치적으로 급진적, 폭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불만을 국민적으로, 심지어는 국제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유례 없이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 **독재국가에서 그들은 대체로 시민들 가운데 *정치적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다.
412-3쪽
1968년이 혁명이 아니었고 결코 혁명이 되거나 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학생들만으로는 아무리 수가 많고 동원 가능하더라도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의 정치적 효과는, 수는 보다 많지만 폭발성은 보다 작은 집단에 대해 신호와 기폭제로 작용하는 능력에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학생들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데에 때때로 성공했다. 그들은 1968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노동계급의 엄청난 파업 물결을 촉발시켰지만, 20년 동안 완전고용 경제하에서 **임금생활자들의 처지가 전례 없이 *개선되어왔던 터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마음속에 *혁명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중국, 남한, 체코슬로바키아처럼 비민주적인 나라들에서- 학생반란은 *혁명의 기폭제로서의 잠재력 또는 적어도 정부로 하여금 학생들을 심각한 *공적 위험요소로 다룰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잠재력을 실현한 것으로 보였다.
41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