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까지 그는
세상은 흘러가고 관습과 유행은 바뀔지라도 그녀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설 같은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9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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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모든 이를 위한, 그러나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책
(만인을 위한 그리고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2.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


3.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하노라.

15쪽


초인은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초인이 이 대지의 뜻이 되어야 한다고!
형제들이여, 간곡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4.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심연 위에 걸쳐진 밧줄이다.
저쪽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줄 가운데 있는 것도 위험하며 뒤돌아보는 것도 벌벌 떨고 있는 것도 멈춰 서는 것도 위험하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린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5.
그들은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것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그들은 그것을 *교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교양이란 게 있어서 그들이 염소치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꺼려한다. 이제 나는 그들이 염소치기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꺼려한다. 이제 나는 그들의 자부심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그들에게 가장 경멸스러운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말종 인간(최후의 인간)이다.

그대들에게 말하거니와, 충추는 별을 낳으려면 이간은 자신 속에 혼돈을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더 이상 경멸할 줄 모르는, 경멸스럽기 그지없는 인간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6.
그대가 말하는 것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도 지옥도 말이다. 그대의 영혼은 그대의 몸보다도 빨리 죽을 것이니,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7.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의 존재 의미를 가르치려고 한다. 존재의 의미는 **초인이며, 인간이라는 검은 구름을 뚫고 번쩍이는 번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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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과 그 이후>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깜짜가 놀라 흠칫했다. 심지어 닉슨에게 적대적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조차 대통령으로 실제로 탄핵했다는 무겁고 괴로운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닉슨 시대의 대통령은 국민에게 "권위적이고 제왕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대통령의 거짓말과 속임수가 안긴 배신감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지만, 대통령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제 약점조차 다 내보이는 것이 일반화된 시대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은 닉슨보다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더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생일이 1917년 11월 14일이니 자칫 2017년은 그의 출생 100년을 기녕하는 해가 될 뻔했다. 그를 더욱 못 견디게 한 것은 이 비극에 ‘관객의 연민‘이라는 필수 요소가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딸과 함께 탄핵된 것은 물론 그의 부친이다.
박정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가 충분히 탈신화화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갔고 그 대신 그를 그 자리에 신화적으로 못 박고 말았기 때문이다.

183-5쪽

<깊이 있는 사람>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좋은 작품에는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서 그 어둠 속에 앉아 있어본 작가는 대낮의 햇살에서도 영혼을 느낄 것이다. 내게 작품의 깊이란 곧 ‘인간 이해‘의 깊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을 존경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깊이 있는 사람‘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게는 한 인간의 깊이 역시 인간 이해의 깊이다.

인간의 무엇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인가. 나는 ‘타인의 고통‘이라고 평범한 답을 말할 것이다. 물론 이 대답 역시 진부하게 들린다. 그러나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진부해지기는커녕 날마다 새롭다.

고통의 공감은 일종의 능력인데,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잘 모르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한심한 한계다.

성품이 곧 능력이다. 이 판단이 정치적으로 매우 순진한 것일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만 싶다.

대통령이 대통령이면, 우리 중에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200-4쪽

<메릴 스트립의 용기>


그들은 반대자들을 배제 exclude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멸 exterminate 시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배제에는 포함 include 이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절멸에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끝장내버리는 terminate일이다.

저들을 ‘괴물‘이라고 간주해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를 그들로부터 완벽하게 구별/구원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윤리적 판타지다.

그러므로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배제 혹은 절멸에의 욕망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될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에 *패배하지 않도록 그의 욕망을 대신 감시해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선동합니다.


212-4쪽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1)>


여기서 **비판과 풍자와 조롱은 구별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비판은 어떤 논리에 대항 논리로 반박하는 행위로서 나머지 둘과 명백히 다르다. 그러나 풍자와 조롱은 둘 다 웃음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자주 혼동된다. 이 둘을 구별해 보자.

첫째, 대상이 ‘강자인가 약자인가‘는 오래된 기준 중 하나다.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강자를 대상으로 할 때에만 풍자다. 그 때 그 일은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을 폭로하는 숭고한 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적 권력자와 단순한 유명인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권력자는 대개 유명인이지만, 유명인이 언제나 권력자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자라면, 직업의 성격상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졌을 뿐인 사람은 유명인이다.

유명인을 향한다고 해서 조롱이 풍자로 변하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매체 환경 속에서 실명이 노출된 유명인과 익명의 보호를 받는 네티즌 중에서 누가 더 강자인가. 유명인이라면 감수해야 할 고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가학을 합리화하는 궤변이다.

둘째, 대상의 속성이 ‘선택인가 조건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권력자의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가 광범위하고 부정적인 대중적 영향을 끼쳤을 때, 그의 그런 선택과 관련된 사항들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가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자신의 조건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장애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군가가 권력자들의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외모와 성별을ㅇ 웃음거리로 만든다면 그 대상이 아무리 권력자라 해도 그 행위는 비열하다.


215-6쪽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2>


셋째, 그 웃음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가 하는 문제. 풍자는 상호 토론을 제안하는 일이며 결국 대상에 영향을 미쳐 무언가를 바로잡기 위한 것일 터다. 그런 목적과 무관한 웃음은 미심쩍은 것이다.

여기서 죽음과 웃음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 죽은 자도 풍자의 대상이 될 수는 있다. 생전 그의 부당한 판단과 행위와 그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서, 또 여전히 그의 뜻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토론을 제안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죽어가는 사람과 그의 죽음 자체는 웃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웃음은 풍자에 동반되어야 하는 목적과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은 노무현‘을 풍자할 수는 있어도 ‘노무현의 죽음‘을 풍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 무슨 학문의 자유가 아니라 언어로 행하는 시신 훼손일 뿐이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이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

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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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녹색혁명‘(새로운 고수확품종의 농작물들을 제3세계 지역들에 체계적으로 도입하여 해당 지역에 특별히 적합한 방법으로 재배한 것으로, 주로 196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을 통한 과학의 투입과 관개가 없었더라면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은 급증하는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제3세계 나라들과 (전에 사회주의권이었거나 여전히 사회주의권인) 제2세계 일부 지역은 수출 가능한 많은 양의 잉여식량을 생산하기는커녕 더 이상 자신도 먹여살리지 못했다. 소련 농업은 기계화를 이루는 데에 눈에 띄게 실패했다.

농촌이 비워질 때 도시는 채워진다. 20세기 후반의 세계는 전의 어느 때보다도 **도시화되었다.

기존 거대도시들은 20세기 초에 절정에 달했다가 그 뒤에는 교외지역과 시외 위성지역으로의 탈출이 가속화되어, 이제는 기존의 도시 중심가가, 직장인들, 쇼핑객들, 행락객들이 귀가하는 밤이 되면 빈 껍데기가 되었다.

407-8쪽

농민층의 쇠락만큼이나 극적인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보편적이었던 것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요구하는 직업들의 부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가장 크고 가장 선진적이고 가장 교육수준이 높은 나라들에 속하는 독일, 프랑스, 영국-총 1억 5000만 명의 인구-조차 대학생의 수가 모두 합쳐 15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세 나라 모두 합친 인구의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면 (유럽 나라들만 거명하면)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스페인, 소련의 대학생 수는 백만 단위로 계산되었다.

실제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대학생들이 사회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세력이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근대적인 경제는 어딘가에서 훈련받아야 하는-대학이나 그와 비슷한 고등교육기관은 오랜 전통에 의해서 주로 공직과 전문직의 양성소로 기능해왔다-행정가, 교사, 기술전문가를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경제계획자들과 정부들에게 명백하게 인식되었다.

전반적인 민주적 성향뿐만 아니라 바로 이러한 점이 고등교육의 상당한 팽창을 정당화했지만, 학생 수 폭증의 규모는 합리적인 경제계획이 고려했던 수준을 훨씬 넘었다.

세계적 대호황 덕분에 무수한 평범한 지위의 가족들이 자녀들을 전일제로 공부시킬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가 보여주었듯이 그들은 정치적으로 급진적, 폭발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불만을 국민적으로, 심지어는 국제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유례 없이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 **독재국가에서 그들은 대체로 시민들 가운데 *정치적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 되었다.

412-3쪽

1968년이 혁명이 아니었고 결코 혁명이 되거나 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학생들만으로는 아무리 수가 많고 동원 가능하더라도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들의 정치적 효과는, 수는 보다 많지만 폭발성은 보다 작은 집단에 대해 신호와 기폭제로 작용하는 능력에 있었다.

1960년대 이후 학생들은 그러한 역할을 하는 데에 때때로 성공했다. 그들은 1968년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노동계급의 엄청난 파업 물결을 촉발시켰지만, 20년 동안 완전고용 경제하에서 **임금생활자들의 처지가 전례 없이 *개선되어왔던 터라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마음속에 *혁명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1980년대가 되어서야-중국, 남한, 체코슬로바키아처럼 비민주적인 나라들에서- 학생반란은 *혁명의 기폭제로서의 잠재력 또는 적어도 정부로 하여금 학생들을 심각한 *공적 위험요소로 다룰 수밖에 없도록 하는 잠재력을 실현한 것으로 보였다.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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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장군이 집권했을 때 프랑스에는 텔레비전이 100만 대 있었다. 그가 떠났을 때에는 1000만 대가 있었다. 국가는 언제나 흥행거리다. 그러나 **어제의 연극 국가는 오늘날에 존재하는 **텔레비전 국가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 레지스 드브레(1994)

399쪽.

사람들은 과거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던 일에 부딪칠 때 - 그것을 정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때조차 - 그 미지의 것에 붙일 이름을 모색한다. 20세기의 3/4분기에 잠시 동안 서방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모색과정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류사에서 가장 크고 가장 극적이고 가장 급속하고 가장 보편적인 사회적 변화가 그 변화를 겪은, 반성적 정신의 소유자들의 의식 속에 들어왔다.

이러한 변화의 새로운 점은 유별한 속도와 보편성 둘 다에 있다.

(...)
이들 선진지역에서조차 양적인 물질적 성장이 질적인 삶의 격변으로 변화된 것을 인지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고, 그 변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엔ㄴ 훨씬 더 오랜 시일이 걸렸다.

그러나 지구상의 대부분 지역에서 변화는 갑작스러운 동시에 지진에 가까운 것이었다. **인류의 80퍼센트에게 중세는 1950년대에 갑자기 끝났으며, 아마도 더욱 많은 경우, 1960년대에 *중세가 끝났다고 느껴졌다.


400쪽

**20세기 후반의 가장 극적이고 가장 영향이 널리 미친 사회적 변화이자 우리를 과거세계로부터 영원히 단절시킨 변화는 **농민층의 사멸이다.

공업화가 농민층을 제거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은 공업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나라들에서 결국 명백히 실현되고 있었지만, 정말로 눈부시게 진전된 것은, 국제연합이 후진국이나 빈국같은 말을 완곡하게 표현한 다양한 명칭들로써 그러한 발전의 명백한 부재를 은폐하고자 했던 나라들에서의 농업인구의 감소였다.

희망에 찬 좌파 청년들이, 무수한 농촌대중들을 동원하여 현상유지의 본거지인 도시들을 포위, 공격함으로써 혁명에 승리한다는 모택동의 전략을 인용하던 바로 그때, 이 농촌대중들은 자신들의 촌락을 버리고 도시들로 이주하고 있었다.

(...)
선진공업국들은 한두 나라만 제외하고는 세계시장을 위한 농산물의 주요 생산국으로 변모했는데, 실제 농업인구의 비율이 끊임없이 줄고 때때로 불합리할 정도로 작은 비율로까지 줄면서도 그러한 변모가 진행되었다. 이는 명백히 농업가들의 **자본집약적인 1인당 생산성의 엄청난 급성장을 통해서 성취되었다.

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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